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미디어센터에서 링크 걸어주는 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를 보았다. 오랜만에 참 재미있게 웃으면서도 뭔가 깊이 생각하면서 본 영화이다. 우리나라 여성 감독 김지화 님의 첫 장편작품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선정상과 배우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영화에는 70~80년대 시대를 주름잡던 유명한 가수 윤시내를 흉내 내며 사는 사람들이 나온다. 연시내, 운시내, 가시내, 윤신애, 윤사내 등이다. 단지 조금 닮았다는 이유로 비슷한 척 꾸미고 연습해서 유명한 윤시내 효과를 누리며 사는 것이다. 윤시내가 진짜 인생이라면 모조품으로 살아가는 이 사람들은 가짜 인생이다.
그런데 주인공 연시내는 유튜버 짱하의 엄마이다. 딸 짱하는 엄마의 가짜 인생뿐 아니라 자신이 데이트하는 것까지도 찍어서 사생활을 낱낱이 유튜브에 올리는 바람에 남자친구와도 헤어지게 된다.
영화에서 유명가수 윤시내는 마지막 고별 콘서트를 앞두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가짜 인생들은 진짜 인생 윤시내를 찾아 나선다. 자신들이 보고 따라서 흉내 내야 할 모델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유투버 짱하의 엄마 연시내는 차례로 가시내, 운시네, 윤신애, 윤사내를 만나게 된다. 딸 짱하도 윤시내 찾기 과정에 동참한다. 유튜브를 찍기 위해서이다. 엄마와 딸은 전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관계에 있으면서도 함께 한다. 각자 추구하는 목표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결국 측근을 물색해서 윤시내를 찾아낸다. 연시내의 딸 유튜버 짱하가 묻는다.
"왜 갑자기 사라진 겁니까?"
윤시내는 대답한다.
"나도 조용히 내 인생을 살고 싶어서 그랬어요."
"그럼 윤시내를 좋아하고 따라 하는 팬들은 윤시내의 인생이 아닙니까? 그들은 안중에도 없습니까?"
윤시내는 대답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생에서 누구를 모델로 삼고 그들을 따라 흉내 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누구의 인생이 진짜 인생이고, 누구의 인생이 가짜 인생일까?
엄마 연시내는 딸 짱하가 아주 어렸을 적 윤시내가 노래하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춤을 신명 나게 따라 하면서 노래를 부르자 촬영하고 있는 캠코더를 던져버린 적이 있다. 후에 그 이유가 나오는데, 딸이 자기처럼 밖에 되지 못할까 봐 그랬다고 한다.
자식은 부모만큼밖에 못 되는 것일까?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라고 한다. 욕하면서 닮고 존경하면서 닮아간다. 자녀는 부모가 살아간 삶을 거의 비슷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도둑 부모가 자식에게 아무리 도득질하지 말라고 가르쳐도 도둑의 삶을 그치지 않는다면 자녀는 도둑이 될 확률이 높다. 바람피우는 부모, 술담배에 쩔어사는 부모, 일하지 않고 일환천금을 노리며 빚을 얻어 도박이나 주식에 투자하는 부모, 이혼하는 부모, 싸우는 부모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부모가 성실하게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착하게 산다면 자녀 역시 그런 사람이 되어간다. 책 읽는 부모에게서 책 읽는 자녀가 나오고, 운동이나 노래, 그림 그리는 부모에게서 그런 자녀가 나오기가 쉽다. 자녀는 부모가 말하는 대로 배우는 게 아니라 부모를 보는 대로 배우기 때문이다.
관종(관심을 갈망하는 사람) 유튜버 짱하는 인터넷 공간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주고 '재미있다'라고 댓글을 달아주는 것에 깊이 빠져든다. 엄마 연시내가 윤시내만 따라 하면서 사느라고 딸인 자신에게 무관심하자 자신이 관심받을 만한 일을 찾아서 한 것이다.
우리 모두는 관심이 필요하다. 진짜 인생을 살든 가짜 인생을 살든 단 한 사람의 관심과 사랑이 있다면 행복하다, 잘 살고 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한 사람이 부모나 선생님, 친구나 애인, 배우자나 자녀여도 좋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책이나 영화, 그림이나 음악 속에서 만난 사람이어도 괜찮다. 나를 온전히 몰입하게 하는 그 한 사람, 아니 굳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좋아하고 몰입하게 되는 그 한 가지를 찾은 사람이라면 그는 분명 진짜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이 영화에서는 윤시내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가짜 인생들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대목이 몇 군데 나온다. 운시내가 짱하를 데리고 가서 밤무대에서 윤시내의 노래 《열정》을 진심으로 부르는 부분이다. 꼭 짱아를 보고 부르는 사랑고백 같다. 또 하나 있다. 짱하의 엄마 연시내가 윤시내를 찾기 바로 전에 병실에서 윤시내의 노래 《DJ에게》를 진심으로 열창하는 부분이다. 딸은 엄마의 모습을 영상에 담는다.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무명가수 연시내, 운시내, 가시내, 윤신애, 윤사내가 유명가수 윤시내를 따라 했더라도 그것이 그들을 행복하게 했다면 그것은 분명 가짜 인생이 아니라 진짜 인생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유명해지느냐, 성공하느냐, 그것은 그다음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