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엄마들이 아들을 군에 보내는 날 눈물을 많이 흘린다지, 아마도! 네가 군에 입대하던 날이 생각나네. 엄마랑 아빠도 눈물을 흘렸을까? 좀 기분이 어두웠지만 대한의 남아로서는 꼭 갔다 와야 하는 곳이기에 슬픔보다는 담담하려고 애썼던 것 같아.
아빠랑 엄마랑 너랑 정아랑 함께 춘천으로 갔었지. 그곳 신병교육대에서 기초훈련을 받고 군에 배치가 된다고 했어. 우리가 같이 근처 식당에 가서 돈가스와 짜장면을 먹은 기억이 나네. 아주 맛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그냥 그랬어. 너를 군에 보내는 마음에 음식 맛이 제대로 날 리가 없었지.
대한민국에 태어난 남자라면 누구나 다 군에 가니까 그러려니 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현역으로 안 가는 사람들도 있잖아. 행정병이나 운전병, 의료병으로 복무하는 사람들도 있고 말이야. 네 삼촌들만 해도 둘이나 다 수경에 뽑혀서 청와대 그런 데서 비교적 편하게 군생활을 했고 주말이면 외박을 나와 집에서 자고 가기도 했거든.
그런데 너는 신체검사에서 1급을 받아서 현역 육군으로 군입대가 결정된 거야. 그것도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재수를 해야 할 시점에 군에 가게 되어서 엄마 아빠 마음이 많이 아팠어.
너와 여동생 정아가 고등학생이 되어 대입을 준비할 때 학원에도 못 보내주고 그랬는데 그것 때문이었을까 생각했지. 무엇보다 엄마가 만학으로 신학공부를 한다고 밥도 제대로 못해준 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려. 엄마 친구 중에는 입시 준비하는 딸을 위해서 따뜻한 밥을 먹인다고 매일 점심, 저녁 도시락을 준비해서 배달해주기도 했다는데 말이야. 그에 비하면 엄마는 기도 이외에는 별로 해준 게 없는 것 같아.
아들,
너는 고3이 되어서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몰라. 엄마는 네가 그러다가 몸을 해칠까 봐 걱정이 되어서 가끔 네 방문을 열어보고는 공부 그만하고 자라고 했지. 네가 새벽같이 학교에 가고 정규수업에다 보충수업까지 다 하고 와서는 밤 2-3시까지 자지 않고 공부를 했기 때문이야.
수능성적은 비교적 잘 나왔어. K대, 네가 원하는 학교, 학과는 아니지만 조금 낮추어서 쓰면 갈 수 있는 점수였지. 안전지원을 해서 점수가 남았기 때문에 학교 선생님도 우리도 모두 안심을 했어.
그런데 너는 K대도 학과도 마음에 안 든다고, 재수를 해서 더 좋은 대학, 원하는 학과에 가고 싶다고, 논술시험을 대충 봤다고 했어. 결과는 낙방이었어. 너는 아마도 논술 시험지에 아무것도 안 쓰고 나온 게 아닐까 짐작이 갈 뿐이야. 왜냐하면 담임 선생님이 그러셨거든. 논술을 발로 써도 합격할 수 있는 점수인데, 그 학과에 떨어진 게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말이야.
아들,
그날, 네가 대입 논술시험 보는 날 말이야. 엄마가 봉사하고 있는 교회학교 초등부 수련회가 2박 3일 동안 있었어. 너를 혼자 시험 보러 가라고 집에 두고는 엄마가 집을 비웠던 일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네. 아침에 따뜻한 밥을 지어서 도시락도 싸주고 시험 보러 가는 너에게 기도도 해주고 그랬어야 했는데 말이야.
아들,
참 사연이 많네. 이럴 때 저럴 때, 엄마는 네게 손 편지를 써놓고 갔었지. 진심을 담아서 썼지. 엄마가 교회 봉사를 하니까 너희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돌보아 주실 거라고, 아무 걱정하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감 있게 시험을 보라고 말이야.
그런데, 너는 대입에 낙방하고 몇 달 쉬고 있었지. 그때 네가 운전병 지원해서 가면 좋을 것 같아서 1종 대형 면허도 따게 했어. 그런데 너는 육군 현역이 좋다며 운전병 지원을 안 했어.
엄마는 네가 필요할 때 옆에 없었고, 너는 엄마 말을 잘 안 따랐네. 엄마는 미안했지만, 너는 엄마 간섭이 필요없을 정도로 독립적이었어. 물론 네 동생 정아도 그랬지. 엄마 아빠가 많이 해주지 못해서 오히려 독립심이 생긴 거고, 그 덕분에 바르게 잘 자라주었지.
아들,
네가 군에 있는 동안 우리가 정말 편지를 많이 썼네. 너의 손 편지를 받으면 자꾸만 눈물이 났어. 네가 고3 때 죽을 만큼 열심히 공부한 일과 수능시험 점수가 비교적 잘 나온 일, 그리고 논술 시험 잘못 쳐서 낙방하고 군 입대한 일 등 기쁨과 안타까움이 섞인 묘한 눈물이었지.
그런데 너는 젓가락부대인 11사단으로 군 배치가 되어서 얼마나 훌륭한 군인이 되었는지 몰라. 입대 후 1년쯤 되었을 때 너는 우수 군인에 뽑혔다고 했어. 사격도 무지 잘한다고 했지. 아빠를 초대해서 대한민국 군인의 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행사가 있다고 군에서 집으로 초청장이 날아들었어.
아, 그런데 며칠 후에 아빠가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군에서 전화가 왔어. 네가 병원에 입원해서 급성 맹장수술을 했다는 거야. 엄마가 운전을 하고 아빠와 함께 너를 병문안하려고 국군수도병원에 갔었네. 자연스럽게 우수 군인 행사에는 못 갔지. 아마도 다른 군인이 뽑혔거나 네가 빠진 채 행사를 치렀을 거야.
그 후 한겨울 혹한기에 눈 쌓인 산봉우리를 점령하는 모의전투가 있었고, 너는 발목을 다쳤다고 했어. 모의전투 중에 발을 삐끗해서 이상이 느껴졌지만 전투 중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고 했어. 모의전투도 전투는 전투니까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던 거지.
너희 부대가 이겨서 포상휴가를 나왔어.
"아들, 발목은 어때?"
"예전 같지는 않아요."
너는 아프다고 말은 안 했지만, 그렇다고 괜찮은 것도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부랴부랴 병원을 알아보고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글쎄 왼쪽 발목에 인대가 다 녹아서 없어졌다는 거야.
"걸을 때마다 아팠을 텐데 어떻게 참았나요?"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어.
너는 발목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했어.
"퇴원 후에도 약 6개월간은 발을 쓰면 안 돼요. 그 이후에도 군 훈련은 절대 안 돼요."
그러면서 진단서와 소견서를 써 주셨어. 그래서 우수 군인이 될 뻔한 너의 남은 군 생활은 휠체어와 목발과 함께 내부반 안에서 지내야만 했지.
아들,
이렇게 시시콜콜 적다 보니 엄마 마음이 정말 많이 아파. 어쩌다 네가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되었는지 잘 이해가 안 돼.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고, 네 잘못도 엄마 아삐 잘못도 아니잖아.
그리고 무사히 재대한 후에 너는 재수를 했고 대학에 합격했고 졸업했지. 준비했던 일이 있었고, 새로운 일을 하게 되었지.
"제가 알아서 잘할게요."
너는 늘 그렇게 말하고 무어든 알아서 척척 해내지.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엄마는 너를 낳았을 때 세상을 모두 다 가진 것처럼 기뻤고, 너를 키우는 동안도 언제나 네가 기특하고 대견했단다. 집안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너는 한 번도 불평한 적도, 대든 적도 없었어. 무얼 안 해준다고 앙탈한 적도 없었고, 동생하고 싸운 적도 없었지. 너는 심성이 얼마나 고운지 거짓말도 할 줄 모르고 올바르게 행동하고 최선을 다했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구립소년소녀합창단을 했고, 입시를 준비하던 고등학교 때도 중창단에서 베이스로 활동하며 엄마를 기쁘게 해주었어. 교회 사랑부 봉사도 네가 자원해서 했어. 그 무엇 하나 엄마 아빠를 걱정시키는 일이 없었지. 그 후 너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일이났지만, 그 일들로 인해 네가 더 단단해져서 감사해.
아들,
엄마는 네가 세계적인 인물이 되게 해달라고 늘 기도했어. 너만 생각하면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마음 가득 기쁨과 감사가 넘쳐난단다. 그래서 나는 너를 '우리집 복덩이'라고 부른 거야.
지금 이 순간 엄마가 네게 손 편지를 쓰고 있는 거야.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절대로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단다. 반드시 이루어지지. 기다려 보렴.
너의 존재 자체는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차고 넘쳐. 무엇을 해도 안 해도 괜찮아. 너의 선택은 언제나 옳아.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살아도 돼.
너는 엄마의 기도대로 세계적인 인물이 될 거야. 엄마가 너의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나중에라도 엄마의 기도를 꼭 기억해 주렴.
아들,
언제나 너를 응원해.
그리고 아주 많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