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소리'(새소리, 대숲소리, 시골할배부부의 창 가락 소리, 물소리, 비 오는 소리 등)를 녹음하는 일을 한다.
할머니는 죽은 남편이 살았을 때,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돌아오지 않지만, 늘 수색역 대합실 의자에 앉아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상우는 자전거를 타고 가서 이런 할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상우는 '자연과 사람' 방송을 하는 PD 은수를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은수는 한번 결혼을 한 적이 있지만 상우는 개의치 않는다. 은수가 먼저 다가오자 순진한 상우는 점점 빠져든다. 둘은 서로 뜨겁게 사랑하게 된다. 만나기만 하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사랑하는 동안은 그렇다. 그 달콤한 사랑은 결혼으로 이어지나 싶었는데, 갑자기 은수가 상우에게 한 달만 헤어져 있어 보자고 제안한다.
그새 은수는 더 좋은 조건의 남자를 만난 것이다. 며칠을 기다리지 못하고 보고 싶어서 강릉까지 찾아간 상우에게 은수가 헤어지자고 한다. 상우는 이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은수는 연두색 새 차도 뽑고 새 남자와 더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한다. 상우는 은수의 새 차를 열쇠로 그어버린다.
마루에 걸터앉아 이별의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흐느끼고 있는 상우에게 할머니는 얘기한다.
"여자와 버스는 떠나면 잡지 않는 거란다."
할머니는 장롱 서랍에 고이 간직해둔 한복을 입고새 신을 신고 조그만 가방을 들고 양산을 쓰고 새색시처럼 집을 나선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다.
상우는 은수가 찾아와 다시 손을 내밀지만 그 손을 잡지 않는다. 이제 스스로 이별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것은 사랑하지만, 보고 싶지만, 언제 변할지 모르는 은수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다.
은수 때문에 일까지 그만두었던 상우는 다시 '자연의 소리'를 녹음하는 일을 한다. 강가 갈대밭이 바람에 흔들리며 춤추는 소리를 녹음하며 미소 짓는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잘 잊을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잊어야 하는데 잊지 못하면 병이 된다. 상사병도 우울증도 치매도 그래서 생기는 것이다.
좋은 일은 오래오래 기억하고 나쁜 일은 가능하면 빨리 잊을 줄 아는 게 필요하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래도 건강해지려면 행복해지려면 취사선택을 잘해야 한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 남자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이영애 배우가 은수로 나온다. 상우는 유지태 배우이다.
나는 이영애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드라마는 <장금이>가 생각난다. 궁중 요리사 옷을 입은 이영애와 <봄날은 간다>에 나오는 이영애는 사뭇 다르다. 일상복을 입은 이영애는 더 날씬하고 젊다는 느낌이다. 드라마에서는 꽤나 통통하게 보았는데 말이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마치 오드리 헵번을 보는 것처럼 《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 배우를 새롭게 본다. 너무 말랐는데 예쁘다.
영화 제목에 나오는 '봄날'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 '봄날'을 잊지 못해 가슴 아프다. 성공, 사랑, 건강, 젊음, 더 많은 좋은 절정의 순간도 언젠가 사라진다. 언제까지나 누리고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잘 잊을 줄 알아야 한다. 잊지 못하면 그것은 병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