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는 참 잘 생기신 분이다. 키가 훤칠하게 크고(178cm), 날씬하고, 이목구비가 선연하시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 4회 졸업생이시다. 아버지가 다닌 학교는 그것이 전부이다.(학교가 몇 년 전에 폐교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배우지도 않은 창 가락을 아주 잘 부르셨다. 술을 한 잔 거나하게 마시고 나면 마루에 앉아 심청전, 춘향전, 흥부전의 한 대목을 구성지게 부르시곤 했다. 저녁놀이 지는 때에 아버지가 부르시는 창 가락이 마당을 넘어 동네골목을 돌아 하늘 높이 울려 퍼질 때면 나는 왠지 가슴이 홍건 해지곤 했다.
아버지는 글씨도 잘 쓰셨다. 필체가 시원시원하고 정자체와 흘림체를 때에 맞추어서 잘 쓰셨다. 학교에서 무슨 조사서 같은 것을 해오라고 할 때에도 정성스럽게 글씨를 써서 보내주셨다. 그 당시 우리 집은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냈는데 제사상 앞에 지방은 아버지가 멋진 붓글씨로 써서 붙이셨다.
그런 아버지가 언제부터 술독에 노름수렁에 빠져 살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아버지를 아주 많이 미워했다. 청소년기에는 거의 죽이고 싶을 만큼 아버지가 싫었다.
아버지는 맨 정신인 날보다 술에 취한 날이 더 많았다. 새벽 5시 정도가 되면 내가 자고 있는 방 안으로 소주병 2개를 들고 들어온다. 방문을 반쯤 열어젖히고는 내 머리맡에 앉아서 여자 배워봐야 소용없다고,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며 남편 잘 만나면 끝이라고, 인제는 제발 학교 그만두고 공장 가서 돈을 벌어서 아버지한테 용돈 좀 달라고, 잔소리를 해댔다. 소주병을 통째로 들고 마시면서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주사가 끝이 없다.
나는 아버지의 그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그냥 아주 일찍 학교에 간다. 도시락도 안 싸고 마당 수돗가에서 얼굴만 겨우 씻고 주섬주섬 책가방을 챙겨서 나와버린다.
그렇게 멋진 외모를 타고난 아버지는 평생 일도 안 하고 살다가 회갑도 못 넘기고 돌아가셨다. 어쩌다 엄마가 일자리를 알아봐서 소개를 하면 내가 그런 일 할 사람 같냐며 절대 일하러 가지 않았다. 옛날로 치면 그야말로 한량 중 한량이었다.
그렇지만 내게는 아버지에 대한 고운 추억이 몇 가지 있다. 바로 초등학교 시절, 학교 가는 길에 다리가 없는 강을 건너갈 때이다. 한겨울에는 발이 시려서 도무지 건너갈 수가 없다. 또 장마가 져서 물이 덜 빠졌을 때 어른 허리춤까지 강물이 불어있을 때가 있다. 그릴 때 아버지는 겨울에는 장화를 신고, 장마철에는 바지를 벗고 속옷만 입은 채, 우리들을 한 사람씩 안거나 업거나 목말을 태워서 건네주셨다.
아예 장마철에 강물이 불어 사람 키를 넘을 정도가 되면 우리 동네 아이들은 거의 다 학교에 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가 자전거에 태우고 다리가 있는 쪽으로 돌고 돌아서 학교에 데려다주곤 하셨다. 학교에 도착하면 거의 수업이 다 마칠 시간이 다 되었지만, 그것도 출석은 출석인지라 지각으로 쳐주어서 아버지 덕분에 나는 6년 정근상을 받았다. 더군다나 나는 아버지의 지극 정성에 공부도 열심히 했기 때문에 졸업할 때는 전교 1등 상인 전라남도교육감상도 받았다.
아버지와 자전거를 타던 추억을 그림으로 그려보았다. 강가에는 꽃들이 피어있고 논밭에는 곡식들도 자란다. 동쪽에서 해가 떠올라서 하늘을 덮을 때 집을 출발해서 한 낮이 되어야 학교에 도착했기에 거의 서너 시간은 자전거를 탔던 것 같다. 자전거 뒤에 앉아 아버지 허리를 꽉 붙잡고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가던 길이다. 아버지는 페달을 힘차게 밟으면서 내가 하는 얘기를 잘 들어주셨다. 가끔은 맞장구도 쳐주셨다. 아버지와 내가 호흡이 척척 맞아 떨어지던 시간이다.
좋은 추억을 꺼내보니 더 어린 유년시절 아버지와 꽁꽁 언 강에 가서 얼음낚시를 하던 일들도 건져 올려진다. 아버지가 강에서 잡은 물고기로 즉석에서 끓여주시던 매운탕 맛도 잊을 수가 없다. 썰매도 직접 만들어서 논에서 태워주시고 대나무를 깎아 방패연, 가오리연도 만들어서 들판에서 연을 날려 주셨다. 이런 추억들도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던 날, 그날도 엄마가 지어 주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노인정에 갔다 오셨다. 아버지가 걷는 걸 조금 힘들어해서 셋째 여동생이 아침에 차로 모셔다 드리고 저녁에 또 차로 태워서 집으로 모셔왔다.(참, 우리 아버지는 그당시 폐렴에 당뇨합병증이 와서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절대 병원에서는 죽지 않겠다고 해서 퇴원해서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숟가락으로 떠넣어 주시는 음식을 누워서 받아먹다가 기도가 막혀 한마디 유언도 못 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말씀을 못 하시자 바로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잘못한 거 모두 다 예수님께 고백하고 용서받고 훨훨 천국으로 가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두 시간 동안 하염없이 눈물만 주르륵 흘리셨다. 오른쪽으로 눕혀드리면 오른쪽 눈가에서, 왼쪽으로 눕혀드리면 왼쪽 눈가에서, 눈물이 흐르고 흘러서 베개를 흠뻑 적시었다.
예수님을 영접하시라고 얘기하고 기도해 드리자 아버지는 양쪽 입꼬리를 올리며 활짝 웃으시고 임종하셨다.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은 마치 어린아이 처럼 천진하고 평화로운 모습이셨다. 이담에 천국에 가면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그때에는 정답게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늘 웃고 지낼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