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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Oct 18. 2024

인간은 눈사람처럼 녹아내리는 존재

한강 [작별] 김유정 문학상 수상 작품을 읽고

어느 날 갑자기 눈사람이 된 여인의 이야기이다. 아들 하나를 둔 이 여인은 벤치에 앉아 잠깐 졸았다가 자신이 눈사람이 된 것을 알았다. 그녀에게는 7살 연하의 애인이 있다. 그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남자이다. 실직상태라 돈도 못 벌고 여자에게서 밥을 얻어먹다가 여자가 눈사람이 된 후에는 여자가 돈을 주면 혼자 가서 밥을 사 먹는다.


눈사람이 된 여자는 조금씩 녹아내린다. 심장 부근이 가장 먼저 녹아 흐르고 눈가도 눈물이 흐르면 녹는다. 입술도 키스하면 녹고 손도 잡으면 녹아내린다. 그렇게 여자가 결국 녹아내리는 이야기이다. 이것이 [작별]이다.


인생 100세 시대라고는 하나 창조주 입장에서 보면 순간이요, 찰나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조금씩 녹아내리는 존재인 것이다. 성취를 하고 무엇을 이룬다고 해도 결국은 다 놓고 가야 한다. 사람은 한 줌 흙이 되어 완전히 녹아내린 후 땅 속에 스며든다. 기독교 신앙에 의하면 인간은 본래 흙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한강 작가는 [작별]에서 인간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작별]에는 허무가 담겨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창조주가 없는 인간에게는 죽음이 선악과의 죄벌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다. 한강 작가는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랜의 동화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읽고 죽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했다고 한다. 이 동화는 윤회 사상을 바탕에 깔고 있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죽음 이후에도 삶이 계속 이어진다. 죽으면 전혀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계속 사람으로 살아간다.  <백만 번 사는 고양이> 그림책도 윤회 사상을 담고 있다. 백만 번이나 죽는데 또 백만 번이나 새로운 세상을 산다. 그 세상은 지금과 비슷한 세상이다. 그런데 주인만 바뀌고 계속 고양이로 태어나서 살아간다.


나는 여중 1학년 때 기독교 신앙을 접했는데, 신앙이 더욱 돈독해진 것은 여고시절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남동생의 죽음을 경험하면서부터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숨진 남동생의 몸이 파랗게 딱딱하게 굳어가는 걸  밤새 지켜보면서 나는 인생이 그렇게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죽음 이후에 영원한 생명(영생)이 있다는 기독교 신앙은 내게 소망의  메시지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모든 죄가 사해지고 가장 좋은 모습으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기독교 신앙이 나는 참 마음에 들았다. 기독교인에게는 허무가 없다. 지금 당장 죽는다 하더라도 죽음 이후에는 새로운 좋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영생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도가 없는 인생에 허무가 아니면 그 무엇을 쓸 수 있겠는가? 노벨문학상도 죽을 때는 그저 두고 가야 하는 성취에 불과한 것이다. 눈사람이 된 여인이 물이 되어 녹아내리는 것처럼 그저 녹아버리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어린 아들도 애인도 그냥 남겨두고 사라져 가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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