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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Jan 27. 2024

아버지의 레고 놀이터가 아이의 놀이터가 되고

영화 <레고 무비>

는 레고를 가지고 논 적은 없지만 우리 아이들은 레고를 꽤 많이 가지고 놀았다. 울 아들은 커다란 알이 굵은 레고로 엄청 큰 장군로봇을 만드는 걸 좋아했다.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천장까지 닿을 것처럼 장군로봇은 덩치도 키도 컸다. 그것을 조립해 놓고 기분이 엄청 좋아서 의기양양해하곤 했다. 나는 너무 놀라고 기특해서 아이를 꼭 끌어안아 주거나 번쩍 들어 올려서 빙글빙글 돌려주기도 했다. 특별히 울 딸은 거의 중학생이 될 때까지도 깨알 같이 작은 레고를 가지고 놀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깊이 빠져들었다. 울 아이들 키울 당시에 엄마인 내가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고 있었기에 울 아이들이 혼자 보내는 시간은 주로 레고놀이를 하면서 지냈던 것이다.


나는 꽤나 비싼 레고를 서슴없이 사주었다. 그때 돈으로도 5만 원, 거의 10만 원 대에 이르는 레고 세트도 있었다. 지금은 가격대가 얼마인 지 잘 모르겠다.


영화 <레고 무비>를 보고 있노라니 울 아이들 키울 때 생각이 나서 마냥 추억 속으로 들어간다. 레고 조각들과 레고 인물들이 펼치는 세계가 신선하다. 예언과 능력자와 착한 사람들과 악당들과의 싸움, 끝내는 주인공이 악당을 물리치고 승리하거나 화해하는 내용, 이런 요소들은 뻔한 것이지만, 그 어느 스토리에나 적용되는 구조이다.


주인공은 평범한 피겨 공사장 인부 에밋다. 그는 소심하고 자신감도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지팡이를 든 신선같이 생긴 어떤 할아버지로부터 자신이 능력자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악당을 물리치고 레고 세계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정작 주인공 자신은 이걸 믿지 못한다. 그렇지만 용기를 낸다. '자신을 믿으면 능력자가 될 수 있다'는 할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면서 차츰 조력자들과 함께 능력자로 바뀌어 간다.


하늘까지 닿을 듯한 아주 높은 레고 건물을 짓고 그 꼭대기에 살면서 악당들을 조종하는 비즈니스 사장과 일당들, 그리고 주인공 에밋마스터 빌더 친구들의 공동 대결이 흥미롭다. 마스터 빌더들은 인어공주, 원더우먼, 배맨, 닌자 거북이 등 많은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이 레고로 등장한다. 모든 세계는 조립된다. 레고 조각들이 다양한 형태로 변하면서 건물도 되고 기차, 오토바이, 비행기, 구름 속 뻐꾸기 나라, 바닷속 등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이 영화는 끝부분 반전이 흥미롭다. 비즈니스 사장은 바로 아버지이고, 주인공은 아들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완성된 레고방을 아들이 만지지 못하게 하지만, 아들은 조금씩 변형을 시켜본다.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고 금지구역, 만지지 말라는 팻말이 붙은 곳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는 아들이 새롭게 만들어낸 레고를 보며 허락한다. 아버지 자신의 레고 놀이터를 아들이 가지고 놀아도 된다고 말이다. 그리고 여동생도 들어올 것이니 같이 놀라고 한다. 레고는 대를 이어서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레고 하나만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던 울 아이들 생각에 행복한 관람시간이다. 이제 자라서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으리라. 손자손녀에게 레고를 사들고 갈 날을 기다려본다. 나는 레고를 가지고 논 적이 없어서 아이들과 잘 놀아주지 못했다. 그러나 울 딸은 자신이 좋아했던 만큼 레고를 가지고 아이와 잘 놀아줄 수 있으리라.

영화 <레고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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