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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Feb 18. 2024

포기란 없다

영화 <스피릿>

애니메이션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라서 여름방학 특집으로 어린이들을 위해 꾸며지는 영화이지만 보러 나왔다.


영화 <스피릿>은 말과 말을 타는 소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 소녀가 나온다. 그중 한 소녀가 주인공이다. 그녀의 이름은 '럭키'이다.


럭키는 어릴 적 말 묘기꾼인 엄마를 잃고 코라 고모와 할아버지에게 맡겨져서 아빠와는 멀리 떨어져서 자란 소녀이다. 아마도 말 사고로 아내를 잃은 아빠는 럭키의 안전을 위해 그런 것 같다.


럭키는 방학 동안 코라 고모와 함께 아빠가 살고 있는 미라데로에 와서 지내게 된다. 어려서 떨어졌다가 어엿한 소녀로 자란 럭키는 오랜만에 만난 아빠가 낯설기만 하다. 아빠도 럭키가 서먹서먹하다. 럭키는 엄마를 많이 빼닮았지만 아빠는 어떻게 럭키를  대해야 할지 당황한다.


그때 럭키는 우연히 악당들이 잡아와서 길을 들이려고 가두어놓은 야생마 ‘스피릿’을 만나게 된다. 서로 조금씩 다가간다. 서로 마음이 맞는다. 럭키는 등을 내미는 스피릿에 올라탄다. 그러면서 럭키와 스피릿은 영혼까지 통하는 특별한 교감을 나눈다. 친구 아비게일, 프루와 함께 말을 타고 자유의 세계로 질주한다. 


느 날 야생마 스피릿과 가족들이 악당들에 의해 다른 곳으로 팔려갈 위험에 처하게 된다. 럭키는 스피릿 가족을 구하기 위해 친구들과 위험한 모험에 나서게 된다.


두렵다. 아슬아슬하다. 악당들을 따라잡기 위해 지름길이지만 험한 지옥의 산을 선택한다. 아찔하게 높은 절벽 위로 난 폭이 좁은 암릉길, 자칫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다. 과연 어떻게 넘어갈까? 숨을 죽일 수밖에 없다. 포기란 없다. 럭키는 앞장서서 스피릿을 믿고 몸을 맡기고 눈을 감는다. 친구 아비게일과 프루가 자기들의 말을 타고 뒤따라온다.


럭키와 친구들은 무사히 지옥의 산을 넘어 악당들의 기차가 멈춰서 말들에게 물을 먹일 지점에 하루 전에 도착한다.


이튿날 스피릿 가족을 구할 럭키 삼총사의 작전을 실행한다. 럭키는 말들이 갇혀있는 문을 연다. 그러나 악당들에게 발각되어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말들이 바다로 뛰어내린다. 아빠가 자신이 만든 기차를 타고 도착한다. 이제 아빠는 럭키를 어린애로 취급하지 않고 자랑스러워한다.


럭키에게 포기란 없다. 그것은 엄마, 아빠, 할아버지, 아니  그 이전부터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좌우명이다. 그 피가 럭키에게도 흐른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왜 야생마의 이름이 '스피릿'인지 알 수가 있다. 영혼의 교감이 있어야 둘이 하나가 될 수 있다. 한 호흡으로 혼연일체가 될 때, 추구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 혼자서는 어려울 일도 동반자와 친구와 함께 하면 가능하다.


참으로 아름다운 말 소재 영화이다. 말을 소재로 한 책을 몇 권 감명 깊게 읽었는데, 그 이야기들의 주인공 말들과 스피릿이 오버랩된다.


하나는 동화 중 내가 인생책이라고 꼽을 만한 <아테나와 아레스>(신현, 문학과 지성사)에 나오는 이다. 부모가 기수인 집에 태어난 하얀 말 아테나, 갈색 말 아레스는 쌍둥이 자매 루나와 새나가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기른다. 루나는 공부를 잘해서 대학에 가서 다른 일을 하고 싶지만, 새나는 기수가 되고 싶다. 뛰어난 기수였던 엄마는 사고로 다쳐 다시 말을 탈 수 없게 되고, 새나가 타는 말 아레스도 경주마가 되지만, 나중에는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가서 엄마의 발 역할을 하게 된다. 모두가 다 같은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길이 아니면 저 길, 자신에게 맞는 다른 길이 있다.


또 하나는 소설 <천 개의 파랑>(천선란, 허블)에 나오는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를 태운 말 '투데이'이다. 투데이는 너무 많이 달려서 관절이 다 망가져 안락사를 해야 할 상황에 처한다. 콜리는 경주 중 투데이에게서 떨어져 휴머노이드 기수로서의 생명을 잃고 방치된다. 그러나 은혜와 연재는 콜리를 사서 고쳐서 투데이가 콜리를 태우고 다시 마지막 경주를 아주 느리게 할 수 있도록 한다.


뛰는 것은 뭘까? 성공은 뭘까? 포기는 뭘까? 실패는 뭘까? 이런 질문이 남는다. 영화 <스피릿>에서는 '포기란 없다'가 정답인 것 같지만, < 아데나와 아레스>는 자발적인 포기를 선택해 다른 길을 가고, <천 개의 파랑> 역시 포기를 위한 마지막 경주를 아주 느리게 하고 있다.


한걸음만 더 천천히 느리게, 그것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무엇이나 너무 질주하면 투데이처럼 망가지기가 쉽다. 투데이는 말이라서 인간이 시키는 대로 혹사당한 것이지만, 인간인 우리는 가야 할 목표와 방향과 속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존재이다. 또한 우리와 함께 하는 동식물도 자연도 잘 보살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환경과 기후, 미래과학에 대해서도 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기 위해서 우리의 선택 포기란 없다.

영화 <스피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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