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미디어센터에 영화 《펄프 픽션》을 보러 가는데, 청소년문화공원에 이제 막 봄꽃이 피어나고 있다. 홍매화, 백매화, 산수유가 속눈썹을 길게 늘어뜨리며 피어있는 모습에 마음이 홀딱 빠진다. 이제 완연한 봄이다!
영화 《펄프 픽션》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이다. 3월에 수원미디어센터에서는 쿠앤틴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을 상영해주고 있다. 나는 영화를 볼 때 감독이나 배우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두고 보는 편은 아니다. 영화 줄거리와 작품성을 본다. 물론 유명한 감독이나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이면 금상첨화이긴 하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작품은 처음 본다. 지난주에 《저수지의 개들》을 상영해 주었는데, 못 보았다. 이 감독은 영화 10편만 만들겠다고 했단다. 제목들만 보아서는 대체로 범죄영화가 아닌가 싶다.
오늘 본 영화 《펄프 픽션》도 범죄영화이다.
처음 장면은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마시는 두 남녀 가 나온다. 이들은 바로 그 레스토랑을 털기로 모의한다.
장면이 전환되고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갱단 보스가 나오고, 그 밑에서 일하는 부하들이 나온다. 물론 보스의 여자와 부하들의 여자들도 나온다. 마셀러스라는 보스는 주로 뒷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는 갱두목으로 백만장자이고, 그의 부인 미아는 제멋대로이며 마약중독자이다. 그의 부하들은 보스의 금가방을 지키기 위해 여러 사람을 죽인다. 그중 빈센트와 쥴스는 보스의 적들은 해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부치는 사기권투를 해서 돈을 번다.
신기한 것은 보스가 어디를 가면서 그의 여자가 심심하지 않게 부하인 빈센트에게 같이 시간을 보내달라고 하는 점이다. 자기 여자를, 그것도 부하에게 맡긴다는 설정이 좀 그렇다. 보스가 부인을 데려가든가, 여자 혼자 지낼 줄도 알아야 하는데 말이다.
빈센트는 보스의 여자와 즐겁게 지내면서 유혹을 느끼지만 충성심을 추스르며 잘 이겨낸다. 그런데 여자가 마약 과다 복용으로 쓰러져 목숨이 위태롭다. 간신히 마약을 구매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심장에 아드레날린 주사를 놓아서 살려낸다. 물론 이 일은 보스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한다.
부시의 이야기는 복싱에서 상대를 때려서 숨지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번 돈으로 애인 파비안느과 함께 멀리 떠나려고 한다.
그러다가 가보 금시계를 집에 놓고 오는 바람에 찾으러 가서 다시 사건에 말려든다. 쥴스를 만나 죽을 뻔하다가 둘 다 이전에 사건으로 적이 된 사람에게 잡혀서 또 죽을 고비를 겪지만 그자들을 해치우고 간신히 살아남는다. 보스의 도움을 받아 자기들이 죽인 사람의 시체를 실은 차는 통째로 폐차시켜 버린다.
빈센트와 쥴스는 보스의 금가방을 찾아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데, 바로 그곳이 영화 초반에 초보 강도들이 그 식당을 털려고 공모하던 장소이다. 두 남녀가 갑자기 총을 들고 튀어나오면서 아수라장이 된다. 그때 빈센트는 화장실에 가서 책을 보면서 느긋하게 볼일을 보고 있는 사이, 쥴스는 테이블 밑에 총을 숨기고 지갑을 꺼내 준다. 초보 강도는 금가방도 내놓으라고 하는데, 쥴스는 그것을 열어서 보여주면서 찰나를 이용해 총으로 상대를 겨눈다.
그다음 부분이 하이라이트다. 쥴스는 지갑을 열어서 초보강도에게 돈을 꺼내서 세어보라고 한다. 1,500불이 들어있다. 그것을 주면서 금가방은 탐내지 말라고 한다. 초보 강도는 1,500불도 챙기고, 레스토랑 손님들에게서 턴 지갑들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나간다.
쥴스는 벌써 갱단을 은퇴할 마음을 먹었다. 에스겔 25:7(※)을 외우고 있는 그는 강도짓을 하거나 적을 처치할 때, '선인이 악인을 처단한다'는 뜻의 성경구절을 들려준다. 그러면서 이기는 자는 선인, 지는 자는 악인, 그래서 자신은 선인이라는 것이다. 만일 자신이 악인이면 세상이 사악한 악인임을 얘기한다. 아이러니하다. 나쁜 짓을 하면서 성경구절을 외우고, 강도짓으로 번 돈으로 선을 행한다. 내가 악하면 세상이 악한 것이라 뒤집어 씌운다.
사건이 몇 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줄거리가 선명하지는 않지만, 이 영회는 패러독스를 통해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것 같다. 당신은 지금 잘 살고 있느냐고? 일이 잘 된다고 선인인 줄 아느냐고? 착한 일을 해서 복을 받은 줄 아느냐고?
또 하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음을 말해준다. 초보 강도는 전문 강도를 이기지 못한다. 무슨 일이든 숙련되어야 전문가가 된다. 나쁜 일도 마찬가지이다. 선행은 나는 놈이 뛰는 놈에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성공한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지배하고 싶으면 성공하라!
그런데 성경은 지배하지 말고 섬기라고 한다. 섬기려면 가지면 안 된다. 내가 가진 것을 도리어 다 내어주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도 대신 주어야 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자신이 만든 영화에서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 것일까? 앞으로 남은 영화가 더 있으니 다 보고 나서 평가해 봐야겠다.
※ 에스겔 25:7
그런즉 내가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다른 민족에게 넘겨 주어 노략을 당하게 하며 너를 만민 중에서 끊어 버리며 너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패망하게 하여 멸하리니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