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택시를 탄 이유

by 서순오

산행을 하다가 '느리게 천천히' 걸어서 돌아올 때 타고 와야 하는 산악회 버스를 놓쳐서 택시를 타고 귀가한 적이 두 번 있다. 지금까지 산행 5년차에 300여 개의 산을 모르면서 그 정도면 양호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맞는다. 그 정도면 산행 이야기 꺼리를 일부러 만들 수는 없지만, 저절로 생겨난 산행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라 생각한다. 주머니 지출은 조금 많아졌지만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를 위해서 장거리 택시를 타본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에 기꺼이 기쁨의 지출을 하였다.


물론 토요일 산행을 하면서 설사 늦게 내려온다 해도 일요일 시간이 여유가 있다면 어딘가에서 하루 묵고 와도 좋을 것이다. 장거리 택시를 타고 돌아와야 하는 비용이면 충분히 숙소를 구해 편안하게 쉬면서 더욱 여유를 부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교회에 다니고 있어서 토요일 저녁에는 돌아와야 한다. 주일에는 예배를 드리러 간다.


장거리 택시를 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한 번은 2019년 8월 15일(목) 가리왕산 우중산행에서다. 천연의 이끼계곡이 아름답다는 가리왕산, 그날도 안내산악회에서 나홀로 산행신청을 했다. 500년 된 원시림 천연의 숲! 초록이끼가 덮인 바위들 위로 사이로 콸콸콸 시원스럽게 쏟아지는 계곡 물소리를 하나하나 음미하며 걷다보니 걸음은 자꾸 더 느려진다.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해 이 장면 저 장면 걸으면서 만나는 순간 포착을 놓치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핸드폰 셔터를 누른다.


"사진 한 장 부탁드릴게요."

나처럼 산행습관이 비슷한 이가 한 사람 더 있다. 그래서 나보다 조금 젊은 남산우님 한분과 동행을 한다.


처음에는 이슬비가 조금씩 내려서 옷이 젖으려나 했다. 그런데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어느새 옷과 신발이 축축해진다. 우의를 꺼내서 입고 걷는다. 또 괜찮겠거니 하고 스패츠는 착용하지 않고 걷는다.


가리왕산 이끼계곡을 지나니 계속 오름길 오름길 빡세다. 주목 군락지쯤 오른 후 점심을 먹고 잠시 쉬어간다. 운무 속 하얀 꽃들이 예쁘다.


정상에서부터는 빗줄기가 굵어진다. 그제서야 아이젠을 꺼내 찬다. 그런데 이미 등산화 안으로 비가 스며들어 철벙철벙거린다.


하산길은 등산로로 비가 졸졸 고랑을 지으며 흐른다. 옷도 신발도 가방도 모두 젖었다. 몸도 배낭도 신발도 무게가 두세 배로 늘어난다. 더군다나 가리왕산 하산길은 꽤나 가파르고 길다. 총 6.5km나 된다. 절대 빨리 걸을 수 없는 길이다. 그나마 혼자가 아니고 둘이라서 다행이다. 핸드폰도 안 터진다. 그렇게 우리는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타고갈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정선으로 가면 오후 7시 버스를 타고 동서울터미널로 갈 수 있다는데, 그 시간에 대어가기도 빠듯한 시간이다. 할수없이 택시를 알아본다. 수원까지 25만원을 달란다. 둘이서 25만원을 내려면 만만치 않다. 더군다나 함산한 남산우님은 집이 서울이다. 나때문에 동행해주느라고 늦은 건데 미안하기도 하다.


"택시비는 제가 낼게요. 수원 가셔서 집까지 가는 건 알아서 가셔요."

다행히 남산우님은 서울역 근처가 집이라서 수원역에서 지하철 타고 가면 된단다.

비는 쏟아지고 뿌연 운무가 시야를 가리는 택시를 타고 우리는 가리왕산 자연휴양림을 출발했다. 6시 30여 분 쯤 되어서다.


한참을 가고 있는데 정선을 출발한 버스가 바로 우리 앞을 지나간다. 아마도 평창 부근인 듯하다.

"저기 동서울 가는 버스 지나가네요. 저거 잡아드려요?"

택시 기사님이 먼저 말을 꺼낸다.

"그러면 너무 좋죠."

그래서 우리는 평창까지의 택시비 4만원을 내고, 버스로 갈아타고 동서울터미널로 왔다. 내가 택시비를 냈더니 그 남산우님이 버스비 3만원(1인 15,000원)을 내신다.

그렇게 장거리 택시비를 줄이고 맘씨 좋은 산우님과 택시 기사님을 만나 추억을 남긴 날이 되었다. (물론 이날은 토요일이 아니고 목요일이어서 하루 쉬고 와도 괜찮을 수 있었지만, 둘이라서 그러질 못했다. 아마도 나 혼자였다면 더 여유를 부렸을 것 같다.)


장거리 택시를 온전하게 탄 날은 2021년 7월 24일(토) 한여름 폭염 중에 운장산+구봉산 1일2산을 타고 내려와 또 타고올 차를 놓친 날이다.


산에서 나보다 먼저 내려갔지만 차를 놓친 남산우님 두 분은 절대 택시를 타고 오려고 하지 않았다. 구봉산 주차장에서 택시로 대전복합터미널로 이동 후 거기서 동서울터미널로 오는 방법을 택하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동서울에서 또 수원으로 오려면 어차피 택시를 타야 할 상황이 올 것 같았다. 머리를 굴려보니 이 차 저 차 갈아타면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많이 들어가겠다 싶었다. 남산우님 한 분은 수원에 시시고 한 분은 서울에 사신다.


"일단 택시 불러서 요금 얼마 나오나 물어보고 결정하죠!"

택시를 불러놓고 아이스 음료 세 개를 사서 마시며 기다린다.

"수원까지 한 10만 원 정도 나오겠네요."

"그럼 셋이서 나눠내면 3만 5천원 정도 나오니까 괜찮겠네요."

우리는 무조건 택시에 올라탄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택시 기사님 하시는 말씀,

"택시비는 키로 대로 나옵니다."

수원 도착해서 보니 택시비가 자그만치 25만 원이 나왔다.

택시 타자고 한 내가 조금 더 내고 남산우님 두 분이 똑같이 내시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서울 사시는 분은 또 수원에서 서울역까지 KTX 타고, 지하철 타고, 집 도착하니 밤 12시가 넘었더란다.


한여름 폭염에 운장산+구봉산 1일2산 연계산행하느라 힘들었는데, 나는 장거리 택시를 타고 집까지 편하게 와서 좋았는데 또 이런 낭패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돈은 벌어서 어디다 쓰나? 이런 긴급한 때에 쓰는 것이지."

평생 힘들게 일한 나를 위해 일이십 만원도 쓸 수 없어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평소에 술도 담배도 안 하는 나를 위해서, 고되고 힘든 산행 후에 차를 놓치고, 편안하고 안전하게 귀가하겠다는데, 이정도쯤이야 괜찮은 거 아닌가! 그것도 주일에 내가 믿는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해서 토요일에는 꼭 돌아와야만 하는 시간을 위해서 말이다.

가리왕산 천연의 이끼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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