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마를 닮은 트롤(괴물) 캐릭터 무민을 그린 작가 이야기 영화 《토베 얀손》을 보았다. 내가 고른 것이 아니고 수원미디어센터에서 골라서 집에서 볼 수 있도록 영화 상영 링크 주소를 보내주었다.
아마도 내가 직접 골랐다면 반기독교적인 레즈비언 영화는 절대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한두 편쯤 보는 것은 괜찮다 여긴다. 시대를 알아가고 대처하기 위해서이다.
1945년 러시아와 핀란드의 전쟁이 일어난 후 영화는 1947년 헬싱키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아버지 조각가는 규정된 방법으로 조각을 하지만 화가인 얀손은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그림을 그릴 때도 전통적인 방식을 벗어나 자유롭게 그린다.
얀손은 예술가 파티에서 만난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동침한다. 그런데 곧 또 부잣집 딸 금수저이며 연극 연출가인비비카와 동성애에 빠진다. 양성애자인 셈이다. 얀손은 비비카를 자신을 물고 날아가는 커다란 용으로 비유한다. 비비카는 예술가들을 누구나 자기 눈에 꽂히면 동침한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생각 '사랑은 하나다' 이런 가치관은 어째 고루하고 진부해 보인다.
토베 얀손에게도 비비카에게도 사랑은 모험이다. 아니 인생 자체가 모험이다. 새로워야 맛이 있다.
얀손이 다른 예술가에게 빠진 비비카에게 질투심을 느끼며 처음에 만났던 유부남과 결혼을 하려고 한다. 그 남자는 얀손과 결혼하려고 이혼을 했기 때문이다.
얀손은 그림을 그리다가 생계를 위해 만화를 그리게 되고 무민 캐릭터를 창조해 연극에 올리고 무대 배경과 의상도 담당하게 된다. 많은 돈을 받고 신문에 만화를 연재하기도 한다. 그리고 성공한다.
그런데 영화가 어째 좀 산만하다는 느낌이다.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진짜 소중한 것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이 영화는 도대체 무얼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사랑과 자유, 예술과 성공, 모험과 끼를 말하려는 것일까?
토베 얀손은 핀란드계 스웨덴인데 실제로도 무민을 그린 유명한 레즈비언 화가이며 작가이다. 얀손은 전쟁을 겪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평화를 주기 위해서 무민 이야기를 그리고 썼다고 한다. 얀손의 어머니는 일러스트레이션 화가인데, 얀손의 무민 시리즈에서도 리더는 무민 엄마이다.
그리고 무민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성이라고 한다. 레즈비언도 다양성의 하나인 것일까? 무민 이야기가 성공했기에 얀손의 레즈비언 사랑법도 용납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영화 《토베 얀손》을 보면서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는다.
"잘못된 가치관에서 비롯된 이 세상에서의 모든 성공은 다 부질없다."
요즘 예술작품을 보면 아름답다기보다는 끔찍한 것을 많이 본다. 음악도 미술도 영화도 문학도 끝간 데를 모르고 잘못된 길로 달려가고 있다. 심지어는 그런 작품들이 새롭다는 이유로 상을 받기도 한다. 성은 벌써 자유를 넘어 문란의 경지에 이르렀고, 귀신이며 괴물 이야기는 일반화되어 있고, 캔이나 알에서 복제 동물과 인간을 꺼내는 일도 쉽다. 살인 및 자살도 합리화되는 경지를 넘어 미화되어 있고, 지구는 이미 멸망해서 우주로 이주해 사는 지구인 이야기며 외계인과의 전쟁도 상상을 초월한다.
이제 무엇이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인지를 잘 모르는 혼란의 시대가 온 것이다. 기독교적으로 보면 말세지말이다. 창조질서가 어긋나고 아이를 낳지 않으며 모두가 다 제멋대로 살아간다. 오히려 예술과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행위를 정당화하고 부추긴다.
나는 말하고 싶다, 진리는 하나이고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러하기에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가장 사랑받는 존재라고 말이다. 동물이나 곤충이나 식물은 절대자를 믿지도 않고, 단 한 종과만 사랑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는 다양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은 제한된 다양성 속에 살아간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다.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적으로 유명해지지 않아도 성공하지 못해도 꼭 지켜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만 사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찰나이다. 죽음 이후에 다음 세상에서 영원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믿거나 말거나 우리는 결국 천국이든 지옥이든 그 어느 한 곳에서 영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켜낸 소중한 가치관을 보여 주면서 갈림길에서 하나는 이쪽으로 하나는 저쪽으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