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세상과 단절되었던 와룡리에도 봄이 찾아왔습니다. 눈이 녹고 읍내로 향하는 길이 뚫린 뒤 첫 번째로 열리는 영광 읍내 장날입니다. 와룡리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갇혀 있던 터라 너나 할 것 없이 보따리를 챙겨 등짐을 지고, 머리에 이고 장을 보러 나섭니다.
와룡리에서 읍내까지는 이십 리 길입니다. 아침 일찍이 발걸음을 나서도 장을 다 보고 집으로 돌아오려면 해가 지고 어둑어둑 어둠이 내릴 때쯤이 되어서야 가능한 일입니다.
“설아, 얼릉 챙기그라. 성황당 옆에 사는 거시기 있잖냐, 이장댁에서 소달구지를 가지고 간다니께 후딱 가서 타고 가자 잉? 읍내 들어가서 설이 출생신고도 허고, 장도 볼라믄 시간이 급한 게로 후딱후딱 서둘러야 헌다이. 가서 설이 외할매도 좀 보고 그러게...... ”
미동할머니는 잠시 말을 멈추고 멍하니 동구 밖을 내다봅니다.
‘썩을 놈이 지 새끼도 모른다 하고 주막에서 술 처먹고 화토짝이나 만지고 있것구만!’
목구멍에 무엇이 걸린 것처럼 미동할머니는 땅바닥에다 세 번 가래침을 뱉어 냅니다.
“엄니, 주막에 들렀다 갈까요?”
“아서라, 험한 꼴 보기 싫으믄 그냥 가는 게 상책이 고만 잉?”
설이 엄마는 설이를 포대기에 싸서 업고 보따리 하나를 싸서 미동할머니 머리에 얹어줍니다. 설이로서는 따뜻한 아랫목을 벗어나 세상 구경을 하는 처음 나들이입니다.
“아따, 어린것이 이쁘게도 생겼구만 잉?”
“근디 지 아부지는 저것이 싫다고 주막에서 나오도 안 헌다면서?”
“그래도 어린것이 나들이가 좋기는 한갑네 잉? 그냥 벙글벙글 하는 고만 잉?”
이장댁 소달구지를 타려고 나오니 마을 사람들이 포대기를 열어보며 저마다 한 마디씩 해 댑니다. 성황당에는 이른 아침부터 굿을 하려는지 사람들이 모여서 시끌벅적합니다.
“거 안 있나? 저기 웃 마을 최영감이 다 죽게 생겼다누만. 벌써 쓰러져 누운 지가 삼 년째 잖여. 그란디, 그 노인네가 노망이 들었는지 그 없는 살림에 죽기 전에 굿이나 한번 해 보는 것이 소원이라 했다는 구만. 죽을라믄 곱게 죽지 아들 먼저 보내고, 먹고살기도 힘든 판에 집안 거들내고 갈란가, 며느리한테 글씨, 굿을 한 번만 해달라고 사정사정을 하더라는 구만!”
“그래도 목숨이 아까운 게로 그런 것이제 잉?”
성황당 나무마다 빨주노초파남보 형형색색의 천 쪼가리들을 찢어서 매어 달았습니다.
설이 엄마는 등에 업힌 설이를 두 손을 깍지 껴서 한 번 더 꼬옥 끌어당기며 몸서리를 칩니다.
“자 그라믄 다들 읍내에서 봅시다.”
이장님이 소 고삐를 잡자 읍내에 장 보러 가는 와룡리 사람들의 일대 행군이 시작됩니다. 두어 시간 걸어가노라니 같은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사람들이 다 따로 떨어져서 걸어갑니다. 걸음이 빠른 사람, 느린 사람, 쉬어가는 사람, 서둘러 앞서가는 사람......
한 낮이 다되어가자 읍내로 들어서는 ‘북문’이 보입니다. 산을 깎아 영광 장터에서 장성 쪽으로 찻길을 내다보니 와룡리 쪽에서 오다가 보면 디귿자를 옆으로 눕혀 놓은 모양이 위가 뻥 뚫린 게 꼭 대문을 열어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산 고개를 넘어가는 지름길을 택한 사람들은 저만치 산중턱을 오르고 있고, 강 쪽을 택한 사람들은 바지를 걷어붙이고 발을 벗고 시린 발을 동동거리며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소달구지는 달구지째로 덜컥거리며 강을 건너갑니다. 무게를 줄이려고 다들 달구지에서 내렸는데도 미동할머니와 설이 엄마는 달구지 위에 앉아서 갑니다.
“미동할매, 설이 때문에 호강헌 줄 아씨요.”
“그야, 내 다 알제. 읍내 들어서믄 막걸리 한 잔 대접 헐 테니께 고만 얘기하소 잉?”
읍내에 들어서자 북분 초입부터 길가에 벌여놓은 좌판으로 인해 장날 분위기가 살아납니다. 쌀, 보리, 콩 같은 곡식, 호미, 낫 같은 농기구, 고무줄, 덧버선. 양말 같은 것...... 없는 것이 없습니다. 가장 흥을 돋우는 것은 울릉도 호박엿장수입니다.
“맛배기요, 맛배기, 맛배기들 드시고 쫄깃쫄깃 달콤 달콤 울릉도 호박엿을 사 먹으면 알콩달콩 사랑이 싹트니께 얼른들 사씨요. 울릉도 아가씨와 총각이 정답게 빚은 울릉도 호박엿을 사가씨요. 맛배기요, 맛배기......”
미동할머니와 설이엄마도 소달구지에서 내려 울릉도 호박엿을 맛보고 삽니다.
“아따 그놈의 호박엿 맛 한번 억쑤로 찐뜩거리는구만 잉?”
호박엿을 한 입 배어 물은 이장님이 눈을 찡긋거리며 호박엿아저씨에게 농을 겁니다.
장터로 들어서서 막걸리 한잔을 목에 축이고 이장댁도 설이네도 따로 헤어집니다.
“이따가 한 세시 정께 저기 북분 들어오는 디서 다시 만납시다. 그라믄 장들 보시라고 예?”
장터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니 온갖 생선을 양쪽으로 쭉 늘어놓고 파는 생선가게에서 지독한 비린내가 납니다. 잡아놓은 소며 돼지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파는 정육점에서는 생고기냄새가, 이불이며 옷가지들을 파는 가게에서는 석유냄새가 납니다.
와룡리 깊은 산골에서는 맡아볼 수 없는 이 새로운 냄새 때문에 잠이 깬 것인지, 아니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 본 여행에 힘이 든 것인지 설이가 등 뒤에서 울어대기 시작합니다.
“아가, 쪼매만 참어라 잉? 저기 채소 가게를 지나면 너이 외할머니가게가 나오니께......”
미동할머니와 설이 엄마의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이 급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설이의 울음소리가 영광 읍내 장터의 시끄러운 소리들 사이에서 청아하고 우렁차게 울려 퍼집니다. 장터의 귀와 눈들이 하나씩 하나씩 설이의 울음소리로 모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