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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숲길 걸으며 혼자서 묵언산행

의왕 모락산

by 서순오

모락산은 두 번째 산행이다. 코스가 5km 내외라 그리 길지 않고, 대체로 완만한 흙길이고, 하늘이 안 보이는 초록숲길이라서, 한여름에 걷기에도 좋은 산이다. 특히 정상 국기봉 조망이 좋다. 그곳에 서면 인근 도시가 한눈에 다 들어오고 주변 산 봉우리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방향감각이 없어서 저기가 어느 도시이고 어느 산인지만 잘 모를 뿐이다.


그래도 모락산은 가파른 구간과 암릉구간도 있다. 지난번에 지인 두 분과 처음으로 모락산을 다녀왔을 때는 가파른 구간으로 올라갔다가 조금 완만한 구간으로 내려왔다. 모락중학교에서 출발해서 사인암~ 6.25 격전지~팔각정~국기봉 오르고, 되돌아서 오다가 사인암 안 들르고 갈미한글공원으로 내려왔다. 그때 오랜만에 산에 왔다는 지인분 하나가 가파른 오름길 힘들어하고, 또 신발도 하도 오랜만에 신어서 밑창이 떨어져서 애를 먹었다. 그렇지만 셋이서 산행하니 오순도순 재미는 있었다.


오늘은 혼산이라 조용히 묵언산행을 할 수 있어서 좋다. 나는 많은 사람이 있는 장소에 갔다 오면 에너지가 소진되어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삼가고 있는 중이다. 내 성격유형이 혼자 조용히 있을 때 에너지가 충전되는 형이라서 그렇단다.


어쨌든 검색을 해서 집에서 가기 편한 모락산 들머리를 찾아본다. 아하! 버스로 한 번에 가는 장소가 있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도보로 15분 정도 걸어가야 모락산 들머리 모락초등학교가 나오지만 그 정도는 보통이다.


집에서 가까운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약 1시간 후에 내리니 의왕지구대ㆍ글로벌도서관 정류장이다. 모락산 가는 길을 물어 도로길 따라 걸어간다. 콘크리트 바닥에서 열기가 올라와 무지하게 덥다. 에어컨 없으면 집에서도 심장이 벌떡거려 누워있기도 무서운 불볕더위다. 태풍 종다리가 왔다는데 시원하기는커녕 더 덥단다. 무슨 현상이라나 뭐라나? 갈수록 여름 나기가 쉽지 않다.


모락초등학교는 찾기가 쉽다. 그냥 쭉 올라가면 된다. 횡단보도는 두 번 정도 지나간다. 가까이 가면 건물 제일 높은 곳에 쓰인 모락초등학교 이름표가 보인다. 반갑다.


모락초등학교 왼쪽으로 모락산둘레길 이름표가 근사하게 서있다. 그 옆으로 올라가면 된다. 모락어린이놀이터가 나오고 초록숲길이 펼쳐진다.

"어서 오세요."

나를 반기는 듯 곳곳에 예쁜 모락산둘레길 이름표가 나무에도 돌에도 붙어 있다.


약수터라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성나자로마을 쪽 중 오른쪽으로 간다. 어느 블로그에서 포스팅해 놓은 걸 읽어보니 모락산 정상(약 2km) 쪽보다는 이 길로 가는 게 정사미 더 가깝단다. 길이 거의 평지길이다.

"이따 하산할 때는 저 길로 내려오자."

나는 새로운 길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이렇게 마음먹는다.

그런데 그 길은 꽤나 오르막길이 많다. 처음부터 선택했으면 한여름 무더위에 땀깨나 흘렸겠다.

순간의 선택이 십 년을 좌우하는 게 아니라 하루 몇 시간 산행의 강도를 좌우한 셈이다.


길이 좋으니 룰루랄라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왼쪽으로는 곳곳에 철조망이 쳐져 있고 '천주교 사유지'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허락을 얻어 모락산둘레길을 조성했으니 길 이외에 철조망 안으로는 들어가지 말라는 얘기이다. 길 왼쪽 철조망 너머로 성나자로마을인 듯한 곳을 지나가지만 숲이 우거져 건물이 있다는 느낌만 있을 뿐 마을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는다.


길 곳곳에 나무 안내와 이름표가 붙어 있는데 어느 게 어느 것이지도 잘 못 알아보겠다. 일단 사진 먼저 찍어두고 공부를 좀 한 후에 다음에 오면 눈을 맞춰봐야겠다.


편한 길로, 느리게 천천히 약 1시간 정도 걸으니 데크길이 나타난다. 오름길 시작인가 싶은데 조금 더 편안한 길로 간다. 가끔 암릉들도 있다. 모락산성 0.5km 표지와 좋은 날 되십시오, 철문이 열려있는 곳을 들어서니 곧 데크길 오름길이 시작된다. 거기서부터 숨 가쁜 솔마루 계단이 팔각정까지 이어진다. 헉헉대며 쉬어가며 이온음료도 마신다. 바람은 시원하다. 태풍 종다리가 오고 있다는데 그 영향인 듯하다.


솔마루 계단 내려오는 남산우 님에게 사진 부탁을 해서 남긴다. 팔각정에는 아무도 없다. 정자 기둥에 붙어있는 온도계를 보니 30도가 채 안 된다. 그래서 산은 시원하다! 팔각정에서 잠시 또 쉬고, 국기봉을 향해 간다. 금방이다.


적당한 암릉구간 지나 국기봉에 서니 바람이 제법 분다. 높이 솟은 깃대에 태극기 펄럭이는 소리가 힘차다. 아무도 없어서 인증사진을 어떻게 남기나 궁리를 한다. 셀카로는 태극기가 나오는 지점이 도저히 안 잡힌다. 몇 자 찍기는 했지만 태극기가 안 나온다. 국기봉 뒤쪽으로 가본다. 의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누우면 내 키에 딱 맞을 크기이다.

"바람도 적당하게 불고 나뭇잎도 흔들리고 여기서 낮잠 한숨 자고 가면 딱 좋겠네."

나는 준비해 온 닭가슴살, 호박, 감자, 고추를 섞어 만든 샐러드 비슷한 버무리와 가래떡, 바나나 한 개를 맛있게 먹고 기회를 엿보고 있다.

"누가 올라오나?"

마침 여산우 님 한 분이 올라온다. 주문이 많다.

"제 다리까지 나오고, 저기 태극기도 잘리지 않게, 다 나오게 찍어주세요."

몇 컷을 찍어주셨는데 딱 한 장이 내 요구대로 찍히고 나머지 사진은 모두 한쪽이 잘렸다.

"한 장이 어디야? 그것도 감사하지."

속으로 만족하며 가래떡을 한 개 권유하니 뒤에 남편이 따라오고 있는데 배낭에 먹을 게 많다며 사양한다.

"감사해요."

큰 소리로 인사하고 국기봉 뒤쪽 암릉으로 가서 주변 조망을 한다. 아파트가 있는 인근 도시와 산봉우리들의 조화가 이색적이다. 부조화인 듯하지만 조화롭다.


다시 팔각정까지 되돌아간다. 아까 올라온 길로 내려간다 갈림길이 나오면 그때 결정하면 된다. 내가 오르지 않은 다른 길 말이다.


드디어 갈림길, 다른 길로 들어선다. 능선길 흙길 내가 좋아하는 길이다. 그런데 조금 내려오니 보니까 길이 완만하게 경사가 있다. 이곳으로 올라왔으면 오름길에 약한 나는 꽤 힘들었겠다. 땀도 많이 흘렸겠다. 군데군데 바위들도 제법 있는데 그중 이름표가 붙은 것은 큰범바위이다. 일부가 나무에 가려서 큰범의 형상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부지런히 내려오다가 두세 개 갈림길에서 약간 거친 길은 선택해 본다. 그랬더니 푸석푸석한 나뭇잎이 밟히고 길이 아닌 듯 길인 듯 희미한 길들이다. 내려와 보니 글쎄 샛길통행금지 구역이다.

"보수대 약수터는 꼭 들러야지."

물이 '부적합수'라고 쓰여 있어서 먹을 수는 없었지만 씻을 수는 있을 듯해서다. 다행히도 딱 거기로 내려왔다.


내 몸에서 난 땀냄새 때문인지 날벌레들이 수없이 달려든다. 아니다 거친 길로 오면서 여러 번 거미줄을 통과했는데, 내 모자에 걸린 거미줄, 그 줄에 달린 벌레들을 먹으려고 달려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암튼 사람은 없어서 약수로 얼굴과 손발을 씻고 머리도 감고 손수건을 적셔서 온몸을 닦고 여벌옷을 갈아입는다. 가지고 다니는 돗자리가 한몫을 했다. 그 사이에도 모기와 온갖 날벌레들이 내 다리와 팔을 사정없이 공격한다. 집에 와서 보니 군데군데 포탄 맞은 듯 벌겋다. 엄청 뜯겼다!


새 옷을 입고 양산을 쓰고 살방살방 하산한다. 금방 또 땀이 나지만 상쾌하다. 편의점에서 복숭아아이스티 한잔 사서 들고 얼음째 마시며 정류장으로 간다. 햐! 도로길은 정말 뜨겁다. 역시 산이 시원하다. 걷고 있는 데도 졸음이 쏟아진다. 버스를 한번 타고 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자리를 잡고 앉는다. 혹시나 잠이 들어 내릴 정류장을 지나칠 수도 있어서 알람을 맞춰놓는다. 알파산 카페에 산행보고 글을 올리고 있노라니 다시 정신이 멀쩡해진다.


재래시장 들러 장까지 보고 양손 가득 먹거리를 들고 모락산 산행을 마무리한다. 혼자 가도 사색이 있어 좋은 산, 두세 명이 가면 더 정겨운 산, 근교산행이 주는 기쁨이다! 오늘도 초록숲길을 걸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모락산둘레길 예쁜 이름표
보수골 약수터와 정자
이정표와 데크길
팔각정
국기봉에서
국기봉에서의 조망
국기봉 암릉과 나무의자 쉼터
국기봉에서 내려오는 데크길과 멋진 소나무
솔마루 계단, 큰범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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