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삼거리 주막

by 서순오

읍내에서 두세 시간 들어오다 보면 와룡리에 다 와서 삼거리주막이 있습니다. 와룡리는 여기서부터 가구 수가 적은 윗말과 가구 수가 많은 아랫말로 나눠집니다. 우람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삼거리 주막 앞마당에 떡 버티고 서서 지나간 시간들과 사람들의 행적을 낱낱이 읽어내고 있습니다. 주막 안으로는 간단한 일용품-이를테면 계란이라든지 양초, 돼지고기 같은 것-을 파는 가게가 하나 있고, 한쪽으로는 막걸리를 파는 주막, 그 옆에 방이 하나 딸려 있습니다.

노름꾼들은 주로 농사일이 없는 겨울에 극성을 부리다가 씨를 뿌려야 하는 봄이 와도 그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주막에 눌러 붙어서 화투를 치기 일쑤입니다. 때때로 논이나 밭 마지기가 넉넉한 사람이 화투판에 들어오기라도 하면 그 돈을 따내려고 이 사람 저 사람 붙어서 화투판에 활기가 붙습니다.

설이 아버지 춘구씨가 삼거리 주막에 나타난 두어 달 전부터는 와룡리에서 거리가 먼 다른 마을에서도 사람들이 돈을 따가려고 몰려왔습니다. 돈깨나 있는 춘구씨는 우선 막걸리부터 한통 사서 돌립니다. 입안이 촉촉이 젖어오고 얼굴이 벌겋게 상기가 되면서 가슴까지 뜨끈뜨끈 달궈지면 화투판에 물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오메, 이것이 뭣이디야. 보름달이 둥실둥실 떠오른 게로, 그리운 님이 곧장 뒤따라 오시는구만! 오늘은 웬지 끝발이 잘 날리단 말시.”

막걸리에 취한 설이 아버지 춘구씨가 화토짝을 힘 있게 짝짝 때려가며 화토를 칩니다. 까뒤집는 것이 잘 맞아떨어지자 엉덩이까지 들썩거리며 흥을 냅니다.

“아따, 증말 너무 하는구만! 그라믄 내가 먹을 것이 없제 잉?”

"뭐 아들 복은 없어도 이렇게 짝짝 뒤끝이 잘 붙은 게로 기분이 째지는 구만 잉?”

설이 아버지가 그렇게 한판 멋들어지게 돈을 따고 있는데, 아침에 장에 갔던 장꾼들이 삼거리 주막으로 들어섭니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을 넘어가고 있을 즈음입니다. 벌겋게 달아오른 노을빛이 삼거리 주막과 느티나무, 와룡리 사람들을 벌겋게 물들여놓습니다.

소달구지를 끌고 온 이장 어른이 소고삐를 느티나무가지에 매어 두고 털썩 평상에 주저앉습니다.

"시원허게 막걸리 한 잔 주씨요 잉.”

동 할머니가 소달구지에서 내리자 설이엄마도 따라 내려서 평상에 걸터앉습니다.

“엄니, 한번 들어가 보세요.”

겁을 잔뜩 먹은 설이 엄마는 방 안을 들여다보며 미동할머니 옆구리를 찔러댑니다.

“글씨, 저놈이 오늘이라고 순순하것냐마는......”

못 이기는 척하고 미동 할머니가 주막 안으로 들어갑니다.

“아이고 이놈아, 니가 지금 집을 나온 지가 얼만지나 아냐? 인자 지발 정신 채리고 집으로 들어가자 잉?”

“아이고, 엄니 오셨으라오? 내가 오늘은 증말로 기분이 째지게 많이 따버렀구만이라오. 암은요, 들어가다 말구라오.”

웬일로 설이 아버지 춘구씨가 기분이 좋은 듯 고개를 들어 인사까지 합니다. 그러면서도 연신 팔이 아프도록 짝짝 화투짝을 쳐댑니다. 화투라면 신물이 날 정도면서도 미동할머니의 귀에 화투짝 맞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립니다.

“내가 인자 돈을 억쑤로 많이 땄은 게로 아들을 꼭 낳고야 말 것잉게라오.”

“그랴 알았응게. 후딱 나와서 니 새끼 얼굴이나 한 번 보그라 잉?”

설이 아버지 춘구씨가 마지막 돈을 다 긁어모은 다음 가뿐하게 일어섭니다.

“이대로는 못 말제, 돈 따고 그만두는 법은 없는 것이여? 내가 빚이라도 내올텐게로 내일 아침에 일찌감치 다시 허드라고 잉?”

맞붙었던 노름꾼들은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하지만 설이 아버지는 돈을 따서 기분이 최상인지라 담배 한대를 꼬나물고 마당으로 나옵니다. 오랫동안 얼굴을 못 본 탓인지 아니면 장에 가느라고 곱상하게 차려입어서 그런 것인지 평상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설이 엄마가 애틋하게 보입니다.

“왔는가? 야갸 설인가?”

설이 아버지는 자신이 싫다고 팽개치고 나온 설이 보기가 어색한지 포대기도 열어보지 못하고 서서 뚱하니 한마디 내뱉습니다.

“월마나 예쁘게 생겼는지 아냐? 얼굴 한번 자세히 보랑게 잉?”

미동할머니가 설이를 포대기째로 설이아버지에게 안겨줍니다.

"그라네요. 참말로 이쁘게는 생겼구만요. 야야- 내가 느그 아부지다, 알것냐 잉?”

설이 아버지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아무래도 어색한지 한바탕 너털웃음을 웃어댑니다.

“내 오늘 저녁은 집에 들어가 자야 쓰겄다.”

그렇게 설이를 끌어안고 설이 아버지가 설레설레 아랫말에 있는 집을 향해서 앞장서 갑니다. 미동할머니와 설이 엄마는 무어라 말도 못 하고 좋아서 설이 아버지 뒤를 따라갑니다.

사람들이 윗말로 아랫말로 하나씩 둘씩 집을 찾아 들어갑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둠이 앞을 가립니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컹컹컹 어둠을 뚫고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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