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온 날, 저는 작은 방에서 생활하게 되었어요. 작은 방은 원래 미동할머니가 주무시는 곳인데, 아버지가 노름판에서 돌아오던 날부터 제가 할머니랑 함께 지내게 된 것이지요. 아마도 한 밤 중이었던 것 같아요. 세상이 온통 까맣고, 빛이라고는 큰방에 켜진 등잔불과 미동할머니가 들고 다니는 초롱불이 전부였던 밤이었지요.
“설아, 인자부터는 느그 아부지가 왔으니께 할매랑 같이 자자 잉?”
그러면서 저를 포대기에 싸가지고는 작은 방으로 옮겨 가는 것이에요. 저는 한밤중이라서 겨우 잠을 깨서는 엄마 젖을 빠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시 잠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흔들리는 느낌으로 제가 할머니 방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걸 알았던 거예요.
“이보씨요, 설이 아배. 이보씨요, 설이 아배! 일어나셨는기라오?”
아직 닭도 울지 않은 이른 새벽이었어요.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요.
“누구요?”
미동할머니가 먼저 일어나서 마당으로 나가보고는 하마터면 기절 할 뻔 했지 뭐예요.
“아이구, 이를 어짜면 좋갔어라오? 어저께 돈 잃은 사람이 어디서 노름 자금을 마련해갖고는 꼭두새벽에 찾아왔구만요. 술까지 잔뜩 먹구서는 하도 난리를 치는 바람에 지도 자다말고 깼어라오.”
“아이고 이를 어쩐 디야?”
마당에서 주막집 아주머니와 미동할머니가 주고받는 소리를 듣고는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서 나왔지요. 엄마는 제 울음소리를 듣고 저를 업고 나왔구요. 엄마는 발을 동동거리며 저만치 사라지는 아버지를 따라가다가 어둠 속에 우뚝 서 있었어요.
“그러니까 아예 처음부터 노름은 시작을 말아야 하는 데...... 따도 문제, 잃어도 문제. 집이고 논이고 다 바닥이 나야만 그만둔다는데 큰일이야, 큰일!”
엄마의 한숨소리가 어둠을 뚫고 새어나갔어요. 저는 그 와중에서도 산골마을의 새벽이 조금씩 잠을 깨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눈을 이리저리 굴려 보았지요. 안개 속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과 길가에 세워진 나무들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구불구불한 길과 길섶의 풀들이 함께 파릇파릇 눈을 뜨고, 먼 산도 하나씩 형체를 보여주기 시작했어요. 그러면 동쪽 하늘은 어느새 빨간 물감을 온통 칠해 놓고 제가 바라보고 있는 모든 것들은 그 물감으로 물들여 놓는 거예요.
“이러다 아침 늦겠다.”
엄마가 부산하게 부엌으로 들어가서 밥을 지을 때 저는 다시 미동할머니 등으로 옮겨져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아요. 상큼하고 싸한 공기를 마시며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도 바라보고, 강아지들이 꼬리를 치며 짖어대는 소리도 듣고, 나무줄기에서 벌레들이 꿈틀거리는 모습도 바라보지요. 그렇게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어느 새 빠알갛고 커다란 해가 떠오르기 시작해요. 저는 꼭 저 크고 빠알간 해를 제 방에다 하나 걸어두면 좋겠다는 꿈을 꾸곤 해요.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딱딱하게 굳어있던 할머니의 등도, 화난 것 같은 엄마의 얼굴 표정도, 무섭고 떨리던 제 마음도 참 따뜻해져 오거든요. 저는 할머니랑 엄마가 아침식사 하는 것을 보면서 가만히 누워서 놀아요. 그리고는 엄마의 달콤한 젖을 마음껏 빨아먹고는 한잠 곤하게 낮잠을 자지요.
“제깟 것이 어떻게 나를 이겨보겠다고 새벽같이 설치더니만 꼴좋게 되었구만이라오.”
한낮이 지난 것 같았어요. 아버지가 기분 좋은 갈짓 자 걸음으로 마당으로 성큼성큼 들어오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어요.
“엄니, 아주 깨끗하게 쓸어 버렸구만이라오. 그렇게 잃어싸더니만 우리 설이 얼굴을 봄서부터는 그냥 저절로 돈이 척척 굴러 온당게라오.”
아버지가 마루에 걸터앉아서는 저를 데려오라고 청하는 것이에요.
“그랴. 설이 안아 보구선 그만 노름에 손을 떼그라 잉?
미동할머니는 얼른 저를 안아서 아버지 품에 넘겨주었어요.
“아이고 복덩어리, 요것이 복덩어리여. 기가 막히게 이쁘구만 잉?”
아버지가 제 볼을 비벼대자 술 냄새가 팍하고 제 코로 밀려오는 거 있죠. 저는 그만 그 냄새가 너무나 역겨워서 몸부림을 쳤어요. 아버지가 저를 점점 더 세게 끌어안고는 제 얼굴을 막 비벼대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만 앙하고 울음을 터뜨렸지요.
“아이고 쬐끄만한 것이 저 이쁘다고 해도 모르고 그래 울어 싸냐? 아이고 나쁜 것!”
그 순간 저는 그만 정신이 번쩍 나가는 것 같았어요. 제 볼에 뜨거운 것이 “찰싹”하고 떨어졌기 때문이지요.
“아이고 이놈아, 왜 설이는 때리고 난리냐 잉?”
미동할머니가 저를 빼앗아가지고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어요.
“글씨, 이번에는 꼭 아들 터를 팔아야 할 것인디 우짤란가 모르것다.”
저를 등에 업은 미동할머니가 한숨을 푹 쉬면서 그러시는 거예요. 저는 그만 너무나 마음이 슬퍼서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어요.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돌고 세 바퀴 돌 때까지도 제 마음이 풀리지 않았어요. 아니 풀리기는커녕 울음소리가 작아질수록 제 가슴의 슬픔은 더 깊어지는 거예요. 목이 다 쇠어서 쉰 소리가 날 때까지 울다가울다가 겨우 잠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