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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Jul 16. 2023

운무 속 죽었다 살아난 핸드폰 덕분에!

수원 광교산

어제 수채화 시간에 아침 10시 조금 넘어서 커피를 마셨는데 새벽에 깨서는 잠이 안 온다. 2시 반에 일어나 중국어 공부에다 이것저것 한다. 그러다가 잠시 누워 있다가 아침 7시 30분에 알람이 울려서 반찬을 만들고 산행 준비를 해서 13번 버스 타고 광교산으로 간다.


상왕교종점에서 내려 노루목~시루봉 코스로 올랐다가 원점회귀해도 겠다. 오늘 날씨가 어떨지 모르기 때문에 좀 짧게 타도 좋겠다. 비는 안 오고 흐림으로 예보되어 있는데 그래도 모른다. 문암골에서 내려 형제봉~비로봉~시루봉~상왕교종점 코스도 좀 길지만 10km 이내라 괜찮긴 하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릴 때 정거장을 지나쳐 용머리다리라는 곳에서 내린다. 트랭글 운동하기를 누르고 광교산 쪽으로 방향을 잡고 도로길을 걸어간다. 숲길로 들어선다. 계곡에 물이 콸콸 흐른다. 임도길로 들어선다. 길 위에도 얕은 강물처럼 물이 흐른다. 조금 더 걸으니 자갈이 깔린 길 옆으로 사과나무 밭이 나온다. 농원이다. 여기서 조금 알바를 한다. 사과나무밭을 빙 돌아서 산길로 들어선다. 광교산 등산로이다.


산에 운무가 가득하다. 셀카에 자신은 없지만 한 컷 찍어본다. 산에 사람 하나도 없이 나홀로 촉촉이 젖은 초록숲을 온통 누리며 걷는다. 참 좋다.


산을 몇 번 오르고는 그 산에 대해서 구석구석 알기는 좀 어려운 것 같다. 철탑을 지나가는데 그게 있었던가 싶다.


그런데 입산통제 및 오토바이 금지를 알리는 현수막을 보니 그곳은 지난번에 올랐던 곳이다. 이제 드디어 아는 길로 들어선 것이다.


계속 오른쪽으로 가다가 반딧불이화장실에서 오르는 길과 형제봉 가는 길과 내가 용머리다리에서 오르는 길이 만나는 형제봉 삼거리 지점 쉼터가 나온다. 드디어 지나가는 남산우님 한 분을 만나 사진부탁을 한다.


너덜지대 지나 곧 형제봉 바로 아래 데크길에 선다. 형제봉 오르는 데크길과 암릉 위에서는 조망이 아주 좋은데, 운무가 끼여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 저기가 아파트가 보이는 지점이겠구나, 상상을 하며 뽀얀 운무 바다를 내려다본다.


산우님 셋이 올라오기에 형제봉 인증숏을 찍는다. 형제봉 정상석은 언제 봐도 늠름하다.


바로 비로봉, 시루봉 쪽으로 내려간다. 데크길이 많다. 핸드폰 시계를 보니 오후 1시가 다 되어가기에 전망대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까만 들고양이 한 마리가 전망대 바로 아래 앉아서 점심을 먹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먹을 걸 조금 나눠달라는 신호다. 밥을 조금 남겨 들고양이 쪽으로 쏟아준다. 화다닥 달아난다. 조금 있다 다가와서 음식을 먹는다. 일어나서 아래쪽을 자세히 살펴보니 누군가 밥그릇을 놓아두었다. 물이 가득 고여있다.


나무데크길 내려간다. 한동안 편안한 길이다가 두서너 번 가파른 데크길 오름길 구간이 나온다. 힘은 들지만 바람도 불고 시원해서 걷기가 좋다.


운무가 점점 짙어져 산을 온통 덮어버린다. 한 치 앞을 보기가 어렵다. 운무 속에 멋진 나무들이 더욱 신비스러운 자태를 뽐낸다.


아, 그런데, 시루봉 근처에 가서 발도장을 찍으려는데 자꾸 핸드폰 오류가 나온다. 할 수 없이 핸드폰을 껐다가 다시 켜 보는데 아주 꼼짝을 않고 먹통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도무지 살아날 생각을 안 한다. 기왕 오른 거 시루봉 인증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한 무리여산우님들이 올라온다. 산악회 팀인 모양이다. 사진을 전담해서 찍는 이가 있기에 부탁을 해본다.

"혹시 제 사진 한 장 찍어서 보내줄 수 있어요? 제 핸드폰이 먹통이 되어서 그러는 데요."

나만 슬쩍 한 번 쳐다보더니 아예 아무 대꾸가 없다.

"어째 인심이 그리 박하냐?"

서둘러서 그냥 내려온다.


내가 시루봉 오를 때 네 사람이 먼저 와서 점심을 먹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도 부탁을 안 한다. 그런 카페에 산행후기 올라온 걸 보니 이 네 분은 내가 가끔 이용하는 산악회의 수도산님들이다. 얼굴을 알았으면 인사라도 하고 차라도 한 잔 같이 했을 걸 싶다.


백운산 방향 노루목 쪽으로 빠르게 내려간다. 남산우님 두 분이 평상복 차림으로 올라오고 있다.

"상왕교 쪽에서 오시나요?"

"네."

"길은 괜찮아요?"

"네. 비에 흙이 씻겨서 미끄럽지 않고 좋아요."


그분들은 시루봉으로 올라가고, 나는 노루목 쉼터에 들어가서 한숨 돌리고 앉아 있는데, 핸드폰에 퍼뜩 정신이 돌아온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으니 다시 올라가자."

그러고는 시루봉으로 올라간다.


아까 만난 남산우님 두 분이 내려오고 있다. 시루봉 바로 아래 지점이다.

"정상에 사람 있어요?"

"아뇨. 아무도 없어요."

"그럼 제 사진 좀 찍어주고 가실래요?"

"그러죠, 뭐. 저희도 둘이 같이 한 장 찍어 주시죠."

함께 시루봉에 올라가 여러 장의 사진을 남긴다.


어쩌다 보니 남산우님 두 분과 하산길 동행을 한다. 노루목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선다. 걸어보지 않은 새로운 길인데, 편안하고 도란도란 재미있다. 장우산을 지팡이 삼아 성큼성큼 앞서 가는 남산우님  하는 말이 남양주에 사는 친구가 놀러 와서 함께 점심을 먹고 무작정 산에 올랐다고 한다. 친구분은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와 구두 차림이다.

"세상에나! 비 온 후 산행을 어찌 그런 차림으로!"

나는 속으로 놀라며 내 뒤에 오시는 그분이 혹시나 미끄러질까 봐 자꾸 신경이 쓰인다.


그래도 곧 시원한 계곡이 나오고 물이 콸콸 흐른다. 광교산도 계곡이 참 좋다.


약수터가 있어서 물 한두 모금씩 마신다. 계속 계곡이 이어진다. 계곡을 따라 걷는 길도 좋다.


광교산은 여러 번 올랐지만 계곡은 처음 만난다. 연일 비 온 뒤라 계곡에 수량이 풍부해 장관을 이룬다. 계곡이 아닌 곳에서도 작은 폭포가 생겨난다.


하산길 끝부분 계곡에서 발을 씻고 쉬어가기로 한다. 수온도 딱 적당하다.


비가 올지도 모르고 또 혼산이라서 먹을 것은 딱 도시락만 싸가서 나눠 먹을 것이 없어 아쉽다. 비상식은 언제나 필요한 건데, 오늘은 배낭까지 작은 걸로 바꿔 메고 와서 늘 배낭에 담아두는 초콜릿이나 사탕도 없다.


두 분은 점심 후라 바로 올라와서 물도 안 가져왔다는데, 먹을 것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


수원에 사신다는 남산우님 한 분은 색소폰을 취미로 연주하고, 산행도 가끔 혼자 하신단다. 구두 신고 오신 남산우님은 말수가 별로 없으시다. 가끔 가다 하는 말은 이런 것이다.

"사진 찍어 드려요?"

"여기 계곡 멋진 데 사진 찍어 드려."

덕분에 사진을 아주 많이 남긴다.


하산해서 보니까 원래 오르려고 했던 상왕교 쪽에서는 길이 다 파여서 광교산 오르는 게 어렵겠다. 관리소에 입산통제 문구가 뜨고, 금지줄도 쳐 있다. 우리는 내려오는 길이라 상관없이 지나왔지만 말이다.


그런데 사실 초입 길에만 조금 길이 파여 있고 다른 길은 다 좋다. 조심해서 오르면 괜찮다.


맨발로 걷는 길도 나오는데 한 번도 안 걸어봤다. 기회가 되면 걸어보고 싶다.


나의 광교산 산행 기록은 용머리다리~형제봉~ 비로봉~시루봉~노루목~약수터~상왕교종점 코스로 약 10km, 5시간 소요(점심, 휴식, 물놀이 시간 포함) 되었다.


오늘도 이래저래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경험을 한다. 시루봉 정상에서 내 핸드폰이 먹통이 된 일이 얼마나 유익한 일이 되었는지 돌아본다. 남산우님 두 분을 만나 전혀 새로운 하산길 안내를 받는다. 덕분에 개인 사진도 많이 찍고 물놀이도 하고 말이다.


두 분은 저녁식사를 하고 오신다는데, 오후 4시가 채 안 되어서 나는 시간이 조금 이르다. 점심 먹은 지가 3시간 밖에 안 되어서이다.


암튼 덕분에 더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이 되어 감사하다. 가끔은 산악회에서 얼싸들싸 흥겹게, 가끔은 혼자 고즈넉하게, 가끔은 산에서 만난 낯선 이들과 동행하며 새로운 느낌으로, 산행은 늘 즐겁기만 하다. 언제까지 산을 탈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나 체력이 허락하는 한 산행을 계속하고 싶다.

광교산 숲길 계곡
사과밭 한바퀴 빙 돌아 알바
산행 시작부터 운무가 끼기 시작하더니 점점 짙어진다.
형제봉 삼거리 지나 사진 한 컷!
"광교산이 아름다운 건 수원 시민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형제봉 암릉과 소나무
형제봉 데크길과 표지석
형제봉 인증샷!
광교산 운무산행
시루봉 정상석과 아기용 포토존
시루봉 인증샷!
광교산 계곡 물놀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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