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목화 솜 같은 눈이 풍덩풍덩 내려옵니다. 와룡리의 성황당 위에도, 돌부처에도, 느티나무 위에도, 우물가에도 쌓이고 또 쌓입니다.
와룡리는 마을을 빙 두르고 있는 뒷산이 용이 누워있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마을 앞으로는 긴 강이 흐르는 외딴 산골 마을입니다.
“시상에나 만상에나 내 살다살다 요렇게 많은 눈은 처음 본당게! 하늘이 터져버렸디야? 천지가 개벽을 했디야?”
부엌에서 장작을 지펴 미역국을 끓이고 있던 미동할머니가 문을 젖혀봅니다. 눈발이 안으로 매섭게 들이닥칩니다. 하루만에 고샅이란 고샅은 다 눈으로 가로막혔습니다. 강도 얼어붙어 눈에 덮혔습니다.
눈에 묻히지 않은 곳은 마당 입구에 있는 우물뿐입니다. 겨우 두레박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작은 우물인데, 눈이 내리면 덥석 덥석 잘도 받아먹습니다. 우물은 하염없이 내리는 차가운 눈을 받아 녹여서 가슴에 품습니다. 우물 안에서는 모락모락 뜨거운 김이 피어오릅니다.
“아범아, 방구들을 따땃하게 해 놓아야 몸조리하기가 좋다이-.”
미동 할머니는 한 달 전부터 아범에게 부엌과 헛간 가득히 장작을 지게로 열 짐이나 해다 쟁여놓게 했습니다. 미역도 최고 좋은 것으로 스무 가닥, 무명으로 지은 아기 속옷 다섯 벌, 기저귀 50장를 미리 마련해 두었습니다.
“절대로 마음을 안정혀야 헌다이-. 내가 지금꺼정 어린아를 서른 명은 더 받았을 것잉게. 맴 푹 놓그라, 잉?”
미동 할머니는 방안에 누워 있는 며느리의 배를 한 번 쓸어보고 다시 부엌으로 나가 아궁이에 달구어진 풀무 불 위에 장작개비를 포개어 얹어 놓습니다. 큰 가마솥에는 미역국이 끓고, 작은 무쇠 솥에는 지글지글 보글보글 밥에 김이 오릅니다. 부뚜막 위쪽에다는 밥과 국, 정한수를 한 그릇씩 떠놓고 빕니다.
“삼신 할매, 지발 떡두꺼비같은 손주 한나만 점지해 주씨요?”
미동할머니는 빌기를 다 마치고 방안을 들여다봅니다.
“아범은 그예 못 오는가봐요. 괜시리 이불 사러 보냈어요. 그냥 있는 거 덮으면 되는데......”
“이놈의 눈 땀시 오도가도 못허는 갑다. 이 일을 어째야 쓴디야.”
와룡리에서 유일한 4대 독자인 서씨 집안에 첫 아이가 태어나는 날입니다.
부엌에서는 아궁이에서 장작이 벌겋게 타오르고, 방안에서는 며느리의 산통이 진행됩니다. 밖에서는 세상과의 연락이 끊긴 이 조용한 마을을 덮어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함박눈이 내리고 또 내려 쌓입니다.
“아이고, 엄니---, 아이고, 배야-, 아이고 엄니--- ”
“아가, 쪼매만 참어라, 잉, 인자 곧 나올랑갑다. 힘 좀 주그라, 잉?”
며느리는 벽에 붙은 기둥을 붙잡고 버둥거립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안간힘을 씁니다. 온 몸에 땀이 비오듯 합니다.
“응애-, 응애, 응애-”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와 함께 며느리는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아이고, 이를 어쩐디야. 딸이구먼......”
미동 할머니의 서운함을 담은 말 한 마디가 차갑게 꿈결로 파고듭니다.
“내 그토록 빌었는디 삼신할매도 무심하구먼, 무심햐!”
미동할머니는 자꾸만 가슴이 미어져서 부엌문 틈으로 비지고 들어온 눈을 한 움큼 쥐어서 입안에 털어 넣습니다. 차가운 기운이 가슴을 찢어놓습니다. 아이는 눈처럼 살결이 뽀얘서 ‘설’이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설이가 태어나던 날, 하루 만에 발목 높이로 쌓이던 눈이 다음날엔 종아리에 차고, 다시 그 다음 날엔 무릎 높이로 불어납니다. 일주일 만에 어른 허리춤을 넘고, 한 달째엔 사람 키를 넘을 만치 커다란 눈 산이 되었습니다.
폭설입니다. 와룡리로 통하는 길이 모두 다 끊겼습니다.
그러나 마당의 우물은 ‘응애응애’ 우렁찬 설이의 울음소리를 벗 삼아 모락모락 김을 올리며 단꿈을 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