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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Sep 29. 2023

끝까지 해내는 것, 그것이 예술이다

영화 《오마주(Hommage)  》

영화 《오마주》에 나오는 주인공 여감독 지완은 세 번째 영화를 찍은 후 슬럼프에 빠진다. 대중의 반응도 시원찮고 가족들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엄마 영화가 재미없다'는 아들과 더 이상 생활비안 주면서 ' 달라' 하는 남편이 옆에 있다.


그래서 생활고 때문에 영상자료원의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그것이 영화와 관련된 일이다. 1960년대 두 번째 여감독 홍은원이 찍은 《여판사》라는 영화의 더빙이다.


그런데 영화는 필름에 줄이 가는 등 아주 낡았다. 더군다나 처음에는 잘 나오던 소리와 음악이 중간부터는 아예 없는 상태로 무성영화처럼 이어진다. 어느 부분에서는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은데 검열에 의해 잘려나가기까지 다.


지완 감독은 영화의 온전한 복원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당시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하나하나 자료발굴을 한다. 《여판사》를 찍은 여자 감독의 딸, 당시의 촬영기사, 편집자, 상영관을 찾아가 영화를 송출했던 기사를 만난다.


여판사를 찍은 홍은원 감독은 바바리에 모자를 쓰고 담배를 피워대면서 명동의 카페 구석에 앉아 시나리오를 다. 이 여성 감독도 지완 감독처럼 세 번째 영화를 찍는다. 지완은 홍감독과 자신을 동일시했을 수 있다. 실제로 홍감독은 이후 더 이상 영화를 찍지 못하고 죽음을 맞지만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제목이 조금 낯설어서 왜 '오마주'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았다.


'오마주(Hommage)'라는 말을 찾아보니 '작가나 감독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특정 대사나 장면 등을 인용하는 일'이라고 나온다. 오마주》의 수원 감독이 《여판사》의 홍은원 감독에 대한 존경을 담은 영화인 것이다.


2021년에 개봉된 《오마주(Hommage)》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예술 작업을 할 때, 그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작품을 완성해 내는 정신이 중요하다는 걸 말해 주는 것 같다.


몇 년 전 악양 평사리 토지문학관을 가본 적이 있는데, <토지>를 쓴 박경리 작가는 암에 걸려 투병하면서도 소설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쇠락해가는 자신의 몸 보다도 어떻게든 대하소설을 마무리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오마주의 지완 감독 역시 중간에 끊겨서 사라져 버린 필름을 찾아 끝까지 추적에 추적을 거듭한다. 홍은원 감독의 마지막 자취를 따라가던 지완은 길을 가다 말고 모자 쓴 여성의 그림자와 마주치면서 가만히 멈춰 서서 그것을 바라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자꾸만 사그라들어가는 영화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다.


신수원 감독의 <오마주>는 데뷔작 <레인보우>(2010)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라는데, 나는 아직 《레인보우》를 보지 못다. 조만간 《레인보우》를 보아야겠다. 《오마주》는 한국영화의 두 번째 여성 감독인 홍은원과 한국의 모든 여성 영화감독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 문학 등 모든 예술은 대중의 반응과 인기와 상관이 있다. 그러나 훌륭하고 위대한 예술이라고 해서 반드시 당시 대중의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다. 고흐, 이중섭 등 많은 미술가들도 극한의 굶주림에 시달렸고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그림 그렸다.


오마주 지완 역시 힘들여 만든 영화가 대중으로부터 반응을 얻지 못해 힘이 빠진다. 가족들에게도 지지를 받지 못하고, 함께 일하던 동료 떠나는 아픔 겪는다.  


그러나 그래서 멈추면 그것은 예술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계속하면 예술이 될 것이다.


《오마주》에서 지완 역을 맡은 이정은 배우는 영화 《기생충》에서 가정부 역을 했던 배우이다. 영화가 난항을 겪는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지완의 모습을 잘 연기해내고 있다.


오마주》의 지완 감독은 《여판사》를 복원하면서 다시 새로운 힘을 부여받아 영화를 계속 만들게 될 것 같다. 누가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배가 고프던 안 고프던, 대중의 호응을 얻든 못 얻든,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끝까지 해내는 것, 그것이 예술이다. 언젠가 누구라도, 지금이 아니면 후대에라도, 그것은 꼭 알아봐 주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예술은 그렇게 해서, 철저한 고독 속에서, 우뚝 역사 속에 살아남것이다.

영화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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