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미동할머니

by 서순오

미동할머니는 열아홉 살에 열 세 살짜리 꼬마신랑에게 시집을 왔습니다.

"응석쟁이 신랑을 업어줌서 밥도 멕여줌서 어여삐 어여삐 키워놓응께로 크면 잘 해줄까 했더니만, 스무 살이 넘으니까 글씨, 계집질부터 하더라닝께......"

와룡리 사람이라면 수십 번도 더 들었을 이야깁니다.

"내사 뭐 아를 놓기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닝게, 날 원망허진 말더라고, 잉?"

동할머니는 아궁이의 다 꺼져버린 잿더미를 긁어 소쿠리에 담으면서 누군지 들을 사람도 없는 허공에다 대고 혼잣말을 중얼거립니다.

새색시 시절에 '미동댁'이라 불리던 것이 자연스럽게 '미동할머니'가 되었는데, 서해 바다가 훤히 바라다 보이는 아름다운 섬 '미동'에서 시집을 왔기 때문입니다.

미동할머니는 가슴이 답답할 때면 바다를 닮은 파란 하늘을 한동안 올려다보며 소리쳐봅니다. 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바닷가에서 조개를 주우며, 미역을 따며, 멸치를 말리며 뭍을 향한 꿈도 많이 꾸었었건만, 그 꿈의 빛깔이 이제는 희미한 잿빛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쨌든간에 내 잘못은 아니란 말여! 그 몹쓸병만 안 옮겨왔던들 나도 떡두꺼비같은 아들을 낳았을 것잉게......"

미동할머니는 벌써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신랑이 바로 옆에 있기라도 하듯이 우격다짐을 합니다. 그 원인을 제공해놓고도 단지 아이를 못 낳는다는 이유로 미동댁을 내치고, 읍내 기생에게서 아들을 낳아온 신랑이 생각할수록 야속하기만 합니다.

6.25가 터지자 마을 유지였던 신랑은 인민군들에게 먹을 것을 대준 죄로 빨갱이로 몰려 총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신랑이 죽자 미동할머니는 기생어미에게서 강제로 아들을 빼앗았습니다. 남편과 핏덩이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생모는 그만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새파란 서른 살에 청상과부가 된 나나 저나 지아비복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제......"

미동 할머니는 뒤란에 쌓인 눈을 거칠게 곡괭이로 파내서 장독대로 통하는 길을 뚫고 아궁이에서 퍼온 재를 뿌립니다. 앞마당을 가로질러 우물로 통하는 눈길도 뚫었습니다. 그 위에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재를 뿌립니다.

아랫집에 사는 박씨네도 설이와는 보름 차이로 다섯 번째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아들 많은 집은 연거푸 다섯씩이나 주고 우리 집은 한 놈도 없응게 이것이 뭣이랑가! 딱 한 놈만 주어도 좋을 것인디, 하나님도 무심하구먼, 암 무심하고말고!"

"삼신 할매를 모시는 분이 웬 뜬금 없이 하나님은 찾는 다요?"

아랫집 박씨 부인은 퉁명스럽게 한마디 내뱉고는 물을 길러 가지고 설레설레 가버립니다.

"아이고, 젊은 것이 말하는 싹수가 왜 저런 디야? 싸가지 없는 것 같으니라고!"

미동 할머니는 가슴이 물러나 앉으려는 걸 간신히 참고 항아리에 물을 길러 양손으로 들고서 뒤뚱거리며 부엌으로 들어옵니다.

"아이고 고놈의 여편네가 염장이란 염장은 다 지르고 간당께. 그랴, 놈의 손지 열 있으믄 뭐햐, 내 손지딸 하나가 낫제. 내 너이 손지보다 열 배는 더 옹골차게 키울 것잉께 두고 보랑게, 잉?"

미동할머니는 단단하게 마음을 먹고 가마솥에 물을 끓인 후 대야에 담아 가지고 방안으로 들어갑니다. 설이 목욕을 시키려는 것입니다. 마음을 고쳐먹어서 그런지 설이의 하얀 살결이 오늘 따라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설이를 대충 물 속에 풍덩 넣어 가지고는 마디 굵은 손으로 아무렇게나 박박 문질러대던 것이 인제는 살살살 문질러보니 보드라운 살결이 비단결 같습니다.

"엄니, 아범은 어디서 무얼 하는 걸까요?"

"그야 모르제, 지 애빌 닮았으믄 읍내 어디 주막집에나 눌러 붙어서 기집질을 하든가, 노름을 하든가 허겄제. 이놈의 눈땀시 오도가도 못한 게 어쩔 것이여, 핑계가 좋제, 그렇다고 누구헌테 기별을 헐 수도 없고 어쩌냐, 할 수 없제 잉? "

설이 엄마는 얼마나 가슴이 답답한지 창호지 문을 열어 젖혔다가 닫습니다.

"씻구 찬바람 쐬믄 영락없이 곳불에 들린 게로 조심혀야."

미동할머니는 설이를 제 엄마가 덮고있는 목화솜 이불 한가운데로 다시 밀어 넣으며 바람막이를 해 줍니다.

"사람이 먼데 떨어져 있어도 느낌이란 것이 있는 것인디, 니가 아들을 낳았으믄 몰라도 딸을 낳았으니께 아범 없는 것이 낫다. 안 그러믄 아매도 설이 낳은 뒤로 니가 몸조리라도 지대로 헐 것 같으냐? 어림도 없는 소리제. 모르긴 몰라도 아범은 술통에 빠져서 아들 타령을 헐 것이 뻔하고, 너는 눈구덩이 파서 길을 내었을 것잉게, 아범 장에 간 것이 복인 것이여. 알겄냐?"

설이 엄마는 미동할머니의 말이 서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폭설은 그쳤지만 이제 앞으로 설이네 집에 들이닥칠 한파와 폭설이 두렵습니다. 한 달 동안이나 내린 폭설이 다 녹으려면 긴긴 겨울을 기다려야 할 것인데, 설이 엄마의 마음이 얼어붙는 것 같습니다. 우물에서 길어온 찬 냉수를 한 사발 들이킵니다. 설이를 낳은 지 한 달 보름 만에 처음으로 먹어보는 냉수입니다. 찬 우물물에 속이 시원하게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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