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 80 운영위 모임
1년에 두 번 있는 이화 80 운영위 모임이 <바른고기 정육점>(서래마을 본점)에서 있다. 친구들은 대체로 서울에 살고 그것도 강남 지역에 살지만, 나는 서울이 아닌 수원에 살아서 집이 좀 먼 편이다. 그래서 약 1시간 30분 정도면 가능할 것 같은데 그보다 더 일찍 출발했다. 약속 시간은 낮 12시인데, 나는 거의 1시간이나 일찍 도작했다. 물론 나처럼 조금 먼 곳에 사는 이들도 있고, 더 먼 곳에 사는 이도 있긴 하다. <바른고기 정육점>은 11시 30분에 문을 열기에 안으로 들어가서 대기석에서 기다려야 했다.
"집이 먼 사람이 일찍 온다."
밖이 덥지만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서래마을 뒤쪽으로 올라가서 몽마르트르 공원을 산책했을 수도 있다. 서초서에서 일할 때, 점심때마다 자주 산책하던 곳이라 길을 잘 안다. 가끔은 퇴근 후 서래마을로 내려와서 대학 친구들을 만나 저녁도 먹고 차도 마셨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내가 서초 서울고 근처에 살았고, 승용차도 운행을 했기에 이용했던 식당이나 카페에 발레파킹을 하기도 해서 차로 이동하니까 금방 집에 돌아오곤 했다.
"지나간 추억은 아름답다."
내가 자주 과거를 곱씹어 보는 이유이다. 당시에는 서초서 내에서 조금 힘든 일도 있었지만, 자주 몽마르트 공원을 산책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집이 가까워서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었고, 조금 늦게 일어나는 날은 차를 가지고 다녔다.
그런데 수원으로 이사오고부터 차가 필요하지 않아 없앴다. 자주 타지 않고 세워두면서 매달 40~50만 원씩 유지비를 낼 필요가 없었다. 나는 걷는 걸 좋아하고, 수원 생활권은 대중교통도 잘 되어 있고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 아주 편리하다. 웬만한 곳은 거의 다 걸어 다닌다. 재래시장, 수원화성성곽길, 수원청소년문화공원, 영화관, 도서관 등 내가 주로 이용하는 곳은 모두 도보 20~30분 이내 거리이다. 병원도 대형. 중형, 소형이 다 도보 가능한 거리에 몇 군데가 있지만, 아직 병원에 갈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30여 분을 기다리니 여종업원이 우리 이화 80 예약실인 2층 방으로 안내한다. 정사각형 크기의 방인데 꽤나 크다. 테이블이 두 라인으로 길게 배치가 되어 있다. 테이블이 한 라인으로 길게 배열되어 있으면 더 좋겠다 싶었지만 오늘 참석인원이 17명이나 되니 좀 어려웠던 것이다. 맨 앞 가운데 자리는 회장 앉으라고 비워두고, 나는 문 옆 왼쪽 끝자리에 앉는다. 밖으로 들고나기가 쉽고 안쪽보다는 바깥 쪽이 더 좋아서이다.
조금 있으니 아주 멀리 부여 서천에서 온 병숙이가 반갑게 인사하며 들어온다.
"버스 타고 오면서 약속보다 늦게 오도록 시간 예매하기는 좀 뭐 하잖니? 30분 정도 빨리 떨어지게 예매했더니 조금 일찍 왔네."
"그래 그래. 먼 사람이 일찍 오는 거야."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반갑게 인사한다. 병숙이는 특별한 여행가이다. 세계 곳곳 안 가본 데가 없다. 그것도 거의 한두 달씩 차를 렌트해서 병숙이가 운전도 하고 다닌다고 한다. 여행 멤버는 그때그때 달라지지만 대체로 8명 정도란다. 우리 이화 80 친구들도 병숙이와 함께 여행하는 친구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아나운서 출신인 영주도 지난해 연말에 남아메리카 여행을 약 한 달 간 병숙이와 함께 다녀왔단다.
병숙이가 일찍 오다 보니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우리 대학 선배인 것을 알게 되었다. 81학번이라나? 그럼 나보다 몇 년이 빠르다. 하긴 나는 대학을 늦게 갔으니까. 회계를 맡고 있는 금주도 우리 대학 같은 과를 나왔단다. 여고 친구들이 만나면 대학 이야기는 잘 안 하는 편이라서 잘 몰랐다.
"아, 그래? 등잔 밑이 어두웠네."
약속 시간인 12시가 다 되어 가니까 친구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일어나서 반갑게 맞이하며 악수도 하고 포옹도 한다. 1월에 상반기 운영위 모임으로 보고, 4월에 봄소풍으로 서울숲에서, 5월 개교기념일에 보고, 7월에 하반기 운영위 모임으로 또 보아도 그저 반갑기만 하다.
근처 방배동에 산다는 회장 혜림이가 가족들과 함께 들어온다. 마침 오늘이 친정어머니 식사 대접하는 날이라서 어머니 모시고 남편과 둘째 아들과 함께 왔단다. 자리는 옆 방이어서 친구들이 가서 인사를 드린다. 가족이라 서로 많이 닮았다.
참석하기로 한 친구들 17명이 모두 모여서 회의 진행을 한다. 의사인 혜림 회장 인사말과 혜정 목사 기도에 이어 대학교수인 총무 은미의 행사 보고, 금주 회계의 회계 보고, 숲치유사 힐링 담당 경희의 가을소풍 안내 등이다.
오늘 의논할 내용은 여러 가지이다. 가을소풍 점심과 회비, 크리스마스 콘서트 연습 일정, 연말 송년회 장소와 연회비 건 등이다. 가을 소풍은 용산가족공원으로 하고, 하프 연주자 지혜가 점심식사를 섬겨준단다. 크리스마스 콘서트는 9월부터 매주 화요일에 연습해서 11월 둘째 주에 서게 된단다. 연말 송년회는 12월 중순 이전 토요일에 하고 장소는 추후 정하기로 일사불란하게 회의가 진행된다.
곧 맛있는 불고기 정식이 나와서 잠시 회의 중단을 하고 식사를 하기로 한다. 부드러운 불고기가 맛도 좋은데 양이 꽤나 많다. 밑반찬들도 다 맛이 있다. 돌솥밥, 냉면(비빔, 물) 등이 각자에게 나오는데, 나는 시원한 물냉면을 주문한다. 그런데 고기와 돌솥밥은 맛이 있는데, 냉면이 좀 별로이다. 육수도 좀 늑륵하고, 면이 다 풀어져서는 맛이 없다. 앞에 앉은 병숙이가 비냉을 시켰기에 물어보니 그것도 별로란다 돌솥밥은 혜정이가 시켰기에 조금 덜어서 먹어봤는데 밥도 꼬들꼬들하고 누룽지도 맛있다. 고기를 맛있게 먹었는데, 냉면이 맛이 없어서 입맛을 조금 버렸다는 생각이다.
다 먹고 다른 안건들 추천받아 의논한다. 크리스마스 콘서트 합창 연습은 화요일 저녁뿐만 아니라 오전에도 하면 좋겠다는 의견과 연습 장소는 알아보기로 했다. 1년에 두 번 하는 운영위 모임은 지금처럼 상반기, 하반기 초인 1월과 7월에 하는 게 좋겠다는 것과 연회비는 연말 송년회 때 받지 말고 연초에 받자는 것도 정했다. 동창회가 돈창회가 되면 안 되기에 조심스럽게 의논을 했다.
그런데 나는 왠지 예전에 대학 동창 친구 누군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나이 들어서 적어도 동창회는 갈 수 있게 살았으면 잘 산 것이다."
건강도 시간도 돈도 있어야 동창회에 참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프면 아무 데도 갈 수 없고, 시간도 없이 바쁘면 또 안 되고, 그리 큰돈은 아니지만 회비 등도 낼 수 있는 형편이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바른고기 정육점>(서래마을 본점)에서 점심식사와 회의를 마치고 후식 모나카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음, 정말 맛있다!"
한 입 베어물 때마다 안에 든 팥과 아이스크림과 겉의 과자가 함께 씹히는 게 별미이다. 천천히 모나카 아이스크림을 음미하며 먹는다.
일부 친구들은 다른 일정이 있어서 먼저 돌아가고, 남은 친구들은 자동차를 타고 근처 <민트로 카페>로 이동한다. 친구들이 거의 모두 차를 가지고 왔다. 병숙이는 대전터미널에 차를 세워두고 시외버스 타고 왔고, 나는 차를 없애서 대중교통으로 왔고, 혜림이는 남편이 차를 운행하고 왔기에 어머니 모시고 갈 때 차를 가져갔다. 그래서 우리 셋은 다른 친구들 차에 한 사람씩 나누어 타고 이동한다. <민트로 카페>는 금주 친구가 아는 분이 운영하는 곳이라서 브레이크 타임 시간인 데도 우리를 받아주었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꽃과 하얀 웨딩드레스를 그린 유화 그림들이 걸린 카페가 완전 동화 같다. 다들 아이스커피나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데, 나는 카페인이 좀 안 맞아서 오후에 마시면 저녁에 잠이 안 오기에 인절미스무디로 주문한다. 건물 주인이 직접 그림도 그리고 카페 운영도 한단다. 화가 카페주인인 셈이다. 카페 분위기가 좋아서 내친김에 주인에게 물어보고 올해 이화 80 연말 송년회 장소를 이곳에서 하기로 정한다. 끝없는 이야기에 오후 4시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여고 친구들과 함께 하는 즐거운 시간이다.
우리가 50주년이 되는 해에는 여행도 가자고 그런다. 국내든 해외든 친구들과 함께 갈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짧게 1박 2일도 좋고, 2박 3일이나 3박 4일, 아니면 좀 더 길게 가도 괜찮겠다. 여고 친구들과 함께라면 그 어디인들 즐겁지 않겠는가!
서울보다는 한가로운 수원에 살면서 여고 대학 동창 모임이나 있어야 서울 나들이를 하는데, 가끔 오는 서울은 내게 낯설다. 특히나 요즘 같은 폭염에 서울 거리를 잠시나마 걸어 다니는 것은 무척 괴롭다. 건물과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열기에 숨쉬기도 곤란하다. 앞으로 기후위기는 얼마나 삶의 질을 떨어뜨릴지 걱정이다. 우리 세대야 인생을 거의 반 이상 살았기에 그럭저럭 지낸다 해도 우리 후세대는 어찌하랴! 지금도 환경 시계는 밤 11시를 벌써 지났다고 하는데,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 살면서도 한여름 나기가 수월치 않은 것은 우리 모두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친구들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은미가 사당역까지 차를 태워 준다기에 혜림이와 내가 함께 탔다. 차가 무지 막힌다. 약 30여 분 걸려서 중간에 집 근처라며 혜림이가 내리고, 아직도 사당까지는 1시간이 걸린단다.
"세상에나! 그렇게나 차가 막힌다고?"
버스 전용차로로는 두세 정류장이면 갈 거리라서 나는 내려서 버스로 갈아탄다. 서울에서 차 막히는 건 보통 있는 일이다.
수원은 차 막히는 일은 드물다. 물론 서울로의 출퇴근 시간이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주로 낮에 움직이는 나는 교통지옥은 안 겪는다. 대체로 30~40분 거리까지는 걸어 다니기도 해서 더 그렇다.
"삶의 질이 뭐 따로 있겠는가? 내가 편리하고 좋으면 된 거 아닌가?"
노후에 수원으로 이사 와서 나는 감사하다. 가는 데도 돌아오는 데도 친구들보다는 시간이 좀 더 걸리기는 했지만, 여유 있고 숨통이 트이는 수원이 참 좋다. 부여 서천에 사는 병숙이 역시 자기 사는 곳 자랑이 대단하다. 영어를 가르치는 군인이었다가 은퇴하고 도서관에서 영어 웃음치료를 하며 용돈을 번다는 희정이도 용인에 살아서 시간이 더 걸리지만 나와 같은 생각이리라.
어디에 살든지 우리가 같은 시기에 함께 여고를 다녔다는 사실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다. 동창회는 그래서 좋다. 십 대의 추억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소중한 만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