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순오 Feb 22. 2024

부모 대에서 자식 대로 이어지는 닮은꼴 사랑

영화 <클래식(The Classic)>

지고지순한, 클래식한 소년소녀의 사랑은 알퐁스 도데의 <별>, 황순원의 <소나기>, 백우암의 <청별>에 나오는 사랑이다. 목동과 아가씨의 사랑, 소년과 소녀의 사랑, 소년시절 징검다리에서 만난 소녀를 잊지 못해 홀로 늙어가는 노인의 사랑, 영화 <클래식>을 보면서 엄마 주희와 준하의 사랑, 딸 지혜와 상민의 사랑이 이들의 사랑과 많이 닮아 있다는 걸 느낀다. 물론 소설 속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고 영화 속 엄마의 사랑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딸 지혜와 상민의 사랑은 이루어진다.


사랑은 이루어져야 맛일까? 이루어지지 않아도 사랑하기에 그 자체로 감미로운 것일까?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결혼에 이른다는 의미일까? 단 한 번이더라도 뜨거운 정신적 육체적 접촉을 동반하는 것까지를 뜻하는 것일까? 사랑의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해석도 달라질 것 같다.

 

영화 <클래식>은 풋풋한 순정의 로맨스이다. 우연히 만난  사람을 내가 사랑하게 된다. 많은 사람 중에 유독 그 사람이 내 눈에 들어온다. 자꾸만 생각난다. 마음이 설렌다. 또 우연히 만난다. 자주 만난다. 사랑이 깊어진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과 삼각관계가 형성되면서 갈등이 생긴다. 아슬아슬하게 위태위태하게 끊어질 듯 포기할 듯 사랑이 이어져간다.


영화 <클래식>에서는 엄마와 딸의 시대를 왔다 갔다 한다. 주희도 지혜도 손혜진이 연기한다. 조금 엉기는 부분이 없지 않다. 설정도 겹친다. 엄마 주희는 일찍 정치적 목적으로 집안끼리 맺어진 태수라는 아이와 정혼하기로 된 사이인데, 태수는 절친 준하에게 연애편지의 대필을 부탁한다. 그러면서 준하는 주희를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을 편지에 고스란히 넣는다. 지혜도 친구 수경이 상민에게 보내는 편지를 대필해 주면서 자신의 마음을 담아 쓴다


아빠가 일찍 돌아가시고, 지혜는 해외여행 중인 엄마 주희와 단둘이 살고 있다. 엄마가 없는 사이 다락방을 청소하던 지혜는 우연히 엄마의 비밀상자를 발견한다. 주희의 첫사랑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편지들과 일기장을 보면서 지혜는 엄마의 사랑을 조금씩 알아다.


여름방학을 맞아 시골 삼촌댁에 간 준하는 그곳에서 주희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그런 주희가 강 건너 '귀신 나오는 집'에 데려가 줄 것을 부탁한다. 둘은 함께 배를 타고 그곳으로 간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만나 배가 떠내려가면서 귀가 시간이 늦어지고, 준하는 주희 할아버지에게  따귀를 맞고 주희는 심한 꾸중을 듣고 수원으로 보내진다. 주희와 작별 인사도  헤어진 준하의  마음은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서 준하는 태수에게 연애편지의 대필을 부탁받는다. 그런데, 상대가 주희란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다. 하지만 태수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태수의 이름으로 자신의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 주희에게 편지를 쓴다.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며 사랑이 깊어져 간 엄마와 딸인 자신의 사랑은 절묘하게 닮아 있다. 이 우연의 일치에 의아해하는 지혜는 상민에 대한 사랑이 점점 깊어져 간다. 그렇지만 그는 이미 친구 수경의 애인이기에 포기하려고 하다. 그러나 상민은 비 오는 날 웃옷을 벗어 지혜에게 씌워주며 도서관까지 데려다주고, 끝내 지혜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둘의 사랑은 이루어진다.


그런데 반전은 상민이 준하가 낳은 아들이라는 암시가 있다는 점이다. 상민은 엄마 주희가 준하에게 주었던 목걸이를 가지고 있다. 그 목걸이를 지혜에게 주려고 내민다. 영화를 보면서 이미 그 목걸이에 대한 사연을 다 알고 있는 관객인 우리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실연과 아버지의 폭력으로 자살을 시도한 태수를 구하기 위해 준하는 일부러 참전을 한다. 준하는 주희가 준 목걸이를 잃어버렸다가 찾기 위해 전장을 헤매다가 부상을 당하는데 그때 실명을 한다. 후에 준하는 목걸이를 돌려주기 위해 주희를 찾아오지만 실명 사실을 들키면서 그 목걸이를 간직하게 된다.


부모 대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안타까운 사랑은 결국 자식 대에서라도 이루어지고 마는 것이다. 엄마의 사랑과 딸의 사랑은 쌍둥이처럼 닮은꼴이다.


"우리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나는 가끔 이 문장이 떠오를 때가 있다. 오래전 헤그 사람과, 연락이 끊긴 그 친구와, 많은 사랑을 주셨던 할머니와, 언젠가 다시 만나리라는 바람은 추억에 대한 그리움이다. 나는 기독교인이어서 윤회사상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함께 했던 순간들을, 장소 시간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우리가 다시 만나는 일이 아닐까? 부모가 가지고 있는 습관을 자녀가 똑같이 하고, 비슷한 물건을 가지고 있고, 같은 장소를 좋아하고, 취미가 같고 등등 닮은꼴 행동을 하면서 말이다.


2003년 대한민국 영화대상, 대종상영화제에서 음악상, 주연 손예진 배우에게 신인여우상을 안겨준 영화 <클래식>은 내가 좋아하는 멜로 영화 스타일을 고루 갖춘 영화이다. 순수해서, 잊지 못해서, 편지가 맺어준 사랑이어서, 그 편지들을 오래 간직하고 있어서, 클래식한 사랑이다. 영화를 한번 더 꼼꼼히 보면서 지나간 나의 사랑 추억해 봐야겠다.


참, 나의 18번지 애창곡은 우순실의 <잃어버린 우산>이다. 그리운 이들을 떠올리며 오늘은 그 노래도 한 번 불러봐야 겠다.

영화 <클래식(The Classic)>
매거진의 이전글 포기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