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설이 외할머니

by 서순오

군중들 틈을 비집고 장터 한 복판으로 쑥 들어오니까 오징어, 북어, 문어, 굴비, 밤, 대추 등 제사상에 올리는 건어물과 미역, 멸치 같은 것을 파는 제수품 가게 ‘영광상회’가 보입니다. 전대를 허리에 차고 부산하게 되로 멸치를 되고 있는 친정어머니가 보입니다.

“아이고, 이것이 누구디야? 우리 옥자 아니냐! ”

“아이고, 사둔 어른, 지는 안 보인게라오......”

“아이고, 사둔 어른, 같이 오셨구만요. 애기 받아 산간 하니라고 애 많이 쓰셨구만요. 이왕 나올 거면 거시기 하나 달고 나왓으믄 좋았을 것인디......‘

설이 외할머니는 연신 아쉬운 표정을 짓습니다.

“처음엔 그랬지라. 그래도 넘의 아들보다는 낫습디다. 요새는 설이가 이뻐라오.”

“근디, 서서방은 아직도 집에 안 들어온 담서 우짜면 좋디야. 그렇게 술만 먹고 있으믄 몸이 다 망가질 것인디...... 그라고 화토에 길들이면 집안이 망쪼가 드는 것인디 어짤라고 그란 디야? 그렇다고 니도 잘한 것이 없은 게 서서방만 나무랄 것도 없제 잉? 옛날부터 아들 못 낳는 것은 ‘칠거지악’의 하나인 것이여 잉?”

설이 엄마는 못 들은 척 하고 설이를 가슴에 안고 젖을 물립니다. 젖을 빠는 설이의 입에 힘이 들어갑니다.

“아이고, 이것아, 아프다, 살살 빨아라.”

설이 엄마는 설이의 입을 젖에서 한 번 떼었다가 다시 물립니다. 쪼옥쪽 젖을 빠는 설이의 눈이 초롱초롱 빛납니다. 엄마의 눈동자 속으로 하나 가득 들어오는 설이의 눈을 맞추며 설이 엄마는 문득 어렸을 적 친정어머니의 품 안에서 놀던 일들을 기억해 냅니다. 부끄러움이 많아서 낯선 사람이 오면 자주 엄마의 치마폭으로 숨던 일이며, 엄마의 무릎에 앉아서 낮잠을 자던 일이며, 밤이면 엄마의 젖무덤을 만지작거리며 옛날이야기를 듣던 일들이 꿈결처럼 지나갑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 혼자 생계를 꾸려 나가시느라고 많이 거칠어지고 사나워진 거야. 사는 게 너무 힘이 든 나머지 그만 재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거고......’

설이 엄마는 친정어머니를 이해해 보려고 애를 씁니다.

“지가 저 양반을 안 만났더라면 월매나 고생을 많이 했것어라오? 다행히 저 양반이 제수품 가게를 하고 있응 게로 먹고사는 걱정이 없어진 것이지라오. 안그라요, 사둔 어른?”

설이 엄마는 아이 젖을 물리고 있어서 앉은 채로 뒤늦게 인사를 합니다.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어색해서 그냥 ‘안녕하셨지라오?’하고 한 마디 하고 맙니다. 그도 그럴 것이 친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2년이 채 안 되어서 어머니가 재혼을 결심하고 자기를 급하게 시집보내 버린 것입니다. 그때 설이 엄마의 나이가 겨우 18살이었습니다. 그 옛날 미동할머니가 시집올 때보다도 더 어린 나이입니다.

“그래도 와룡리에서는 제일 땅뙈기가 많은 집이라니께, 니가 가서 떡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만 낳으믄 장땡인 것이여, 알것제 잉? 그라믄 니 팔자가 피는 것이여.”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를 여의고 얼마 안 된 뒤라 어머니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했지만, 서로 의견이 달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글씨, 옥자가 시집갈 때 논 닷 마지기에 나락을 스무 섬이나 받았다지 뭐여? ”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딸을 시집보내 놓고 친정어머니의 팔자가 완전히 피었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시집가면 다 끝인 것이여. 금지옥엽 키워놓으니께 옥자 저 것이 자주 댕기로 올라나 해도 장에 와도 지 볼일만 보고 나도 안 보고 가드라니께. 첨엔 무지 섭섭하드구만 잉? 그래도 ‘출가외인’인 게 이해를 했지라오.”

설이 외할머니는 억세게 거친 말투로 미동할머니 말을 앞질러가며 한사코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설이 엄마는 마음속으로 도리질을 치며 젖을 다 먹은 설이를 세워 안고 트림을 시킵니다. 설이 엄마는 친정어머니의 신세보다도 자신의 신세가 더 처량해 보여 자꾸 눈물이 베어져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습니다.

‘설이 아빠가 오늘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좋은 텐데......‘

그 생각에 머무르자 서러움이 복받쳐 옵니다.

“엄니, 인자 그만 갑시다. 장도 보고 설이 출생신고도 해야 하구요, 시간이 바뻐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설이 엄마는 설이를 포대기에 둘러업고 나서 뒤돌아서서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칩니다.

“옥자야, 미역이나 좋은 것으로 몇 가닥 갖고 가그라 잉. ”

설이 외할머니가 싸주는 미역이며 멸치, 오징어포 같은 것을 한 보따리 받아 안고 걸음을 재촉합니다.

“아참, 점심들 안 드셨지라오? 저기 소머리 국밥집이서 진지 드시고 가시지라오? 즈이들은 아까 11시 정께로 장꾼들이 안 밀릴 때, 일찌감치 먹었구만요.”

설이 외할머니가 지폐 두 장을 설이 엄마의 포대기에 찔러 넣어줍니다. 설이 엄마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황급히 친정어머니의 제수품 가게를 빠져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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