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쁜 울 딸 정아,
언젠가 네 방을 청소할 때 네가 책상 앞에 써서 붙여둔 글귀를 읽은 적이 있어. 시라고 할 수도 있는 글이었지. 엄마는 침대 위에 앉아서 한참 눈시울을 붉혔단다.
"공부하다 잠이 오면 생각하라
너의 경쟁자와 친구들을!
공부하다 잠이 오면 생각하라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부하다 잠이 오면 생각하라
너의 꿈과 미래를!"
정아,
너는 1월 초에 태어나서 또래 아이들보다 한 살 일찍 학교에 들어갔지. 무어든 열심히 했지만 나이가 꽉 차서 들어온 친구들에게는 조금 딸리기도 했어. 초등학교 4학년 때인 것 같아. 너희 반 반장 친구는 해금을 배우고 있었어. 그 애는 외동딸인데 집안이 부유해서 여러 가지 특수교육을 받고 있었지. 물론 국영수 특별과외도 받았을 거야. 아버지가 무슨 국악 관련 대학에 총장이고, 엄마도 교수라고 했어. 그러니 특이한 국악기에도 관심을 보였던 거지. 악기도 비싸지만 그거 배우려면 매달 내는 돈도 꽤 되었을 거야. 그 애는 너희 반에서 1등이었어. 그 당시에는 등수를 매기는 때는 아니었지만 엄마가 명예교사로 봉사를 하고 있어서 선생님께 들었지.
우리는 그때 아빠가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하려고 쉬고 있을 때였어. 당분간 긴축재정을 하느라고 오빠나 너나 아무 교육도 안 시키고 있었지. 너는 그 애를 이기려고 안간힘을 썼어. 어느 날 네 머리를 자르려고 미용실에 데리고 갔더니 미용사가 그러는 거야.
"무슨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나요? 머리에 두어 군데 탈모 증상이 있어요."
그래서 네 머리를 살펴봤더니 아닌 게 아니라 정수리 아래쪽에 동그랗게 살이 보이는 지점이 있지 뭐야.
"정아, 1등 안 해도 괜찮아. 누구든 이기려고 하지 마. 그냥 무어든 편안하게 해. 공부도 다른 것들도 다."
엄마는 말했지.
그 후 울 딸 정아는 엄마 말을 꽤 잘 듣는 편이라서 1등 아닌 걸로도 만족했어. 중간에서 약간 상위에 드는 정도로도 엄마는 좋았으니까. 글짓기든 미술이든 무어든 상을 안 받아와도 괜찮았어. 오빠와 네가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으니까 그것으로 충분했지.
그런데 돌아보니까 오빠랑 너도 특수교육을 꽤나 받았네. 합창에다 무용도 6~9년씩 했으니까 말이야. 구립소년소녀합창단을 꽤 오래 했었네. 오빠는 초3부터 중3까지, 너는 초3부터 중1까지 했으니까. 거기다가 교회학교에서 쭈욱 성가대를 했었네. 악보도 읽지 못하는 유아부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했으니까 도대체 몇 년을 한 거야?또 있어. 정아는 초1부터 중1까지 교회에서 워십을 했어.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유명한 무용단원인 실력가 선생님한테 특별지도를 받았지. 교회 절기 때마다 어른 찬양대의 칸타타가 있을 때는 너희들이 오프닝이나 클로징 때 워십을 했어. 하늘하늘한 무용복을 맞춰 입고 천사처럼 예쁘게 춤을 추는 네 모습은 지금도 영화처럼 생생하게 떠오르곤 한단다.
정아,
네가 지금은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에 살고 있잖아. 자주 볼 수 없지만 언제나 엄마를 잘 챙기는 너는 우리 집 효녀야. 정아 덕분에 중국과 홍콩 여행도 여러 번 다녀왔네. 용돈도 매달 보내주고 말이야.
"울 딸 고마워."
정아,
그때 교환학생 가길 잘한 듯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어. 네가 중문과 3학년에 다니고 있을 때, 교환학생을 가고 싶다고 했지. 엄마는 흔쾌히 허락을 했어. 그래야 중국어를 더 잘할 수 있다고 했거든. 중국에 다녀온 너는 한국에서 한 학기 복학을 했다가는 또 가고 싶다고 해서 갔었지. 덕분에 졸업 후에는 해외 취업이 되어서 중국으로 갔어. 그리고 거기서 만난 사람과 결혼을 해서 아주 잘 살고 있어. 이번에 예쁜 딸도 낳고 말이야. 아직 외손녀를 사진과 영상으로만 봐서 실감이 잘 안 나지만, 엄마는 <탄생>이라는 그림책도 내면서 무척 행복했단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 딸 정아와도 손 편지는 꽤 썼던 것 같아. 초등학교 때는 물론, 중고등학교, 대학 때도 자주 손 편지를 썼네, 한집에 살면서도 손 편지를 써서 책상 위에 놓아두곤 했어. 중국으로 보내는 편지와 카드도 썼으니까 최근까지도 손 편지를 주고받은 거네.
사랑스러운 울 딸 정아,
언젠가 얘기해 주었지만 너를 가졌을 때 엄마는 세 개의 보석 반지를 세 손가락에 끼우는 꿈을 꾸었어. 바로 태몽이었지. 오빠를 가졌을 때 금시계를 찾아서 손목에 차는 꿈을 꾸었던 똑같은 장소였지. 우리 집에서 나오면 세탁소와 슈퍼가 있는 조그만 네거리 골목 말이야. 길을 가다 보니까 그곳이 온통 보석들로 덮여 있었어. 그래서 엄마가 앉아서 보석을 찾아서 손에 끼었지. 보석 반지의 색깔이 선명했어. 팔강, 파랑, 녹색, 굵은 알이 박힌 세 가지 보석이었어. 그래서 그랬을까? 너는 한국, 중국, 홍콩, 세 나라를 자유롭게 오가며 살고 있어. 네가 낳은 딸도 그럴 거야.
정아,
곧 한국에 다니러 온다고 했지. 사위도 외손녀도 함께 말이야. 얼마나 반가울지 상상이 안 가네. 엄마가 아기를 품에 안고는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닐까 싶어. 울 외손녀가 벌써 고개를 들고 옹알이를 하던데, 그때쯤 되면 기어 다니지 않을까 싶어.
엄마는 우리 외손녀에게도 손 편지를 쓸 생각이야. 아마 그것은 예쁜 그림책이 되어 나오지 않을까 싶어. 엄마가 그림책을 쓰려는 이유라고나 할까?
울 딸 곧 만나서 온 가족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자꾸나!
"보고싶은 울 딸,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