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깊은 대장님과 둘이서 불암산행

불암산

by 서순오

자랑산에서 불암산을 간다 하기에 신청을 했다.

'불암산 가본 지가 언제런가?'

돌아보니 두 번 갔었다. 한 번은 토산에서 바위 좋아하는 리딩 대장님 따라서 무시무시한 영신바위 1코스로 장비도 없이 탄 적이 있었고, 한 번은 내가 안내산악회에서 100대 명산을 찍을 때, 우연히 함산 인연이 많았던 H대장님과 올랐었다.


"저 담주 월요일에 자랑산에서 불암산 가는데, 대장님 혹시 함산 가능하실까요? 얼굴 보면 좋을 것 같은 데요."

내가 불암산 근처에 사시는 H대장님에게 톡을 보내니 일이 있어서 오전 시간이 어려우시단다.

"오후 2시 이후에는 가능한 데요. 제가 빨리 일 마치고 초고속으로 올라가 보겠습니다."

그렇지만 자랑산 불암산 코스는 당고개역에서 출발해서 애기봉 오르고 별내역으로 하산하는 코스라서 H대장님과 함산은 어려울 듯하다.

'어떻게 하지?'

하루 정도 생각을 해본 후 톡을 보내본다.

"제가 이번 산행은 자랑산 취소하고 대장님이랑 오후 2시에 만나 함산 하면 어떨지요? 불암산이든 수락산이든 리딩해주시면 되고, 뒤풀이도 한 턱 쏘시고요. 괜찮으실까요?"

바로 답문이 온다. 가능하시단다.


이래서 오늘 산행은 어느 산 가는 줄도 모르고 집을 나선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후 4시부터 비가 온단다.

"우중 산행 준비를 하고 나가야겠군! 요즘 날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으니까 우중 산행도 나름 괜찮을 거야."

산행 당일 아침 일찍 날씨 예보를 보니 오후 3시부터 비가 올 거란다.

'비가 오긴 오려나 보네!'

우비와 롱스패츠, 여벌옷까지 배낭 속에 챙겨 넣는다. 아침에 굽고, 만든 수제 식빵 두 쪽과 수제 두유에 우유를 탄 음료를 500ml 병에 담는다.


오전 11시 30분 집을 출발한다. 버스가 20분 만에 온다. 버스 한번 환승해서 가고 있는데, 버스 시계가 11시에 멈춰 있다.

'약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한다고?'

사당역에 내려 전철로 갈아탄다. 집에서 상계역까지는 약 2시간 소요 예정이다. 그런데 사당역에서 전철을 타고 가면서 핸드폰 시계를 보니 딱 시간을 맞춰서 약속 장소에 도착을 하겠다.


날씨 예보를 보니 오후 6시 이후에 비가 온단다.

"역시나 날씨의 요정이 납시니까!"

나는 빙그레 웃으며 혼잣말을 한다. 그동안 내가 산행하는 날은 언제나 날씨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비 소식이 있다가도 비가 안 오고 날씨가 맑았다. 비가 올 때는 새벽이나 아침 일찍 비가 와서 도리어 날씨가 드높고 쾌청하고 구름도 뭉클뭉클 일어나 풍광이 그만이었다.


시간은 금방 간다.

"상계역 1번 출구 도착!"

대장님에게서 톡이 온다. 나는 전철에서 내려서 답문을 안 보내고 바로 내려간다. 약 2분 후 "하이!" 인사를 하며 대장님을 반갑게 만난다.

"생기가 넘치는데요!"

"아, 뭘요. 한 해 한 해 다른 걸요. 조금씩 기력이 달려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대장님 칭찬에 기분이 좋다.


걸어서 불암산 정암사 쪽 초입 오르는 길로 향한다. 윤동주의 시비 <자화상>을 읽어보고 눈에 담는다. 화장실을 들렀다 간다. 오르는 길은 급경사 빠른 길이란다. 이전에 왔을 때도 이 길로 올랐던 듯하다. 그런데 길은 조금 낯설다. 사람이 망각의 동물인 것이 이럴 때 보면 실감이 난다. 기록을 찾아보면 쉽게 알겠지만, 기록이 없다면 그나마 산을 오른 사실조차도 잊어버리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내가 열심히 기록을 남기는 이유랄까?


오르는 길 초입에 계곡 물소리가 경쾌하다. 비가 내려서 들리는 거란다.

"평소에는 물이 없어요."

계곡 주변으로 핀 하얀 꽃 누리장나무를 대장님이 사진을 찍어서 알려주신다. 엊그제 미나리아재비인가 했던 노란 꽃은 애기똥풀이란다. 줄기를 꺾어서 손가락으로 눌러보면 애기 똥물 같은 즙이 나온단다. 대장님이랑 함산 하면 식물과 나무 이름뿐만 아니라 산봉우리들과 마을 이름, 건물들도 잘 알려주신다. 혼자 가거나 무리 지어 갈 때는 대충 본다면, 대장님이랑 같이 가면 아주 찬찬히 꼼꼼하게 보면서 산행을 하게 되어 참 좋다.


무등산 서석대를 조금 닮은 바위에 누군가 '입석대'라고 써놓았다. 헬스기구들이 놓인 곳 바로 옆 정자에서 쉬어간다. 내가 싸간 것들을 내놓는다. 대장님이 깔개를 꺼내 놓으시기에 수제 식빵과 두유와 참외를 올려놓고 그 옆에 앉아서 먹는다.

"좋은 데요."

그런데 대장님은 점심을 바로 조금 전에 드시고 오셨단다.

"오전에 교육이 있어서요."

"그럼 너무 배불러서 이따 저녁 못 드시는 거 아니에요?"

맛있게 먹으면서도 뒤풀이 걱정이다.

일어서니 깔개 없이 정자에 앉은 대장님 엉덩이에 송홧가루가 묻어서 하얗다. 대장님은 손으로 대충 털고 가신다.

가파른 돌길, 데크길 한참 숨차게 오른다.


데크길 중간에 나무의자 쉼터가 있는데, 대장님은 처음 본다는 눈치다.

"이런 게 있었던가?"

"불암산을 수십 번 오르신 분이 이걸 처음 본다고요?"

관심을 안 두면 아무리 많이 지나쳐도 그런 법이다.

'사람은 아니 그런가? 수없이 많은 사람 중에 그대와 나, 우연히 함산 하는 것 같아도 그저 우연만은 아닌 것이다. 서로 눈여겨보았기에 함산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그리고 늘 찬찬하고 자상한 리딩에 고마운 마음이다.


한바탕 데크길 끝에 이제 암릉길이 나타난다. 기이한 바위들이 많다. 눈 코 입 귀, 사람 얼굴 모양인데 손가락을 코에 넣고 코딱지를 후비는 것 같아서 내가 붙여본 이름, 일명 '코딱지 바위', 왼쪽 옆 암릉으로 가면 거북의 목, 다리, 등의 온전한 모습이 보이는 '거북 바위', 자연이 빚어놓은 명 조각품이다.


암릉길은 오르기 쉽게 철말뚝과 철난간을 만들어 안전장치를 해놓았다. 암릉길 오르고 가파른 데크길이 나타난다. 올라서니까 풍광이 탁 트이면서 주변 산들과 마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햐! 멋지다!"

곧 거대한 암릉 위에 불암산 정상석이 서 있고 암릉 꼭대기에 태극기가 힘차게 휘날린다. 암릉 사이로 나무와 꽃들이 자라고 있다.

"생명력이 대단해요!"

"글쎄, 나무의 뿌리가 바위를 뚫어 쪼개진다잖아요. 이 암릉들도 그럴 날이 언젠가는 올 지도 모르겠네요."

암릉 사이로 자라서 꽃을 피운 병꽃과 암릉 사이로 길게 뿌리를 뻗어나간 소나무를 보며 한 마디씩 한다.


로프를 잡고 철막뚝을 밟고 어렵게 정상에 오르니 아슬아슬하여 간이 서늘하다. 오금도 저려 아래쪽은 내려다볼 수가 없다. 국기봉으로는 못 건너가고 위치표시지점을 나타내는 삼각점에 서서 국기봉이 나오게 기념사진을 남긴다. 무서워하는 표정을 지으라는데, 사진에는 안 담긴다. 대장님은 쉽게 국기봉으로 건너가시기에 사진을 찍어드린다.


다시 불암산 정상 돌비가 있는 곳으로 내려와서 풍경 조망을 한다. 북한산, 도봉산, 사패산. 수락산이 다 보인다. 대장님이 알려주시는 대로 바라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저곳을 다 나도 올랐었구나!'

"저 뒤쪽은 도봉구, 앞쪽은 노원구, 높은 빌딩은 창동역, 이쪽은 남양주, 저기는 화랑대 육사 쪽이고요."

사방팔방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날씨가 살짝 흐려서 저기 뒤에 예봉산은 안 보이네요. 며칠 전에 갔었거든요."

나도 예봉산, 적갑산 다 올라보았기에 위치를 가늠하며 짐작만 해본다.


데크길로 쭈르륵 단숨에 내려와서 널찍한 바위 위에 앉아서 또 잠시 쉬어간다. 대장님이 싸 오신 참외를 꺼내신다. 의자를 펼쳐서 앉고 바람이 차서 겉옷을 꺼내 입는다. 배가 부른 데도 참외를 몇 조각 먹는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이곳에서 미역국라면 소컵을 먹었었다.


불암산 정상 국기봉 태극기가 늠름하게 펄럭인다. 국기봉 오르는 데크길과 암릉과 나무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환상적이다. 산수화라는 제목이거나 불암산이라는 제목이거나 이 풍경도 꼭 문인화로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내가 그린다면 저 암릉들 사이에 소나무도 그리지만, 매화나 들국화나 뭐 그런 꽃들을 그려놓아도 좋으리라. 아니 오늘 본 팥배나무나 병꽃을 그려 넣으면 또 어떨지 싶다.


하산도 지난번에 내려왔던 길로 한다. 철난간 로프구간이 많은 길이다. 대장님이 스틱은 받아주셔서 로프 잡고 휘리릭 내려온다. 네다섯 번쯤 가파른 로프구간 지나면 길이 좋다. 물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물결무늬가 새겨진 '파도 바위' 지나 불암산의 전설(※원래는 금강산이었던 산이 남산이 되고 싶어서 남쪽으로 왔는데 벌써 남산이 있어서 그만 불암산이 되었단다.)이 적혀 있는 '불암정' 지나 아까 오르기 시작한 정암사 초입으로 내려온다.


약 5km, 3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대장님 혼자 오르면 약 1시간 30분 정도면 가능한 산행 거리라는데, 오늘은 나와 함께 해서 두 배의 시간이 소요되었으니 아주 느린 보폭이 된 셈이다. 자주 쉬어가고 설명도 들으면서 여유 있는 산행이었다. 날씨가 좋고 함산 한 이도 거의 1:1 리딩 맞춤산행이어서 내가 행운을 누린 산행이라고나 할까? 거기다가 배가 부른 데도 극구 봉평 메밀막국수까지 대접해주셔서 맛있게 먹고 왔다. 다음 기회에는 내가 맛난 음식으로 섬겨 드려야겠다.

함산한 대장님
수제 두유와 식빵, 참외 간식
코딱지 바위, 거북 바위에서
암릉 사이에서 자라는 꽃과 나무들
불암산 정상 돌비와 국기봉
불암산 정상 국기봉에서
불암산 정상부에서 주변 조망
불암산 정상부 병꽃 옆에서
불암산 정상 조망
파도 바위
불암산의 전설과 불암정
봉평메밀막구수로 뒤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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