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억새, 춤추는 예술가

by 서순오

사각사각 대숲에 댓잎 소리, 하늘하늘 억새 능선 억새 소리, 푸르디푸른 하늘 바탕에 폴폴 날리는 흰 구름, 굽이굽이 물결치는 산 능선, 저 멀리 그윽하게 보이는 옅은 운무 속 지리산 능선, 바스락바스락 밟히는 낙엽소리, 장수 장안산 산행 풍경이다.


하늘 구름에 맞닿아 보고파 스틱을 높이 뻗어본다. 하늘과 구름이 투명하게 맑다. 파랑과 흰색으로만 그리는 그림인데도 모든 것을 다 표현한 것 같은 시원함과 자유로움이 있다. 목을 길게 빼고 고개를 젖히고 높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신을 오르다보면 자연이 그림인지 우리가 그림인지 싶을 때가 있다. 꽃 속에서는 꽃이 되고, 눈 속에서는 눈사람이 되듯이, 청명한 가을 하늘 억새 숲에서는 살랑이는 억새가 되기도 하고, 하늘 구름 타고 오르는 선녀가 되기도 한다.


장수 장안산은 억새밭에 소나무 두 그루가 아주 멋드러지게 서 있는 언덕이 있다. 나는 팔짱을 끼고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서 생각하는 로댕이 된다. 아니다. 생각하는 억새가 된다.

오늘은 바람소리에 한껏 흔들리고 싶다. 하늘 구름 타고 맘껏 흘러가고 싶다. 노래하는 새를 따라 목적지를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날아가고 싶다. 생각하는 억새는 자유를 만끽한다.


억새와 갈대는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참 헷갈린다. 누구는 말한다. 물이 없는 산에 있으면 '억새'이고 강이 있는 물가에 있으면 '갈대'라고.

또 어떤 이는 말한다. 억새든 갈대든 흔들리는 존재라는 점에서는 비슷하다고.

그런데 자세히 보면 억새가 더 가녀리고 갈대가 더 풍성한 모습이다. 이름만 가지고는 '생각하는 갈대, 갈대처럼 흔들린다'라고 해서 갈대가 억새보다 더 가늘고 호리호리할 것 같은 데 말이다.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

옛 유행가 중에 이런 노래도 있다. 억새를 모를 때는 여기 나오는 '으악새'가 새인 줄 알았다. '으악새'가 '억새'를 말하는 건 줄도 모르는 무식이 통통한 이야기이다.

어쨌든 장안산도 억새 군락지를 자랑하는 산 중 하나이다.


'억새' 하면 영남 알프스 신불산, 간월산, 천왕산, 재약산 등이 있고, 민둥산, 오서산이 있다. 나는 억새가 흔들리는 모습이 장관이라 여긴다. 무리지어 흔들리면 사각거리는 그 소리가 노랫소리처럼 경쾌하다. 어떤 때는 울부짖는 소리 같기도 하다.


갈대든 억새든 무리지어 있으면 참 아름답다. 흔들리고 있으면 더 환상적이다. 아니다!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자세로 춤추는 것이다. 억새와 갈대가 춤추고 있을 때, 나도 그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춘다.


사람도 그러하지 않을까? 꼿꼿이 서 있는 사람 보다는 흔들리고 있는 사람이 멋지다고, 결하기 려운 일을 만났을 때 그것을 춤으로 승화시켜 격렬하게 몸과 마음을 흔드는 진정한 예술가라고 말이다.


나는 언제나 한결 같은 사람도 좋아하지만, 가끔은 흔들리는 사람, 변화하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지금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지금 이 길은 맞는 길일까? 이 선택은 현명한 것일까?"

질문하며 고뇌하는 사림을 좋아한다.

흔들림과 변화는 우리가 사는 동안 몆 번 쯤은 겪는 일이다. 일평생 단 한 번의 흔들림도 변화도 없는 삶, 너무 답답하지 않을까?


장안산 억새 언덕에서 생각하는 억새가 되어본다. 춤추는 예술가가 되어본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여러 번 흔들리며 길을 바꾸어 왔음을 감사드린다. 그러하기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또 흔들리며 변화할 기회가 있을 것도 같다. 생각하는 억새, 춤추는 술가는 그 새로운 변화를 기쁘게 맞이하리라.


<생각하는 억새>(서순오, 20호, 아크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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