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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Dec 20. 2023

6. 은은 향수와 금가루 화장품

계절의 여왕 5월이었다. 빛나고 앞 운동장을 빙 둘러서 있는 울타리에 빨간 장미꽃이 눈부시게 피어났다. 장미꽃을 배경으로 아이들이 삼삼 오오 학교로 들어갔다 나오는 풍경은 그야말로 싱그러움 그 자체였다. 그 어느 아이도 장미꽃 앞에 서면 오월의 신부처럼 빛이 났다.


교정의 앞뜰은 깎아놓은 초록 잔디에서 나는 풀 냄새로 진동을 했다. 뒤뜰 화단의 분홍 하양 노랑 장미도 누가 더 예쁜가 내기라도 하듯이 피어났다.


차의지 교장 선생님은 날마다 화단을 가꾸면서 장미꽃 향을 맡으며 서 있곤 했다. 순진은 차의지 교장 선생님만 보면 기분이 묘했다. 꼭 아빠를 보는 것 같았다. 교장선생님이 쪼그리고 앉아서 호미로 화단의 풀을 뽑고 있을 때는 가만히 다가가 양 손으로 눈을 가리고 '누구게?' 라고 말해보고 싶었다. 화단의 일을 끝내고 서 있는 교장 선생님의 체크무늬 남방을 볼 때면 와락 뒤에 가서 껴안고 싶기도 했다. 아빠가 살아있을 때 순진이 늘 하던 버릇이었다.
“아빠라면 참 좋겠다!”

순진은 물끄러미 교장선생님을 바라보다가 교실로 들어가곤 했다.


순진 엄마는 갑자기 다단계 판매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치약과 비누 같은 생활필수품을 바꿔보면 좋다는 말에 여고 동창생 친구를 따라나선 것이 그만 한 번 교육을 받고 오더니 홀딱 빠져버린 것이다.


“이 치약으로 이를 닦으면 얼마나 뽀드득거리는지 아니? 치석 제거는 물론 미백효과도 있다니까. 아주 조끔씩만 짜서 쓰면 되니까, 값이 싼 다른 치약에 비해서 그리 비싸다고 볼 수도 없어. 이거 쓰다 보면 다른 치약을 못 쓴다니까.”

처음에 엄마 친구는 직접 써 봐야 안다면서 치약을 한 개 선물로 주었다. 엄마는 그 치약을 써보고는 연신 감탄을 했다.
“야! 이거 정말 좋은데! 이빨이 뽀드득뽀드득 아주 상쾌하단 말이야. 거 참 신기하네. 순진이 너도 한번 써봐.”
엄마는 순진에게 치약을 직접 짜 주면서 이를 닦아보라고 했다.
“ 어, 정말 그렇네요. 아주 좋아요.”
그래서 순진 엄마는 이번에는 비누를 바꿔 써보기로 했다. 비누 역시 향이 좋고 거품이 잘 나고, 샤워를 하고 나면 몸이 개운하면서 상쾌한 느낌을 주었다.


순진엄마는 샴푸, 커피, 생수, 영양제까지 두루 사들였다. 아빠가 살아생전에 쓰던 서재 책장에 꽂혀있던 책들이 박스로 내려지고 다단계 물품들이 채워지기 시작하더니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빠의 서재에는 이제 반이나 다단계 물품들이 들어찰 정도였다.


순진은 아빠 서재에 들어가서 은은 향수와 금가루 화장품 남성용을 한 개씩 집어서 조그만 쇼핑백에 담아서 가방에 넣었다. 교장 선생님 방에 가져다 놓을 예정이었다. 차의지 교장 선생님이 아침저녁으로 등하교 때마다 순진을 미행할 정도로 좋아하고 있다면 이제 표현을 해도 좋을 것 같아서였다.


순진이 집에서 일찍 나왔기 때문에 학교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교장 선생님 방에도 역시 아무도 없었다. 교장 선생님은 학교에서 제일 먼저 출근하시지만, 화단 가꾸는 것을 좋아해서 오늘도 뒤뜰에 계실지도 모른다. 순진은 슬그머니 교장 선생님 책상 위에 은은 향수와 금가루 화장품이 담긴 쇼핑백을 두고 나왔다.


“야, 이순진. 너 뭐 하는 거야?”
학생회 일로 상의할 것이 있어서 일찍 학교에 왔다며 강민이 교장 선생님 방문 앞에 서 있다가 순진과 마주쳤다.
“뭐, 별거 아냐!”
순진은 얼굴을 붉히며 부리나케 교실로 들어갔다.
“쟤가 오늘 참 이상하네.”


강민은 교장 선생님 방문을 똑똑 노크하다가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돌아섰다.
“아, 화단에 계실지도 모르겠네.”


강민은 뒤뜰 화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장 선생님이 호미로 화단에 난 풀을 뽑아서 화단 둔덕에 놓아두고 있었다. 풀은 언제 자라는지는 모르지만 쑥쑥 자랐다. 교장 선생님이 날마다 풀을 뽑는 데도 화단 둔덕은 뽑아낸 풀이 꽤나 쌓여 있었다.
“교장 선생님!”
강민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교장 선생님은 허리를 펴며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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