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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Dec 26. 2023

성탄절 아침 눈 내리는 수원화성 성곽길

밤새 눈이 소복이 내렸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아무도 밟지 않은 수원화성 성곽길을 걸어보고 싶어서다.


사람이 거의 없다. 내 뒤에 젊은 청년 하나가 가벼운 배낭을 메고 올뿐이다.


한참 가니 부부 한 쌍이 아침 산책을 나왔다. 봉돈을 배경으로 사진 부탁을 한다. 사람 있을 때 한 컷이라도 남기기 위해서다.

"이리 서 봐라 저리 서 봐라."

사진 찍어주는 이들은 마치 사진사라도 되는 양 주문이 많다. 참 친절도 하다.


팔달문(남문)에서 올라왔는데, 동북포루, 봉돈, 동포루 지나 창룡문에 이르니 눈 쌓인 연무대가 신비롭게 펼쳐진다. 창룡문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고풍스럽다.


창룡문과 연무대 사이에는 도로가 있어 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다닌다. 영상을 찍어보고 싶지만 자동차소리 때문에 생략한다.


동북공심돈 가까이 가니까 또 부부 한쌍이 나와서 산책을 한다.

"아침 일찍 나오니까 이런 진풍경을 보네요."

"그러게요. 이런 날은 일찍 나오는 사람이 행운이죠."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이야기도 나눈다.

눈 쌓인 창룡문, 동북공심돈, 연무대 풍경이 넘 예뻐서 한참 눈을 맞추고 서 있는다.


연무대 쪽으로 가까워지니 눈 쌓인 나무들이 멋스럽다. 눈꽃이 활짝 피었다. 겨울에만 볼 수 있는 꽃이다. 리 가지 않아도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올 겨울 눈잔치를 한다.


커다란 카메라를 메고 출사 나온 분들도 눈에 띈다. 나무들이 눈꽃을 가득 피우고 있는 풍경 속으로 엉덩이를 대고 미끄럼을 타면서 내려간다. 길이 없는 가파른 언덕이다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찮아요."

시골출신인가 보다. 눈 내린 언덕배기에서 미크럼 타는 고수들이다.


수원화성 성곽길의 꽃은 방화수류정과 용연(왕의 연못)이다. 멀리서 보아도 눈이 부시다. 방화수류정과 용연한 번에 보이는 지점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그런데 군인들이 길 위에 쌓인 눈을 다 치우고 있다. 아마도 방화수류정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서 안전을 위해서 그러는 것 같다. 눈을 밟으러 나온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팔달문에서 연무대까지는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길을 꽤나 싱그럽게 걸어서 다행이다.


용연을 한 바퀴 돌면서 보는 방화수류정은 그 자태가 사뭇 의연하다. 높이 솟아 있는 기개도 보인다. 저곳에 정조대왕이 앉아 용연을 내려다보며 나라 걱정을 했을 것도 같다. 때로는 친히 북암문을 통해 용연으로 나와서 뒷짐을 지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발 한발 걸을 때마다 백성과 나라를 생각했을 것도 같다.


오늘은 방화수류정은 올라가지 못하게 줄을 치고 금지 표시를 해놓았다. 높아서 미끄러울 수도 있고 난간이 위험할 수도 있어서 그랬을 거다.


나는 수원화성 성곽길을 팔달문에서 화서문까지 반만 돌고 수원천 모수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온다. 약 1시간 30분 정도 걸은 것 같다.


졸졸 흐르는 수원천에 오리들과 왜가리들이 놀다가 내가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니 모두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린다. 얼음짱 밑으로 흐르는 강물과 눈꽃을 피운 갈대들도 싱그럽다.


성탄절만 아니면 아마도 팔달산 수어장대까지 올라갔을 것이다. 수원화성 성곽길을 한 바퀴 둥글게 도는 일은 다음 눈 오는 날로 미룬다. 눈을 기다리다 눈이 오니 눈길을 걷고 내 마음도 하해지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침이다.

동북포루
눈꽃
동포루
봉돈과 창룡문
창룡문에서 바라본 연무대
동북공심돈
연무대
새하얀 눈길
방화수류정을 배경으로
방화수류정과 용연(왕의 연못)
눈꽃과 억새
화서문과 수원천
모수길
수원천 왜가리와 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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