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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병을 치료하는 금빛 머리카락

영화 [라푼젤]

by 서순오

울 딸이 와서 아들하고 나하고 셋이서 한 달 전에 북수원온천에 갔다 왔는데, 또 갔다. 지난번에는 마스크를 쓰고 온천탕에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탕에도 릴랙스존에도 갈 수가 있어서 참 좋다.


그런데 옛날 같잖아 어째 낮에는 잠이 안 온다. 온천욕 하고 불한증막 2번 들어갔다 나왔다. 쇠고기 미역국을 사 먹을까 하다가 집에서 가져간, 에어프라이어로 구운 고구마 3개와 인삼차를 먹었다. 어제 온라인으로 구매해서 배송시켰더니 고구마 1.5kg이 6천 원 밖에 안 해서 아침에 그중에 몇 개를 구운 것이다. 한잠 자고 갈랬더니 누워 있는 데도 잠이 안 와서 그냥 집에 가야 할 모양이다.


아, 그런데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오후 1시부터 영화 [라푼젤]을 상영해 준다고 방송이 나온다. 2월에 왔을 때는 주말에만 상영했는데, 3월에는 평일에도 상영해 주는 것이다.


옳다구나, 영화를 보고 가기로 한다. [라푼젤]은 애니메이션 영화인데 재미나다. 마녀는 숲 속에서 금빛꽃은 발견하는데 그 꽃을 보며 노래하면 점점 젊어지게 된다. 궁궐에서는 나라의 왕비가 병에 걸렸는데 왕궁의 병사가 그 꽃을 훔쳐다 낫게 한다. 왕비는 딸을 낳는데 그 딸이 주인공 라푼젤이다. 라푼젤은 금발머리를 가졌는데 노래하면 빛이 나면서 상처와 병을 치료하게 되는 신비로운 머리카락이다. 숲 속 마녀는 마법을 가진 라푼젤을 데려와서 자신이 사는 높은 성에 데리고 살면서 절대 바깥세상에 나가지 못하게 한다. 바깥세상은 거칠고 위험하다면서 말이다. 은 문이 없고 창문으로 라푼젤의 금빛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려서 붙잡고 오르내리는 높은 곳이다.


그런데 소중한 딸을 잃은 궁궐에서는 왕과 왕비가 공주의 생일에 하늘로 등을 띄운다. 혹여 잘못이 있다면 빌고, 공주를 찾으려는 소망을 담은 수천수만 개의 등이 하늘로 높이높이 떠오른다. 온 세상이 밝게 빛을 발하며 밤이 환하게 깨어난다.

높은 마녀의 성에 사는 라푼젤은 창밖으로 하늘로 떠오르는 등을 보게 된다. 그것이 별인가 싶지만 별과는 다른 점이 있다. 라푼젤은 성안의 벽에 그림을 그릴 때, 왕궁의 상징과 그 신기한 빛으로 가는 노란 길을 그려놓으며 언젠가 그 빛이 떠오르는 장소를 가보고 싶어 한다.


18살 생일을 앞둔 시점, 도둑 현상금이 걸려 피해 다니는 유진은 추격하는 사람들을 피하다가 라푼젤이 사는 성으로 들어오게 된다. 마침 마녀는 집을 나가 있는 상태였고 라푼젤과 유진의 첫 만남이 시작된다. 유진은 왕관이 든 가방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을 노리는 사람들이 그를 쫓아오는 바람에 피한 곳이 바로 라푼젤이 사는 성이다. 공주는 왕관을 써보고 신비로운 느낌을 받는다. 그것을 감추어 두고 유진에게 빛이 떠오르는 장소로 자기를 데려가주면 그 왕관을 돌려주겠다고 한다.


마녀가 돌아오자 라푼젤은 3일이나 걸려서 갔다올 수 있는 먼 곳에 가서 진주물감을 구해 달라고 하고, 그러면 절대 바깥세상에 나가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속임수이다. 마녀가 없는 사이, 라푼젤은 유진과 성을 빠져나와 빛이 떠오르는 장소를 찾아간다.


모험에 모험을 거듭하며 펼쳐지는 라푼젤과 유진의 빛 찾기, 그 과정에서 둘은 사랑에 빠진다. 추격자들은 다시 유진을 찾아내고 유진은 왕관을 주어버리고 라푼젤을 지키려고 하지만 그들 역시 라푼젤을 원한다. 치열한 추격전 끝에 유진은 다쳐서 목숨이 위태롭다. 라푼젤이 노래를 불러 빛이 나는 금발로 유진을 치료해주려고 하지만, 유진은 마법을 없애려고 칼로 라푼젤의 머리를 잘라버린다. 라푼젤의 마법의 힘을 이용하던 마녀는 재가 되어 사라진다. 그렇지만 머리카락이 잘려버리자 유진을 치료할 수 없어 절망에 빠진 라푼젤은 유진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유진의 뺨에 떨어진 라푼젤의 눈물 한 방울이 환하게 빛을 발하며 퍼져 나간다. 유진은 가슴의 상처가 말끔히 치료되어 살아난다. 유진은 라푼젤을 데리고 배를 타고 등이 떠오르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강 한가운데로 나아간다. 이제 라푼젤의 생일날 왕과 왕비가 띄우는 등이 마악 하늘로 떠오른다. 그 뒤를 이어 수천수만 개의 등이 하늘을 가득 빛으로 수놓으며 떠오른다. 라푼젤과 유진은 등불 한가운데서 손을 맞잡고 마주 보며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곧 왕과 왕비를 만난다. 둘은 결혼을 한다. 해피엔딩이다.


디즈니 영화 [라푼젤]은 독일 그림형제의 동화 [라푼젤]을 패러디한 것이지만 영화와 동화는 정말 다르다. '라푼젤'이라는 이름만 같을 뿐이다. 독일 동화에서는 마녀가 키우는 마법을 가진 들상추(라푼젤)를 옆집 임신한 아내가 먹고 싶어 해서 남편이 훔쳐가다가 들킨다. 그 죄로 아이를 낳으면 마녀에게 주기로 했는데 그 아이의 이름이 라푼젤이다.


디즈니 영화에서도 마법이 있는 금빛 꽃을 마녀가 발견해서 이용하면서 점점 젊어지는데, 왕궁의 병사가 아픈 왕비를 위해 훔쳐다 준다. 왕비는 병이 낫고 라푼젤이라는 딸을 낳는다. 그런데 라푼젤의 금빛 머리카락에 마법이 있다는 걸 알고 마녀가 라푼젤을 몰래 데리고 가서 엄마라고 속이고 성에 가둬놓고 18년 동안이나 함께 산다.


동화의 일부 설정만 같고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 셈이다.


상처와 병을 치료하는 21m의 금빛 머리카락! 라푼젤의 길고 긴 금발 머리가 참 신비로운 영화이다. 나중에는 머리를 따고 꽃장식을 하고, 또 머리카락을 칼로 베어버리는 설정이 재미나다.


소중한 것은 결국 더 소중한 것을 위해 버릴 때 그 가치가 제대로 살아난다는 걸 배운다. 유진은 왕관보다도, 마법이 있는 라푼젤의 금빛 머리카락보다도, 라푼젤이 훨씬 더 소중했던 것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영상미와 노래와 스토리가 감동적인 [라푼젤], 한번 더 보고 싶다.

영화 [라푼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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