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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Feb 19. 2024

사이버공간과 실제공간에서의 만남과 사랑

영화 <후아유(Who Are You?)>

가 여중고 시절을 보낸 때는 한창 펜팔이 유행한 적이 있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 주소 하나를 알아서 편지로 서로 소통하는 것이다.


나도 펜팔친구를 꽤나 많이 가지고 있던 사람 중 하나이다. 지금은 모두가 다 소식이 두절된 상태이지만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한 사람은 여중생 친구를 사귀어서 편지를 고 있는데, 그녀의 오빠가 나에게 편지를 보내와서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이는 나보다 몇 살쯤 많았고 '피부수축증'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어서 거의 침대에 누워서 지낸다고 했다. 아마도 미리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면 나는 아예 답장을 안 했거나 제약을 두고 편지를 썼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이는 처음에는 전혀 자신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기에 모른 채 몇 년 간 서로 편지를 다. 내가 여고에 입학할 무렵 그는 영원한 하늘나라로 간다면서 내게 자신에 대해 말해 주었다. 10월 18일의 일이다. 그때 그는 곧 가족이 서울로 이사한다고 , 그 후 그의 여동생과도 소식이 끊겼다. 지금도 내 사진첩에는 그녀의 사진이 있는데, 그의 사진은 한 번도 보내주지 않아서 가지고 있지 않다.


편지는 가상공간은 아니지만 나는 가상의 세계를 살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어느 날 한쪽이 소식을 끊으면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우리의 관계는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마치 인터넷 접속을 끊으면 사라지는 관계처럼 말이다.


나는 받은 편지들을 꽤오랫동안 가지고 있다가 어느 날 모두 다 버렸다. 불태웠는지 그냥 버렸는지는 기억이 없다. 영화 <후아유>를 보면서 가장 많이 그이의 생각이 났다. 과연 그는 누구였던 것일까?


<후아유>에는 실제인물 지형태와 서인주가 나온다. 형태는 채팅게임 '후아유'의 기획자이고 인주는 수족관 다이버이다. 형태는 같은 건물 30층 사무실에서, 인주는 지하 수족관에서 일한다.


형태는 2년 동안 준비해 온 채팅게임 '후아유'의 오픈을 앞두고 있다. 테스터들의 반응을 살피던 형태는 게시판에서 '후아유'를 비방하는 글을 발견한다. ID 별이의 글이다. 그녀가 지하 수족관 다이버라는 사실을 알게 된 형태는 인터뷰를 하겠다며 찾아간다.


형태는 점점 인주에 빠져든다. 검색을 통해 별이, 서인주가 한때 잘 나가는 국가대표 수영선수였지만 사고로 청각 장애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주는 이제 선수가 아니다. 그저 수족관에서 인어쇼를 하는 사람이다. 인어쇼가 히트를 치면 자신의 삶도 나아지리라 기대를 하며 살아간다.


형태는 인주에게 큐피드의 화살이 꽂혀 '멜로'라는 ID로 인주의 '후아유' 게임 파트너가 된다. 가상공간 온라인과 현실이라는 실제공간이 오버랩된다. 양쪽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는 아슬아슬한 게임이 시작된다.


그리고 드디어 둘은 가상공간에서 마음을 열고 현실공간에서도 만나게 된다. 인주는 형태가 일부러 접근했다는 사실을 알고 화를 내지만, 둘의 사랑은 형태의 진실한 고백과 인주의 수용으로 활짝 열린다.


사랑은 마음을 참 따뜻하게 한다. 멜로와 별이, 형태와 진주가 하나 될 때 내  마음도 뭉클해진다.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 내 추억도 아름답게 떠오른다. 그렇게 나의 사춘기 시절도 누군가를 향한 마음으로 풋풋했다. 시골에서 도시로 갑작스러운 이사로 인 낯선 서울생활도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청각장애가 있는 인주가 자신을 잘 알고 이해하는 형태와의 사랑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아름다운 가정도 이루면 좋겠다는 바람 가져본다. 많은 문학작품과 예술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 슬퍼서 더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나는 사랑이 결실을 맺을 때 완성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가상공간에서 맺어진 사랑이 현실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설정이 참 아련하게 그려진 멜로 영화이다. 느 공간이 어떠하랴! 두 사람의 마음이 진심이고 사랑이면 되지 않겠는가?

영화 <후아유(Who Ar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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