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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Jun 26. 2023

급변경 설악산 흘림골

설악산 흘림골+주전골

신산에서 설악산 산행을 간다. 설악산은 벌써 5번 이상 탄 산이니까 길은 조금 아는 편이고 또 시간이 총 14km에 9시간이면 열심히 걸으면 탈 수 있을 듯해서 대청봉을 찍을까 했다. 한계령~한계령삼거리~끝청~ 중청~대청봉~오색 코스로 말이다.


늘 무박산행만 하다가 당일코스라 오색으로 내려오면서 멋진 폭포들을 볼 수 있겠다 싶었는데 아쉽게도 차가 너무 막힌다. 설악산 한계령에 11시도 넘어야 도착을 하겠단다. 오후 6시까지 하산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내 보폭으로는 7시간 내에 대청봉 찍기는 무리이다. 대청봉을 오르려면 아무래도 무박산행을 해야겠다.


가는 길 버스에서 급변경해서 흘림골 코스를 타기로 한다. 총 7km, 5시간 소요 예정이다. 흘림골은 지난겨울에 한 번 다녀왔는데 탐방 예약을 해야 갈 수가 있다. 홈피에 들어가 보니 당일이라 예약 안 된다. 그런데 옆자리 앉으신 분이 일행 중 1명이 안 와서 예약한 게 남는단다. 그래서 안전하고 여유 있게 흘림골 코스를 타기로 한다.

 

이렇게 하여 흘림골 산행은 뜻밖에도 남산우님들 5분과 동행한다. 탐방 예약도 1명이 안 와서 덕을 봤는데, 함산 하게 되어 여러 모로 덕을 많이 본다. 사진도 찍어주면서 이야기도 나누면서 재미나게 걷는다. 시간도 여유가 있으니 금상화이다. 름 설악산 산행은 처음인데 계곡이 시원한 흘림골에서 물놀이도 하면서 천천히 걸어야겠다.


여자의 깊은 곳을 닮았다는 여심폭포와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고, 약간의 간식을 먹고 쉬어간다. 오전 11시 20분부터 오르기 시작해서 시간이 거의 12시가 다 되어가기에 점심식사를 하면 좋겠다 싶었지만 등선대 오르고 하산할 때 먹을 거란다.


대학 동창생 6명이 한 달에 한번 산행을 하는 데도 회장, 총무, 산악대장이 다 있단다. 재미난 모임이다.


이전에 흘림골 왔을 때는 등선대까지 꽤 멀었던 기억이 있는데, 오늘 다시 와보니 금방이다. 흘림골탐방센터에서 등선대까지 1.2km이다. 거의 1시간 정도 오르니 등선대이다.


"이렇게 가까웠나?"


등선대삼거리에서 등선대 오르는 길은 전망이 무지 좋다. 설악산 귀때기청봉, 끝청, 대청봉이 시원스레 보인다. 조금 떨어져서 보는 설악산의 주능선 미루금은 그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진풍경을 자아낸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 설악의 봉우리들과 굽이굽이 산 그리메, 초록숲과 구불구불 길, 우뚝우뚝 솟은 기암괴석, 이런 곳을 오를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등선대 정상은 조금 올라가기가 어려운 암릉이다. '추락위험'이라 쓰인 판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거기를 올라가서 찍어야 제대로 된 인생샷이 나온다. 함산 한 분들 대부분은 안 오르고 나와 회장님만 올라가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원 없이 많이 찍었는데 다 이쁘게 나왔다.  위에서 설악산 대청봉, 끝청, 귀때기청봉과 주능선을 조망하며 동영상도 찍는데 발 디디는 부분이 아슬아슬해서 몸을 돌리지를 못하겠다. 그래도 바위 머리를 잡고 간신히 360도 돌아가며 풍경을 담는다.  


등선대 전망대에서도 점봉산 쪽도 보이고 기암괴석 조각품들이 자태를 뽐내며 우람하게 서 있다. 설악산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산행이 바로 흘림골 코스이다.


귀때기청봉 코스를 탈 때도 설악산 전체 조망이 좋았는데 역시나 산을 제대로 보려면 조금 떨어져서 보아야 한다.


등선대에서 내려와 등선대 삼거리부터 가파른 내리막길이 한참 이어진다. 겨울에는 아이젠을 자고 조심조심 내려갔는데 여름에 오니까 한결 쉽다. 초록숲이 우거져 한여름인 데도 하나도 덥지 않고 시원하다. 산은 이래서 매력이 있다.


등선폭포에 물이 제법 많다. 바가 온 뒤라 그런 것 같다. 등선폭포 옆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함산 한 다섯 분의 산우님들이 맛있는 것을 골고루 싸 오셨다. 고구마묵, 살구자두, 오이지, 창령떡, 금귤, 바나나, 방울토마토, 육포,  볶음밥, 유부초밥 등 이것저것 먹다 보니 배가 너무 부르다.


그래도 커피는 꼭 마셔야 한대서 생수 500ml 물병에 커피를 타서 흔들어서 등선폭포 흘러내리는 물에다 담가 놓았더니 금세 시원해진다. 후식으로 과일과 함께 커피를 마시니 이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다.

 

한참 편안한 길로 내리걷다가 한 번의 가파른 오름구간 지나니 경쾌한 물소리와 함께  십이폭포가 나온다. 구불구불 십이폭포는 길게 이어진다. 시작 지점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계속 계곡을 따라 시원스럽게 흐른다. 아쉽게도 출입금지라 들어가 볼 수는 없다.


이전에 왔을 때 살짝 들어가 보니 폭포 밑에 바위가 아주 미끄럽다. 폭포가 조금 완만하게 경사가 져 있는데 잘 모르고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어서 출입금지 표시를 해놓은 것 같다. 산행에서 해놓은 경고 및 금지 표시는 잘 지키는 게 안전을 위해서 좋다.


계곡에서 하는 물놀이는 여름 산행의 별미이다. 그래서 여름엔 계곡이 좋은 산이 인기만점이다. 땀을 쭉쭉 빼고 산행한 후에 계곡에서 옷을 입은 채로 들어가 물놀이를 하면 더위가 한방에 날아간다.


그런데 오늘은 산에서 그리 덥지 않아 땀도 별로 안 흘리고 계곡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으니 그냥 저절로 땀이 다 식는다. 옷도 금방 마른다. 흘림골에선 그 어떤 신선도 부럽지 않다.


참, 함산 한 분 중 산악대장님이 그새 알탕하기 좋은 장소를 찾았다면서 다음 달에 여길 또 온단다. 나 보고도 보라기에 가니까 아주 숨겨진 장소에 여자들이라도 물속에 들어가 놀아도 좋을 만한 장소가 있다. 물이 깊지도 않고 등산로에서 보이지도 않고 물도 콸콸 흐르고 딱 좋다.


흘림골, 주전골은 폭포와 계곡의 천국이다. 계곡 옆으로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면서 느리게 천천히 걷노라면 세상 욕망과 시름을 다 잊는다.


한 때 사랑했던 사람들, 이세상을 떠난 그리운 이들도 하나하나 계곡흐르는 물에 떠내려 보낸다. 잠 못 들던 청춘의 꿈도 열정도 이내 절벽에 올렸다가 폭포에 실어보낸다. 가족과 친구와 가깝고도 먼 관계의 애증이 소용돌이치며 섞여 옥빛 담에 머문다.


그리고 조용히 다소곳이 묵묵히 흐르는 낮은 계곡의 숨소리로 잦아든다. 맑고 고요하다. 바위 위로 물빛이 스며든다. 형체가 보이지 않는다. 흐르고 있는 것일까?


계곡 물이 가고 싶은 곳은 굽이굽이 산과 들을 가로지르는 강일까? 더 깊고 넓은 바다일까? 을 알 수 없는 지하 세계일까?저 푸른 하늘 높이 떠 있는 흰 구름의 품일까?


어디까지가 흘림골이고 어디까지가 주전골인가 조금 헷갈렸는데 함산 한 산우님들이 한 달 전에 주전골만 왔다 갔단다. 용소폭포까지 걸었다면서 오늘은 거길 안 들르고 그냥 내려간단다. 나도 함께 했기에 용소폭포에 들르지 않고 따라서 내려온다. 흘림골뿐 아니라 주전골은 폭포산행이라고 해도 될 만큼 폭포가 많다. 또 나도 지난번에 왔을 때 용소폭포를 둘러보았다.


그 대신 남는 시간에 계곡에서 발 담그고 놀다 간다. 아직은 알탕 하기에는 이르다. 물속에 조금만 있어도 발이 시리다. 바위 위에 벌러덩 누워서 쉬는 분, 포즈를 취하며 사진 찍는 분, 나는 팔토시도 빨아서 고목 부러진 곳 위에 말려놓고 얼굴도 씻고  재미나게 논다. 한 30여 분 놀고 일어나려는데 남산우 님 한 분이 여기서 한 시간 정도 더 있다 가면 좋겠단다. 완전 신선놀음이니까 내려가기가 싫은 거다.


흘림골, 주전골 산행 안내도를 보니 정확하게 코스를 알겠다. 흘림골 코스는 흘림골탕방센터~ 여심폭포~등선대~등선폭포~십이폭포~흘림골삼거리~오색이고, 주전골 코스는 오색~선녀탕~용소폭포~망경대이다.


두 코스의 차이점은 흘림골 코스로 탐방 예약을 하면 주전골도 다 둘러보면서 걸을 수가 있는데, 주전골 코스로 탐방 예약을 하면 주전골탐방센터~용소폭포~선녀탕~오색으로 코스가 짧고 길이 평탄하다. 흘림골 십이폭포~등선폭포~등선대~ 여심폭포 등은 보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용소폭포에서 오색으로 가지 않고 흘림골 쪽으로 거꾸로 오를 수도 있기는 하다. 그렇게 거꾸로 가면 오름길이 대부분이고 급경사 코스도 많아 무척 힘이 들 것이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걸어볼 수는 있겠다. 가끔 흘림골 지역을 걸을 때 주전골 쪽으로 가는 우리와는 반대쪽에서 오는 이들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 코스를 타는 것 같다.


주전골 선녀탕은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하고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독주암은 아주 높은 암릉 위에 딱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바위가 있단다. 독좌암으로 부르다가 독주암이 되었단다. 저 높은 곳을 어떻게 올라갔을까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영국사 오색석사는 약수인데 철분이 없고 물맛이 좋다. 함산 한 산우님들이 사진을 찍기에 가보니 약수가 있어서 먹고 빈 물병에 물을 받아온다.  


주전골 계곡은 데크길이 잘 만들어져 있다. 오색 쪽은 휠체어를 타고도 갈 수 있는 데크길이 있다. 돌길과 데크길이 나란히 있는 길도 있다. 하산 완료지점에 무장애 나눔길이라는 안내가 되어 있다. 곧 오색약수터가 보인다. 총 7km, 6시간(점심, 휴식, 물놀이 시간 포함) 소요되었다.


뒤풀이는 산촌식당에서 산채비빔밥, 감자전, 코다리구이로 한다. 공교롭게도 내가 처음 흘림골 왔을 때 함산 한 산우님과 갔던 식당이다. 오늘 함산한 산우님들도 지난달 산행 후에 이곳에 들렀단다. 음식이 맛있고 푸짐하고 값도 싸서 가성비 최고인 맛집이다. 5명의 산우님들은 오늘 못 온 1명 포함 총 6명이 다음 달 산행 후에 또 들르겠단다.

여심폭포, 등선폭포, 십이폭포
등선대에서 귀때기청봉, 끝청, 대청봉이 보인다
등선대 암릉 위에서
흘림골 물놀이
흘림골, 주전골 기암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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