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7장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풍요의 신으로 섬기는 북이스라엘 아합 왕에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 우상숭배의 죄악으로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을 것을 선포하게 하신다. 예언대로 큰 가뭄재앙이 임한다. 그러자 아합 왕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엘리야 선지자를 잡아 가두려고 한다.
엘리야 선지자는 그리 시냇가로 피해서 그곳의 물과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먹을 것으로 지내다가 가난한 사르밧 과부에게로 가서 조금밖에 남지 않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만든 떡으로 공궤 받는다. 가뭄이 그칠 때까지 밀가루도 기름도 떨어지지 않는다. 이는 모두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엘리야가 그대로 행했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돌보아 주신 것이다.
엘리야 선지자는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자 다시 살려내는 체험을 한다. 아마도 이것은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에게 앞으로 있을 갈멜산 대결에서 자신감을 가지라고 미리 선경험을 하게 하신 게 아닐까 싶다. 바알 선지자 450명에다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 단 한 사람의 대결이니 어찌 두렵지 않았겠는가? 그것도 나라의 왕인 아합과의 대결이니 아무리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라고 해도 혹시나 지면 바로 죽임을 당할 텐데 인간적으로 너무 무서웠을 것이다. 목숨을 건 대결이니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뭄 중에도 엘리야 선지자를 이리저리 보내시며 물과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는 것과 죽은 아이를 살려내는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나게 하셨을 것이다.
아합 왕은 우상숭배를 하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온 나라에 큰 가뭄 재앙이 임한다는 걸 경험하면서도 엘리자 선지자를 통해서 경고와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서도 전혀 깨닫지도 돌이키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 선지자는 삶의 순간순간 하나님을 경험하며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한다.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자신의 잘못으로 온 나라와 백성이 곤경에 처하게 하겠는가? 아니면 자신으로 인해 모두가 잘 살아가게 하겠는가? 선택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 높은 위치에서 큰 책임을 맡은 자일수록 그 상벌이 크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에까지도 명예냐 악명을 남기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은 구원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더욱 심각하다. 한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면 자기 혼자만 죽는 게 아니라 그에게 연결되어 있는 다른 사람까지도 함께 몰고 가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가 다른 사람을 살리면 함께 구원을 이루어 영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