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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Jan 27. 2024

일을 위한 인생인가, 사랑을 위한 인생인가

영화 <철도원>

영화 <철도원>를 보면서 가슴 한 구석이 꽉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느낀다. 원리원칙, 고지식, 융통성 없음, 자칭 자신을 표현하는 철도원 오토의  모습이다. 영화를 만들면서 아마도 이 점을 일부러 살리려고 노력했을 듯하다.


이 영화는 2015년 개봉작인데 여러 개의 상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이런 무게감 있는 영화가 한때 예술영화로 각광을 받기도 했던 것이다. 아마도 죽음이 우리 가까이 오지 않았을 때 이야기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이런 이야기가 별로 흥미롭지가 않다.


철도원 오토는 이제 곧 이용객이 적은 기차가 사라지면서 퇴임을 하게 된다. 평생 그는 호로역을 지키면서 기차를 출발시키고 맞이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가 없다. 갓 태어난 아기가 죽어도, 아픈 아내가 죽어도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던 철도원 오토다. 큰 키에 호인처럼 생긴 그의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무식하리만치 우직하다.


영화의 배경은 눈이 펑펑 쏟아지는 산야와 호로역으로 까만 기차, 빨간 기차가 달리면서 분위기를 한껏 띄워준다. 그런데 스토리가 너무 슬퍼서 아름다운 풍경의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내는 오토 자신도 호로역 눈밭에 쓰러져 죽는다. 아이가 죽고 아내가 죽고 자신도 죽는다.


다만 한 가지 아름답게 처리한 부분이 있다. 죽은 아이, 눈 아이 유키코가 유년의 아이로, 초등학교 아이로, 중학교 아이로 세 번 나타나서 오토를 만나 이야기하고 뽀뽀도 해주며 밥도 지어주는 장면이다. 처음에 올 때는 오토가 사준 인형을 들고 와서 잃어버린 듯 놓고 간다. 그다음에는 차례로 그 인형을 찾으러 와서 오토를 위로해 준다.


"이거 마시고 눈 똑바로 떠서 눈길(설녀)에 홀리지 마라."

오토는 승객도 없는 호로마이역까지 운행해주는 기관사들에게 따뜻한 팥죽을 끓여서 대접해주면서 말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그만 '설녀'(아름다운 외모와 차가운 마음씨를 가진 요괴로 눈 오는 지역에서 사람을 홀려 얼어죽게 함)에게 홀리고 만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다 알고 터라 이해가 쉽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번역하면서 '설녀'가 '눈길'로 바뀌어 그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고 보여진다.


영화감독이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런 영화는 일본이라서 가능하다. 일본은 모든 신을 믿는다. 하다못해 죽은 사람의 혼령도 믿는다. 다신의 나라이다. 그래서 일본 영화에는 죽은 사람의 혼령과 관계된 이야기들이 꽤나 있다. 내가 일본 소설이나 일본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라면 일이 아니라 가족과 사랑을 택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대신 일을 맡기고 소중한 순간에 딸과 아내의 마지막을 지켜주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 일이냐 사랑이냐, 성공이냐 가족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쩌면 나는 지극히 평범하더라도 알콩달콩 살아가는 따뜻한 가족이 있는 사랑 가득한 가정, 그것이 최고라고 여기는 사람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 이런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영화 <철도원>를 보는 내내 가슴이 그리도 답답했던 것 같다.


※ '설녀' 부분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일부 내용을 첨가해 넣었다.

영화 <철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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