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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Jul 24. 2024

화가가 된 너를 다시 만나

아,

너와 나의 만남은 아주 단편적인 것들만 떠오르지만 모아보니 또 하나의 이야기가 엮어지네. 너는 나보다 한 학년 아래였고, 작은 교회에서 만났지. 수련회 같은 데 갔을 때 같은 조를 했을까? 작은 방에 앉아서 밤새도록 이야기하던 기억이 나네,


너의 집에 갔은 때 앉을 공간이 없을 정도로 방에 가득 찬 네그린 그림들, 너의 나이 드신 지가 거실 가득 혀있 책들을 내서 읽으셨던 , 네가 아기를 낳았을 때 축하해 주러 갔던 일, 의 집은 다 다른 장소였네. 너는 수유리에서 안양에서 면목동에서 살았었네. 그러고 보면 너도 이사를  많이 다닌 거야.


몇 년 전 네가 화가가 된 이후 동숭동에서 우리가 만나 밥 먹었던  생생하네. 너는 그곳에서 살면서 갤러리에 나가 그림도 그리면서 지낸다고 했지.


나는 금한 게 많았지만 못 물어봤어. 네가 너보다 아래인 남동생의 죽음에 대해 말했기 때문이야. 병으로 먼저 늘나라에 다고 했지. 론 아버지는 연세가 많으셔서 돌아가셨을 거고.


네가 교회 주보며 부활절, 크리스마스 등 교회 절기 장식을 도맡아 한 얘기를 잠깐 했었지. 들어보니 내가 쌍문동에 살  바로 우리 집 근처에 있는 교회에 다녔더구나. 왜 그때는 연락할 생각을 못 을까? 전화번호도 저장되어 있고, 네 프로필 사진이 늘 내 폰에도 뜨고 는데 말이야.


우리는 손 편지를 주고받았을까? 편지는 생각이 안 나지만, 크리스마스 새해 카드는 놓지 않고 서로 보냈던 것 같아. 나는 카드를 쓰면서도 그 안에 속지를 한 장 더 붙여서 긴 편지를 쓰곤 했. 그러니까 진이 너에게도 그랬을 거야. 구구절절 손 편지 카드를 보 거지. 


예전에는 우리가 카드를 직접 만들어서 보냈잖아. 연말이 되면 거의 50여 장은 만들어서 보낸 것 같아. 꼭 보내야 할 사람 이름을 적어놓고 체크해 가면서 몇 날 며칠 동안 보냈지.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사서 붙이고 소인을 찍어 보냈었네. 때로는 우표를 넉넉히 사다 놓고 사용하기도 했어. 집 근처에 있는 우편함을 이용했었지.


너는 내가 보낸 그 카드들을 가지고 있을까? 아마도 아닐 거야. 그런데 나는 네가 보낸 카드를 몇 장 가지고 있단다. 다른 이들이 보낸 카드도 가지고 있어. 주고받은 카드들을 다 가지고 있는 건 아니고 그림이 아주 예쁘고 좋은 말이 적혀 있는 카드를 골라서 앨범에 사진처럼 끼워 두었지. 이래서 내가 추억을 먹고사는 사람이란 걸 실감한단다.


진아, 네가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나는 인문계로 갔고, 너는 여상에 들어갔어. 시험 쳐서 들어가는 가장 좋은 여이었지. 그리고 2학년 때쯤 미술반에 들었다고 했어. 여상이니까 상업미술반에서 기업 광고나 포스터 같은 걸 만드는  걸 한다고 했지. 그 시절에도 우린 만났어. 왜냐고? 우린  같은 교회를 다녔으니까. 


진아, 네가 화가가 된  참 신기한 일이었어. 어떻게 학원에도 안 다니고 인문계도 아닌 여상을 나와서 1년 독학으로 재수하고는 바로 그 어렵다는 H대 미대에 들어갈 수가 있어? 넌 미술에 재능이 있었던 게 분명해. 너는 시각디자인과에 합격해서 열심히 대학생활을 지. 나는 여고 졸업 후 재수의 길도 가지 않으면서 어정쩡한 상태로 지낼 때였고, 너는 대학 된 거지.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네가 교회에서 안 보더라고. 너는 우리 교회보다 아주 큰 교회로 옮겨갔던 거야. 아마도 대학에서 만난 친구를 따라갔을 거야. 너는 그 교회에서 주보를 만들고 교회 장식을 도맡아서 했다지? 그때가 연초였으니까 새해장식을 했을 거야. 그전에 크리스마스 장식도 했는데, 일부는 남아있는 것도 있었을 거고.


가 교회를 옮기고 얼마 후너를 만났을 때 네가 다니는 교회 청년부 수련회를 소개했어.

"산상 수련회가 있는데 한번 같이 가보면 어때요?"

부에는 대학생도 있었지만, 재수하는 이들이나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한 이들도 많이 있다고 했어.


나는 네가 소개한 그 교회 청년부 산상 수련회에 갔었네. 가평에 있는 기도원이었는데, 수련회 때 엄청 울었던 기억이 있. 예배 시간이나 산 기도시간에는 물론 밥을 먹을 때도 쉬는 시간에도 어찌나 울었던지 눈이 퉁퉁 부었었지. 무엇이 나를 그토록 울게 한 걸까? 는 그때 신학교에 가고 싶었고 오랜 시간 동안 다른 종교를 믿었던 우리 집에서는 절대로 허락할 일이 아니었어. 나는 그때 1차 대학에서 떨어지고 2차 대학에 원서를 넣고 원하지 않는 학과에 합격통지서를 받아둔 시점이었지. 그런데 갈 수가 없었어. 우리 집에서 대학입학금과 등록금을 줄 수가 없었거든.


로님 한 분이 나를 불렀지. 상담을 했어.  내 사정을 들은 그분은 나에게 제의를 했어. 4년 동안 신학대학 등록금을 모두 대어주신다고 했어. 나보고 재수비용도 주신다면서 공부를 계속하라고 했지.


그런데 나는 그게 참 이상했어. 그래서 바로 그  이튿날 수련회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셔틀버스를 타고 바로 집으로 돌아와 버렸단다. 그리고 네가 다니는 그 교회도 나가지 않게 되었고, 너와도 소원해졌지. 너에게 처음 하는 이야기네.


내가 아주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일까? 지금도 참 신기한 일이야. 그렇지만 만일 그 장로님이 진심으로 나를 도울 생각이 있었다면 너를 통해서 나를 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걸 보면 내가 그때 내려오길 잘한 듯해.


그리고 이제야 우리가 다시 만났네. 너는 잡지사와 출판사에서 표지 그림을 그리고 책 편집하는 일을 하다가 이제는 어엿한 화가가 되어 여전히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개인전도 하고 그러지. 참 보기 좋아.


아, 그러고 보니까 네가 우리 소설 동인지 표지도 만들어주었었네. 작품을 실은 우리 모두의 사진이 들어간 표지였지. 그때 나와의 인연으로 거의 무료로 만들어 주었지. 참 고마워.


나도 직업은 따로 있지만 아크릴화를 몇 년 간 그렸고, 지금은 문인화를 그린단다. 은유가 담뿍 담긴 그림이 좋아서 계속 그릴 생각이야. 기회가 되면 화가도 되고, 개인전도 하고 싶은 꿈이 있어. 그때가 되면 그림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얘기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린 그림에 담긴 은유, 우리 삶에 대해서 말이야. 곧 그런 날이 오길 바라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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