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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Dec 22. 2022

와우! 진짜 대박 눈산행

서울 삼각산(북한산)

이번 주 토요일은 일이 있어서 산행을 못한다. 그래서 주일 오후에 나홀로 검단산을 가나 어쩌나 하다가 그냥 오늘 수도산(※)에서 삼각산(북한산)을 가기로 한다. 낮에 눈 소식이 있어서 혹시나 눈산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며 간다.


물론 눈이 안 와도 산행은 언제 어느 산을 가도 좋다. 1주1산을 지켜보려는 것이다. 그래야 리듬이 안 깨지고 몸이 가볍다.


남자는 2명(인테리어 대장님, 시조새님), 여자는 1명(나), 모두 3명이 함께 한다. 


오전 11시 연신내역 출발해서 불광사를 지날 때까지만 해도 눈발도 안 날리고 하늘이 너무나 멀쩡해서는 날씨 예보가 틀린다며 투덜거리며  오른다.


그런데 계단 지나 암릉길로 오르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눈이 굵어지며 소복소복 쌓인다. 바위 위에 하얀 목화솜 이불을 덮은 것 같다. 와우, 세상에나! 진짜 대박 눈산행이다!


약 1시간 정도 오른 후 향림담 숲에서 점심을 먹는다. 인테리어 대장님 가져오신 쉘터 안에 들어가서 따뜻한 점심을 먹고 나니 어느새 눈이 소복이 쌓였다. 눈도 계속 내린다. 싱그럽다. 오름길에서는 그다지 미끄럽지 않아 아이젠을 차지 않고 스틱만 짚으면서 오른다.


새하얀 눈길을 밟으며 산길을 걷노라니 미지의 세계로 걸이 들어가는 것만 같다. 순백의 세계다. 모든 것이 하얀 세계, 그곳은 어디일까?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음식도 옷도 집도 모두가 다 하얗다면 하양 나라일까? 그러면 사람들의 마음도 순백일까? 희로애락애오욕, 그런 것이 없을까? 아마도 무념무무욕의 세계가 아까 싶다.


차마고도 길로 들어서서 한참 걸은 후 급경사 철난간 구간 내리막길 시작이라 아이젠을 차고 걷는다. 나무 위에 쌓인 눈이 한껏 겨울 정취를 더해준다. 뿌연 안갯속에 족두리봉도 보인다.


차마고도길을 지나 탕춘대성 쪽으로 가는데 급경사 철난간 구간이 나타난다. 스틱은 팔목에 걸고 철난간을 잡고 한 발 한 발 디디면서 손은 쫙쫙 미끄러지면서 내려온다.


족두리봉에서는 살짝 빛이 비치는 듯 후광이 보인다. 상서로운 징조 같다. 오늘, 아니면 며칠 남지 않은 올해,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나려나? 동그랗게 둘러쳐지면서 빛이 나는 후굉을 보면 은혜가 떠오른다. 그동안 내게 베풀어주신 분들의 은혜를 생각한다. 고마운 이들이 가장 먼저 한 사람 한 사람 눈 송이에 얹힌다. 소복소복 내려 앉는다, 나무 위에 바위 위에 땅 위에. 눈 내리는 주변 풍경도 덩달아 장관이다. 새하얀  산길은 더 한층 고요하고  산봉우리는 더욱 늠름하다.


인테리어 대장님도 시조새님도 나도 사진 찍기 바쁘다. 눈을 맞으며 송이송이 탐스러운 눈꽃을 달고 있는 북한산 산길을 걷노라니 '이런 게 바로 복이구나' 싶다. 건강하니까 산행도 할 수 있고, 갈 때마다 최고의 날씨를 만나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대장님 하시는 말씀이 '아마도 시조새님은 태어나면서부터 산을 타지 않았을까?' 싶단다. 그만큼 오래 산을 탔다는 이야기다. 눈길에 스틱도 안 짚고 아이젠도 안 차고 조심조심 내려가는 시조새님은 내가 북한산을 한 10번 정도 오른 것 같다고 하니까, 북한산을 몇백 번 올라본 게 아니면 북한산을 올랐다고 말하지 말란다.


하긴 나는 처음에 수도산 공지에 '삼각산 눈맞이 벙개'가 났길래, '삼각산은 어디지? 한 번도 안 가본 산이네.' 그런 사람이다. 삼각산이 바로 북한산이라는데 말이다. 우뚝 솟은 봉우리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국망봉)가 3개의 뿔처럼 보여서 생긴 이름이 삼각산이란다. 북한산은 남쪽 산인 남한산과 비교해서 북쪽 산이라는 뜻이란다. 삼각산은 산 이름이고 북한산은 땅 이름이라서 '삼각산'이라 불러야 맞단다. 그래서 수도산에서는 늘 삼각산으로 공지가 나는 것이리라.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산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게 맞는다.


어쨌든 거의 매일 산에 가시는 인테리어 대장님과 태어날 때부터 산을 타신 산행고수 시조새님과 함께 '느리게 천천히' 북한산 눈산행을 했으니 영광이라 여긴다.


향로봉은 오르기 시작할 때 보였는데, 하산할수록 족두리봉이 가까이 보이는 게 신기하다. 북한산 백운대처럼 암릉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라서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오르기 어렵단다. 그래서 눈비 올 때는 입산통제를 하는지도 모른다. 좋은 계절 날씨 좋은 날에 올라야 가볼 수 있다. 내년에는 한 번도 못 가 본 향로봉과 족두리봉을 올라보고 싶다.


눈이 내려서인지 한 무리의 시람들이 산을 올라오고 있다. 그런데 북한산은 국립공원이라 대설주의보로 입산이 통제다. 아마도 조금 오르다가 내려올 것이다.


우리는 어찌 올랐을까? 그건 비밀이다.


참, 나는 하산하다가 거의 평지길에서 살짝 미끄러졌는데,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다.


북한산 산행은 연신내역~불광중~불광사~향림담~향로봉5거리~차마고도길~탕춘대능선~불광역 코스로 총 8.5km, 4시간 소요되었다.


오후 3시 불광역으로 하산해서 <벙구갈비>에서 생갈비와 양념갈비로 뒤풀이를 한다. 밥과 함께 먹으려고 주문한 청국장과 후식으로 나온 비빔냉면도 별미다. 맛이 있는 산행이다.


※ 수도산 : 다음수도권산악회

서울 삼각산(북한산) 눈산행
삼각산(북한산) 눈산행 기톡 : 총 8.5km, 4시간 산행(점심 시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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