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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Mar 15. 2024

쓸모에서 예술로

이수경,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를 보고

 깨진 것, 나눠진 것, 버려진 것들을 서로 붙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이수경 조각가의 <번역된 도자기>를 골똘히, 유심히 바라본다. 도자기를 번역한다? 생소하고 낯설다. 본래 '번역'이라는 말은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기거나 바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던가? 글이  아닌 도자기를 번역한다니, 도대체 무얼 말하고 싶은 것일까?


도자기 명인, 도공이 최고의 작품을 만들려다 흠집이 발견되어 버리는 도자기들, 산산조각이 나서 버려지는 도자기 파편들, 이수경 작가는 일부러 가서 그것들을 주워와서 하나하나 붙여서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든다. 이수경 작가는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를 20여 년 간 작업하고 있다.


2022년 12월, 더페이지갤러리 전시회를 알리면서 울 뉴스핌의 이영란 기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수경은 곧 소멸될 운명에 처한 도자 파편을 거두고 꿰맞춰 때로는 둥글둥글, 때로는 기기묘묘한 형상으로 탄생시킨 '번역된 도자기' 연작을 다수 출품했다. 그의 대표작이자 다채롭게 변주된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 30여 점이 한데 운집해 이수경이 추구한 현실과 초현실, 안과 밖, 탄생과 소멸이 교차하고 어우러지는 판타지적 화합의 세계를 깊이 음미할 수 있다."


이수경의 <번역된 도자기> 작업에 대한 내 생각은 렇다. 의도하지 않고 그저 붙이는 것이 아닐까? 아니다! 일부러 의도하고 붙이고 연결하는 것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것은 비존재가 존재로 전환하는 전혀 새로운 조합이다.


이수경 작가에게 '도자기를 붙인다'는 의미는 서로 나누어진 것을 연결하는 행위이다. 원래의 모습 도자기로서는 생명을 다했기에 더 이상 존재의 의미가 없지만, 이것들을 붙이고 연결하여 새로운 창조로 나아간다. 쓸모에서 예수로의 승화인 것이다.


이 특별한 작업으로 이수경 조각가는 현대에 각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요즘에는 깨어지는 것들, 버려지는 것들이 많은 시대이니까.


옛날에는 한번 만들거나 구입한 물건은 그것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 사용했다. 더 이상 쓸 수 없어도 창고나 집안 후미진 곳에 놓아두었지 버리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다른 용도로 바꾸거나 변형해서 쓰기도 했다.


일본에는 '킨츠키'라는 것이 있는데 일상에서 쓰던 도자기나 그릇이 깨지면 금으로 때워서 계속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본래의 그릇보다 더 멋진 그릇으로 재탄생한다. 깨져서 금으로 연결한 부분이 더욱 아름답게 빛이 난다.


꼭 금이 아니더라도 은이나 철이나 다른 금속으로 붙여서 사용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릇으로서의 기능과 쓸모를 계속 원한다면 말이다.


좀 더 범위를 넓혀 본다. 쓸모없어 버려지는 모든 물건들, 전구, 종이, 병, 캔, 플라스틱, 의류, 상자, 리본, 이런 것들은 모아서 붙이면, 연결하면, 훌륭한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재활용품을 가지고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들을 찾아본다. 트래시 아티스트 제프 리플로프, 캔 아티스트 톰 리처, 플라스틱 아티스트 미리암 메리디안, 종이 아티스트 카티아 카말로바 등이 있다. 이들 작가들은 이수경 조각가처럼 재활용품이라는 특별한 재료와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환경 보호와 예술을 결합한 뜻깊은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비단 물건뿐이겠는가? 사람도 관계가 깨지면 '나'에서 '너'가 떨어져 나가고 '너'에게서 '나'가 떨어져 나온다. 우리에게서 한 사람, 두 사람이 소외되고, 사회에서 소수가 제외되고, 나라에서 약소국들이 버려진다. 강하고 온전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깨지면, 금이 가면, 흠이 있으면, 다르면, 버려지는 사고방식, 이것이 문제가 아닐까? 아프면, 장애가 있으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취직을 못하면, 가난하면, 실패하면, 상대를 안 해도 될까? 무시해도 될까? 함부로 취급해도 될까?


이수경 작가의 <번역된 도자기> 작품은 새하얀 옷을 입은 아기 같기도 하고, 하얀 눈사람 같기도 하다. 깨진 도자기를 에폭시로 붙이고 그 위에 금박을 입혀서 새로운 빛나는 예술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깨지고 상처 입고 아픈 관계들을 서로 붙이고 연결해서 새로운 더 좋은 것을 만들면서 살아가면 훨씬 행복하지 않을까?


나도 이참에 누군가 쓸모없다고 버린 것들을 찾아서 붙이고 연결해서 새로운 작품을 하나 만들어 보고 싶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가 깨지고 상처 입고 실패해도 계속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보내면서 말이다.

2017 베니스비엔날레, 이수경 <번역된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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