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미디어센터에 영화《바보들의 행진》을 보러 갔다. 1975년 5월 31일에 개봉된 영화이니 지금으로부터 48년 전이다. 그때는 영화는커녕 TV도 제대로 보기 어려웠다. 오래된 것이라서 당연히 나는 못 본 영화이다.
수원미디어센터에서는 최근에 고전영화를 상영해주고 있어서 챙겨서 보고 있다. 지난달에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개봉된 후 세월이 많이 흐른 영화들이라 느낌이 참 색다르다. 어째 조금은 촌스럽기도 하고, 순수하기도 하고 그렇다. 줄거리도, 나오는 배우들도, 배경도, 뭔가 조금은 부족해 보이는데, 그게 또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이 영화에는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송창식의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나온다. <왜 불러>, <고래 사냥> 등 추억의 노래이다. 나는 음악지능이 낮아서 청소년기에도 음악에 빠져본 적은 거의 없어서 그저 길거리 전파사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정도로 기억되긴 하지만 말이다.
《바보들의 행진》은 주인공 Y대 철학과 병태와 영철, H대 불문과 영자와 순자, 자칭 '바보'들의 미팅과 풋풋한 데이트, 꿈과 사랑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이다.
병태는 영자를 만나 데이트를 하며 사랑을 키우지만 철학과와 군대라는 장벽에 부딪쳐 영자의 이별을 통보받는다. 병태는 군입대를 한다. '떨어지기(탈락)'의 명수, 자칭 '바보'를 입에 달고 사는 영철도 순자를 만나 좋아하지만 거절당한다. 부잣집 아들 영철은 결국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인해 바닷가 낭떠러지에서 자전거를 타고 뛰어들어 자살을 하고 만다. 결국 죽음도 '떨어지기(?)'로 선택한 셈이다.
병태가 기차를 타고 군입대하는 날, 영자가 막 출발한 기차를 쫓아온다. 병태와 영자는 가까스로 기차 창문에 매달려 키스를 한다. 두 사람의 사랑은 여지를 남긴다. 끝부분이 뭉클하다. 사랑하지만 떨어져 지내야 하는 두 사람의 안타까운 사연이 가슴을 울린다.
아마도 영자는 병태를 기다릴 것이고 둘은 결혼을 할런지도 모르겠다. 아기를 낳고 알콩달콩 살아갈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나 역시도 울 남편을 대학 1학년 첫 미팅에서 만나 7년 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으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우리는 S대와 E대가 7:7로 예비역과 재수한 이들 중심으로 경영학과끼리 미팅을 했다. 다들 파트너를 마음에 안 들어했다. 그래서 디스코텍에 가서 함께 놀다 가자고 했는데, 그때 내가 마음속으로 내 파트너도 아닌 울 남편을 찍었다. 나는 울 남편의 다크 서클이 애잔했다. 모성애가 강한 나는 그것을 없애주고 싶었다. 그때 미팅에서 결혼까지 간 커플은 우리가 유일했다.
그렇지만 우리도 7년 연애 중에 딱 한 번 내가 울 남편에게 이별 통보를 했다.
"서로 너무 힘이 드니까 이제 더 이상 만나지 말자."
봉함엽서를 써서 보냈다.
그랬더니 울 남편이 술 한잔 걸치고서 밤늦게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도 잘났지만 나도 잘났다."
그 말이 어찌나 가슴이 아픈지 그 후 며칠 있다가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리고 몇 년을 더 사귀다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우리도 바보였던 게 틀림없다. 그 후 몇 번의 미팅이 더 있었지만 나는 자가용 끌고 와서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남자나 뭐, 고가의 옷이나 가방 같은 것으로 물질공세를 하는 남자는 딱 질색이었다. 나는 가난한 울 남편이 좋았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을 보고 산길을 걸어오는데 생강나무에 꽃이 제법 피었다. 아주 샛노랗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던킨도너츠》에 들러서 구독쿠폰으로 울 님편에게 줄 도넛을 사서 포장한다. 잠시 앉아 쉬면서 흑임자라테와 도넛 2개를 점심으로 먹는다. 창가의 볕이 참 따사롭다. 완연한 봄이 마음속까지 확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