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눈꽃 세계로

by 서순오

태백산에서 블랙야크 100대 명산 제10좌를 찍은 후 약 1년 만에 다시 태백산을 찾았다. 2021년 1월 23일 토요일 다매산에서 함백산+태백산 1일2산 눈꽃 산행이다. (※함백산은 로 기록할 거라서 생략한다.)


태백산은 유일사 입구에서부터 오르기 시작해서 산불감시초소쯤 지나니까 춥다. 대피소가 있어서 거기 들어가 싸간 라면 소컵과 밥을 말아먹는다. 산에서는 라면이 참 맛있다. 평소에는 거의 라면을 안 먹는데, 겨울에 산행할 때는 꼭 1개씩 싸가지고 온다.


점심 먹고 나니 더 춥다. 가져온 옷을 모두 꺼내 입는다. 핫팩도 2개 꺼내서 주머니에 넣는다. 손가락이 아리다. 함백산에서 별로 안 춥기에 작은 배낭에다 두꺼운 장갑을 두고 왔는데 후회가 된다. 얇은 장갑으로는 보온이 안 된다. 스틱 끈을 팔목에 걸고 스틱을 질질 끌면서 손을 핫팩이 있는 주머니에 넣고 걷는다. 손이 조금 따뜻해지면 다시 스틱을 짚으면서 걷는다.


그런데 눈꽃이 너무 멋져서 손 시린 것도 잊는다. 걸으니까 몸은 제법 땀도 나려고 해서 겉옷 한 개를 벗어서 배낭에 넣는다.


올 겨울엔 눈꽃 산행을 더 안 해도 되겠다. 너무나 환상적인 태백산 눈꽃 산행이다. 완전 하얀 겨울왕국이다. 걸어도 걸어도 좋은 신비로운 길이다. 약 9.5km를 4시간 30분 만에 걸었다.


"햐! 어쩜! 너무 이뽀이뽀!"


감탄에 감탄을 하며 산행을 한다. 태백산 눈꽃은 얘기로만 들었는데 오늘 완전 실감을 한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주목군락지에 오니 주목들이 눈꽃을 달고 의연하게 서 있다. 얼마나 많은 풍상을 견디었을끼? 아주 작은 씨앗 하나에서 싹을 틔워 저렇게 우람한 나무가 되고 천년을 살다가 죽어서 또 천년을 산다니 그야말로 신비 그 자체가 아닌가 싶다.


나는 때로 흙이 가장 신기하고, 그다음으로는 나무가 신기하다. 흙은 모든 것을 만들고 또 썩혀서 흙이라는 원형을 만들고 또 그 안에서 생명을 키우기 때문이다. 나무 역시 씨앗을 맺어 하나의 씨앗에서 수 천 개, 수 만개의 생명을 낳는다. 생명을 이어가도록 계속해서 낳는 일, 그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눈꽃길을 걸으며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죽음 이후에 영원히 살 수 있는 길, 신앙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사진 찍기 좋아하는 혼자 오신 한 분이 나보고 '이걸 보라 저걸 보라' 알려주면서 천천히 걷는다.


덕분에 뒤도 돌아보며 위도 쳐다보며 멋진 눈꽃을 담는다. 물론 내 사진도 부탁하니 기꺼이 찍어준다. 고맙다.


산에서는 누구나 친구이다. 그러나 또 한쪽이 걸음이 빨라지거나 느려지면 작별인사도 없이 헤어진다. 물론 얼굴도 잘 모른다. 잠시 보는 것이라서 말이다.


사진은 일정 프레임에 담아야 해서 아주 멋진 풍경을 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눈 속에 마음속에 담는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누구는 '잘 기억하기 위해서 자세히 오래 보고 가능하면 사진은 찍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또 '사진만 남는다'는 말도 있다. 세월이 흐르면 기억은 조금씩 사라진다. 작년 일도 기억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사진으로 글로 그림으로 남겨두면 오래간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추억을 소환해 볼 수 있다. 내가 사진을 찍고 글로 기록하고, 또 가끔은 그림으로도 그리는 걸 좋아하는 이유랄까?


장군봉 전망대에서는 주변 봉우리들이 두루 조망이 되는데, 오늘은 안개가 자욱해서 시야가 흐리다.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조망 안내판이 고사목 주목과 어우러져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보여. 그 대신 우리 둘이서 지나온 시절 이야기나 좀 해보자고."
"저기 안개에 가려 안 보이는 함백산 정상이 여기서도 갈 수 있는 봉우리거든. 사람들이 저기서부터 산을 타고 수리봉 거쳐 여기까지 오면 꼭 그러거든. '야. 저기가 우리가 올랐던 함백산 봉우리네. 아주 코앞이네! 산이 거의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네'."

나는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보며 눈꽃길을 걷는다.


내 옆에 앉은 짝꿍이 걸었다는 함백산+태백산 연계 산행 14.5km를 언젠가는 나도 이어지는 길로 쭈욱 한 번에 걸어보고 싶다.


주목 군락지를 지나 장군봉 가는 길은 순백의 세계다. 나무도 길도 모두가 하얗다. 눈꽃층도 두텁다. 어떤 이는 화상통화를 하며 자기 집 식구들에게 눈꽃 풍경을 보라고 핸드폰을 들이댄다. 나도 눈꽃을 동영상으로 담아본다.


이정표도 안내판도 정상석도 눈꽃 속에 아름답다. 사진 부탁을 하니 찍어 주는 이가 여러 장 눌러준다. 내가 풍경을 여러 장 찍는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가장 잘 나온 사진을 고르기 위해서다. 그러나 찍고 보면 사진들이 다 좋다. 풍경이 아름다우니까 그 어느 것을 찍어도 좋은 것이다.


뿌연 안갯속에 싸락눈이 바람에 흩날리면서 내린다. 내 모자 위에도 스틱에도 싸락눈이 달라붙어 얇은 살얼음이 진다.


장군봉에서 천제단 가는 길은 풀풀 날리는 안개 눈에 신비 속에 쌓여 있다. 천제단이 희뿌옇다.


천제단과 태백산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급히 당골광장 쪽 방향을 찾아 하산길에 오른다. 전에 왔을 때는 이곳이 굉장히 가팔랐던 기억이 나는데, 눈이 쌓여 길이 제법 완만해져 있다. 눈꽃도 한가득 피어 나무 울타리와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이다. 이 세상이 아닌 딴 세상에 온 것 같다.


하산길은 휘리릭 내려온다. 내가 오름길은 힘들어도 하산길은 조금 빠른 편이다. 혼자 왔기에 혼자 고즈넉하게 걷는다. 하얀 눈길을 홀로 걷는 맛이 있다. 함께 차를 타고 온 일행 두세 명을 내가 쑥 지나치기도 하고, 그들이 나를 지나 앞서가기도 한다.


하산길에 물을 조금 먹고 가려고 한번 쉰다. 어떤 분이 초콜릿을 먹고 있다가 나누어 준다. 내 가방 속에도 견과류와 젤리와 과일이 있는데 꺼내기가 싫다. 초콜릿을 먹고 나서 이온음료에 탄 비타민 주스만 두세 모금 삼킨다.


그런데 누가 장갑 한 짝을 떨어뜨리고 갔기에 주워서 들고 갔더니 아까 초콜릿을 나눠주신 분이 장갑을 찾으러 돌아오고 있다. 기쁘게 주인을 찾아 드린다.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함께 하산한다.


다매산은 아침에 김밥과 물을 주기 때문에 9시 반 정도에 치악산 휴게소에서 김밥을 먹고, 1시 정도에 컵라면 소면에 밥을 말아서 점심을 먹었기에 배가 거의 안 고프다. 물론 나는 집에서 새벽 5시에 아침도 먹고 나섰다. 그러니 간식을 챙겨 오긴 했어도 못 먹은 것이다.


간혹 짝꿍이 생겨 함께 산행하게 되면 이래저래 쉬어가면서 간식 타임을 할 수도 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아직도 코로나19 비상 중이라 혼자 조용히 산행하는 것은 참 좋은 것 같다.

태백산 눈꽃 산행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눈꽃처럼만 눈부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