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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익을수록 맛이 있다!

영화 《인생 후르츠》(Life is Fruity)

by 서순오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최근에 한동안 나이 듦에 대하여 이런 긍정적인 평가가 담긴 이야기가 우리들 사이에 널리 퍼진 적이 있다. 노래로도 나오고 좋은 글귀로도 만들어져서 톡을 통해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의 회갑이나 칠순, 팔순을 축하하는 꽃다발과 함께 오고 가기도 했다. 바야흐로 노령화 시대, 우리는 젊어서보다도 더욱 멋진 노후를 원한다.


오늘 본 영화 《인생 후르츠》는 보다 적극적으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노후 인생의 아름다움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일본인 노부부 90세 슈이치와 아내 87세 히데코는 전원에 15평짜리 방 한 칸이 있는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알콩달콩 살아간다. 무로 둘러싸인 층집에 살면서 70종의 채소와 50종의 과일나무를 가꾼다.


"차근차근 천천히 인생이 맛있게 영글었다."

영화 포스터에 적힌 카피처럼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땅이 좋아지고 열매가 풍성하게 잘 익어가고, 그리고 노부부의 인생도 맛있게 영글어간다.


일본의 유명 배우 키키 키린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히데코가 고백하는 목소리 같이 들린다. 다소 딱딱하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더욱 흙속에서 살아가는 노부부의 강인함과 다부짐을 부각시켜 준다.


자연 속에서 백년해로하는 노부부는 참 아름답다.

"오래 익을수록 인생은 맛있다!"

"좋은 일은 반드시 돌고 돌아 나에게 돌아온다."


아내 히데코는 가장 좋은 것을 남편 슈이치에게 준다. 음식도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맛있게 만들어준다. 자신이 먹지 않는 감자 같은 것도 매일 방금 튀긴 크로켓으로 만들어준다. 히데코는 온갖 종류의 잼, 케이크, 요구르트 등 못 만드는 게 없다. 직접 가꾼 채소와 과일과 시장에서 장 봐온 생선들은 히데코의 손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어진다.


슈이치는 젊어서 요트선수였지만 이후 일본 주택 공단에서 일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전쟁 후 폐허가 된 일본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자연이 어우러진 뉴타운을 계획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결국 슈이치는 축 일을 그만두고 교외에 땅을 사서 50년 동안이나 숲을 가꾸었다.


어느 날, 정신과 병원에서 새로운 동을 짓겠다며 슈이치에게 설계를 부탁한다. 슈이치는 건물 사이에 나무가 있고 길이 트여 곳까지 잘 보이는 자연과의 공존 건물 설계도를 그려준다.


이들 부부는 해외여행도 많이 하고 <밭일 1시간, 낮잠 2시간>, <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 등의 책을 내기도 했단다. 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찾아서 읽어봐야 겠다.


슈이치는 먼저 가고 히데코는 혼자 남는다. 그러나 늘 남편 사진을 식탁에 놓고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차려서 함께 이야기 나누며 식사를 한다.


슈이치 사후 정신과 병원은 슈이치의 도안대로 건물을 짓는다. 그가 원하던 자연과의 공존 건물이 세워지는 것이다.


두 딸들도 아버지 슈이치를 기억한다. 갖고 싶어 하던 '인형의 집'을 플라스틱이 아닌 목재로 예쁘게 지어주시던 아버지, 흙을 비옥하게 해서 물려주려는 아버지, 새들이 와서 목을 축이도록 옹달샘 항아리를 만들어 놓은 아버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순간순간이 감동이다.


아직 살아갈 날이 남은 히데코도 두 딸들도 차근차근 천천히 인생이 맛있게 영글어갈 것이다. 나 역시 나이 들어가는 것이 좋은 사람이라 나의 인생도 그러하기를 소망해본다.

영화 《인생 후르츠》(Life is Fru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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