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실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제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신혼 첫날밤에 너무도 생생하게 제 귀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거든요.
“우리 집안에서는 꼭 첫아들을 낳아야 헌당게, 알았제 잉?”
막 제가 엄마의 자궁 속에서 제 짝꿍을 만났을 때인 것 같아요. 그때 무슨 귀가 있느냐구요? 물론 몸의 어느 부분도 아직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였지요. 그러나 저는 확실히 들을 수 있었어요. 제게도 그때부터 생명이라는 것이 부여되어 있었거든요. 깊은 우물 같은 자궁 속을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면서 저는 하루 종일 그 소리를 들어야 했어요.
“야야, 에미야. 반드시 거시기 달린 것을 낳아야 헌다이- 글안으믄 큰일인게로, 맴을 단단히 먹어야 헌다이-”
미동할머니의 목소리에도 부담이 팍팍 실려 있었고, 아버지도 바깥일을 하고 돌아올 때면 엄마 뱃속을 한 번씩 어루만지면서 “아이구 이놈이 언제 나올란가 몰라!” 해대기 일쑤였거든요.
엄마 역시 마음속으로 단단히 각오를 하는 눈치였어요.
“그깟 아들 하나 못 낳을까 봐서?”
어떤 때는 제가 듣는다는 건 신경도 안 쓰고 밥을 하다 말고 부지깽이로 아궁이를 후벼 파면서 큰소리로 혼잣말을 하는 거 있죠.
정말이지 이렇게 냉담한 환경에서도 저의 생명이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어요. 탯줄로 연결된 엄마의 몸에서 영양분을 받아 콩닥콩닥 뛰는 심장이 만들어지고 두루뭉술하게 몸뚱이가 생겨나고 눈이며 코, 입, 귀, 손, 발이 하나씩 하나씩 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보면서 저는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었어요. 너무나도 편안하고 안락한 엄마의 아기집에서 저 막막한 세상 밖으로 던져질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죠.
저는 가끔 이런 소원을 빌 때가 있었어요.
“제발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고 영원히 엄마뱃속에 머물 수만 있다면 좋겠어요.”
그러면 어디에선가 아주 부드럽고도 따뜻한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에요.
“아니다, 넌 꼭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한단다. 거기서 네가 할 일이 있단다. 너는 저 세상을 향한 꿈을 꿔야 해. 그 꿈은 아주 클수록 좋단다.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루지 못할 만큼 아주아주 커다란 꿈을 꾸렴! 그러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을 거야.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도무지 이루기 어려운 아주 커다란 꿈을 꾸렴!!!”
그 소리는 하늘 높은 곳에서 들려왔어요. 일을 하던 엄마가 이따금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위에서부터 세미하게 제 귀에 들려오는 소리였거든요. 어쩌면 엄마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몰라요. 제가 그 음성을 듣고 힘을 내어 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면 엄마는 이전의 생각을 바꾸고 새로운 생각을 했거든요.
“딸이면 어때? 딸도 딸 나름이지. 사내 녀석 못지않게 큰일을 할 수 있게 키우면 되지. 딸이라도 괜찮아, 엄마가 네 편을 들어줄 게. 걱정 마.”
저는 마음속으로 속삭이는 엄마의 음성을 듣고 한참을 울곤 했어요. 꼭 아들을 낳고야 말겠다는 엄마의 단호함 뒤에는 느낌이라는 것이 있어서 벌써부터 제가 딸이라는 걸 알고 있는 듯 했거든요.
“엄마가 널 꼭 지켜줄게.”
그리고 제가 태어나던 날의 일이 어제 일처럼 지나가는 군요. 읍내 장터에 제 이불을 사러 나갔던 아버지가 폭설 때문에 돌아오지 못했고, 엄마는 절 낳았구요, 제가 태어난 뒤로도 한 달 동안이나 하염없이 폭설이 내려서 제 고향 와룡리가 세상과의 연락이 끊긴 채 고립되어 있었어요.
“아이구, 시원찮은 걸 달고 나와부렀네, 어자까잉?”
저를 박대하던 미동할머니의 메마른 목소리와 거친 손마디가 제 마음과 몸을 스쳐지나갈 때면 생채기가 나는 것처럼 따갑고 쓰라린 아픔이 느껴졌어요. 뭐 핏덩이같이 어린 것이 무슨 감정이 있겠느냐고 하지 마세요. 저는 참을 수 없는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는 걸 참으려다가 도저히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우렁차게 목청을 높여서 울어대기 시작했어요. 이 세상 어느 사내 녀석도 따라올 수 없는 그런 울음소리 말이에요.
그런데 어느 날인가는 폭설에도 덮이지 않는 마당의 우물물을 데워서 제 몸을 씻겨주시는 미동할머니의 손길이 한결 부드러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저는 미동할머니에 대한 첫인상을 지우고 애써 할머니를 좋아해보려고 했어요.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했던가요? 노력을 하니까 조금씩 미동할머니가 좋아지기 시작하는 거 있죠. 미동할머니의 거친 목소리도, 굵은 손마디도, 딱딱한 등도 다 좋아지더군요. 저는 미동할머니의 등에 업히는 걸 좋아해요.
하지만 아버지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제가 아들이 아니라고 어떻게 제 얼굴도 보지도 않고 집을 나가 노름판에 빠질 수 있단 말이에요? 저는 절대로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크면 꼭 아버지께 받은 상처를 되돌려주고 말거예요. 제가 어리다고 우습게보지 마세요. 저에게도 기쁨, 슬픔, 분노, 아픔 같은 감정이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아주세요. 어쩌면 제가 어리기 때문에 이런 감정들이 더 진하고 깊을 수 있어요. 이 모든 것이 제가 세상에서 처음 느껴보는 것들이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