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선유천 국기봉
어제까지만 해도 비소식은 없었는데,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일기예보를 보니 오전 11시까지, 오후 5시부터 서울에 비가 온단다. 우리가 오르기로 한 사당역에서 관악산은 서울에 해당하니까 그곳도 비가 온다는 이야기이다.
"어? 우비를 안 챙겼네. 배낭 커버는 있고 양산도 가져왔으니까 뭐!"
오늘 관악산 산행은 지난주 함산한 남산우님 리딩에 나와 여산우님 한 명 참석, 모두 세 명이다.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낫지."
오손도손 즐거운 산행이 되겠다.
새벽 5시 30분에 깨서 집에서 제빵기로 만든 식빵에 속재료 만들어 넣고 샌드위치를 완성해서 반쪽씩 잘라 개별포장해서 3개, 계란 삶아 3개, 자두 3개 챙기고, 포카리스웨트 음료와 우롱차를 시원하게 얼음과 함께 물병과 보냉병에 넣는다. 울 남편 하루 종일 먹을 김밥과 소고기가지볶음 만들고, 샌드위치와 삶은 계란과 감자는 몇 개씩 남겨두고 빨래까지 해서 널어놓는다. 여벌옷 챙기고 샤워하고는 집을 나선다.
오전 10시 30분 시간을 맞추어 사당역 소공원에 도착하니 산우님 둘이서 의자에 앉아 기다리다가 일어서며 반갑게 맞아주신다. 악수를 하고 잠시 나도 의자에 앉는다.
"알아서 해주세요. 연주대는 안 가도 돼요."
"그늘길로 살방살방 걸으면 좋아요."
오늘의 리딩 남산우님이 산행코스를 물어보기에 둘이서 한 마디씩 한다.
비가 내릴 듯 말 듯하여 배낭 커버는 안 씌우고 그냥 물만 한 모금씩 마시고 출발한다. 날씨가 흐리고 온도도 제법 낮아져서 한여름 폭염과는 다르게 한결 시원하다.
차가 다니는 대로 옆길로 가다 보니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이 보인다. 지도상으로는 자주 보던 곳인데, 늘 상점들 사이 중간길로만 다녀서 보지 못했던 곳이라 사진에 담는다.
'언젠가 저길 한 번 들어가서 관람해 보리라.'
곧 숲길로 들어서는데 초입에 하양 보라 무궁화가 활짝 피었다. 우리나라꽃이다. 꽃이 그리 예쁘다고 생각은 안 하지만 고상한 꽃이다. 무궁화를 보면 꼭 태극기를 보는 것처럼 애국심이 생긴다. 불두화 하얀 꽃들이 여기저기 탐스럽게 피어있다. 주황빛 능소화도 흐드러지게 피었다. 조금 더 오르니 누리장나무, 금계국, 며느리밥풀꽃도 예쁘게 피었다.
"관악산에 꽃들이 먼저 반겨주네!"
꽃은 제 자리에 가만히 서서 한껏 꽃을 피워 우리 모두의 기분을 좋게 해 준다.
"사람도 그저 그 자리에 있다는 존재감만으로 최고의 기쁨을 주면 얼마나 좋을까?"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어서 배낭 커버를 씌우고, 스틱을 펴서 짚고 걷는다. 처음 가보는 숲길인데 완전 그늘길에 걷기가 아주 좋다. 땀은 조금씩 나지만 쾌적하다.
"산행 날짜 참 잘 잡았다!"
관악산은 돌이 많은 산에 속하는데, 가파른 길을 택해서 오르니 돌길이 꽤 있다. 스틱을 짚으며 무릎과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게 조심조심 걷는다.
남산우님이 조망이 좋은 곳을 여기저기 찾아가며 산행 안내를 해준다. 제일 먼저 선유천 국기봉을 간다. 암릉이 많은 곳인데 끝부분에 태극기가 꽂혀있다. 검정 우산을 쓰고 있는 남자 하나가 국기봉 옆에 앉아 있다가 우리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자리를 옆으로 비켜준다. 셋이서 한 컷 찍으면 좋겠는데 워낙 조용히 있어서 부탁을 하긴 좀 뭐 하다. 각각 개인 사진을 찍고 방울토마토와 오이 등을 먹으며 암릉 위에서 쉰다. 그 남자가 일어서서 내려간다.
조금 있으니까 젊은이 둘이 국기봉 암릉 위로 올라오긴 했는데, 국기봉이 있는 우리 쪽까지는 안 올 생각인 모양이다.
"저기요. 이리로 올라오세요. 저희들 사진도 좀 찍어주시고요."
마지못해 한 사람만 올라와서 사진을 여러 장 찍어준다.
"고마워요."
그리고는 방울토마토와 에너지바를 주겠다는 데도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며 그냥 내려간다. 보기에는 키도 크고 보통 체구인데 자기 몸무게까지 이야기하며 살이 쪘다고 하니 의아해진다.
국기봉에서 두루 풍경 조망을 한다. 관악산을 예닐곱 번 올랐지만 이곳은 한 번도 안 오른 곳이다. 사방팔방이 탁 트여서 연주대 쪽도 보이고, 우뚝 솟은 봉우리들과 초록숲과 기괴한 암릉의 조화가 신비롭기만 하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서울 시내의 아파트들도 어우러져 있으니 장관이다. 자연의 솜씨가 놀랍기만 하다. 국기봉에서는 동영상도 찍어본다.
다른 암릉 조망터들도 어디가 어디인지 잘 분간은 안 가지만, 남산우님 설명을 들으면서 감상을 한다. 고개를 끄덕끄덕 알겠다는 표시를 한다. 관악산이 참 아름답다 여긴다. 정상을 밟느라 바쁘게 걷기만 하는 산행이 아니라 마치 미술작품을 감상하듯이 천천히 음미하며 산행을 하니 속살을 들여다보는 듯 관악산이 내게로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엊그제 비가 조금 왔기에 혹시 관악산 계곡에 물이 있을까 싶어서 계곡 쪽으로 간다. 그곳에서 점심도 먹고 물놀이도 하면 금상첨화일 듯해서이다. 아, 그런데 관악산 계곡에 물이 없다. 딱 한 군데 병아리 눈물만큼 물이 고여 있다. 남산우님이 배낭을 내려놓고 계곡 아래쪽을 살피러 간다. 한참 내려갔다 오면서 물이 없단다.
"그냥 여기서 점심 먹고 가죠!"
"날이 시원해서 굳이 물놀이 안 해도 될 거 같은 데요."
돗자리를 펴고 배낭에서 싸 온 음식들을 꺼낸다. 남산우님은 소주와 논알코올캔 2개 , 커다란 복숭아 2개, 딸이 구웠다는 기다란 바게트 빵, 자두, 여산우님은 밥, 잡채, 멸치볶음, 쑥떡 3개, 방울토마토, 오이를 꺼내고, 나도 샌드위치, 삶은 계란, 자두를 각각 3개씩 꺼낸다. 숲 속 계곡의 점심 식탁이 풍성하다. 여산우님과 나는 술을 안 마신다고 논알코올 캔을 한 개씩 주어서 먹어보니 맛은 맥주 맛인데, 술기운은 없다. 시원해서 해갈을 한다.
점심 먹고는 세 사람이 앉아서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아라비안나이트가 따로 없다. 남산우님을 시작으로 여산우님에 이어서 나까지 풀고 풀어도 끝이 안 나는 이야기가 때로는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때로는 안심이 되기도 한다. 시간이 언제 그렇게 흘러갔을까? 베스트데이가 두 시간을 훌쩍 넘겼다. 오후 1시 10분에 자리를 잡았는데 3시 30분이 되어서야 일어났으니 말이다.
내려간 길로 다시 올라오면서 암릉 조망터에서 파이프능선을 조망한다. 파이프능선 거길 언젠가 타 본다고 하는데,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나는 위험구간 한 군데 있어서 다시 안 간다고 도리질을 친다. 암벽도 꽤 타봤다는 남산우님이 로프 걸어주면 괜찮다고 하니까 여산우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거북이를 꼭 닮은 거북바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데크 전망대에서 두루 조망을 한다. 날이 흐려 희미하게 보이지만 북한산도 보이는 장소이다. 지나온 가파른 나무 계단. 철 계단이 아찔하게 보인다. 걸을 때는 그다지 힘들지 않게 한 발 한 발 내려왔는데, 되돌아보니 참 대단하다 싶다.
"우리가 저길 내려왔단 말이야?"
"관악산에 계단이 이다지도 많았단 말인가?"
새삼스럽기도 하다. 산을 몇 번 오르고는 산을 안다고 말하면 안 된다. 관악산도 딱 그 짝이다. 전혀 새로운 관악산을 남산우님 덕분에 걷고 누리고 왔다. 오늘 리딩을 위해서 지난주에 홀로 답사 산행을 했었단다. 단 한두 사람 리딩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남산우님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뒤풀이는 수원역 연탄불고기집으로 와서 시원한 물냉면에 묵사발, 산 낙지 등으로 간단하게 한다. 젊은이들이 많은 곳인데 맛은 그저 그랬고 값은 저렴한 편이다. 점심 먹은 배가 안 꺼져서 가볍게 먹는다고 했는 데도 배가 불러서 터질 지경이다. 실컷 운동하고 뒤풀이를 해서 운동한 살이 도로 붙는 게 아닌가 싶지만 먹는 것 역시 좋으니 어찌하랴! 참으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함산 한 두 산우님에게 감사하다. 자주 함산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