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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 뚝뚝 흐르는 정겨운 수리산 단풍 산행

수리산 둘레길 단풍 산행

by 서순오

정겨운 산악회 밴드 가입을 하고 첫 산행을 했다. 가보니 그야말로 이름 그 자체이다. 산우님들이 정이 뚝뚝 흘러넘친다. 남산우님들은 내 또래인지 젊은지 잘 구분이 안 되지만 여산우님들은 나보다 훨씬 젊은 분들이 많고 섬김 정신이 투철하다. 사진 봉사에 점심식사도 아주 푸짐하게 싸 온다. 어떤 여산우님은 정겨산 산우님들 모두가 다 먹어도 괜찮을 만큼의 분량을 싸와서는 남산우님 가벼운 배낭에 대신 넣어달라고 한다. 산행 강도도 적당해서 천천히 가고 자주 쉬어가고 산행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나는 모처럼 만에 한 바탕 두 바탕 크게 웃으면서 즐거운 산행을 하였다.


요즘 나는 집결지가 가까운 곳, 산행 강도가 조금 느슨한 곳을 찾고 있는 중이다. 산행은 계속하고 싶고, 넘 힘든 코스는 안 타고 싶고, 또 멀리까지 가는 것도 힘에 버거워서이다.


그런데 한 번은 수원이 집결지인 어느 산악회 밴드에 가입했다가 강퇴를 당했다.

'세상에나! 내가 산악회 밴드에서 강퇴를 다 당하다니 무슨 해로운 짓을 했단 말인가?'

산악회 회장 포함 6명이 한 번 광교산 산행을 함께 했었, 거기서 만난 산우님 두 분(여산우님 하나, 남산우님 하나)과 셋이서 몇 번 더 즐겁게 산행을 했다. 그 산악회는 어차피 매월 한 번만 정기산행을 하고 거의 산행을 안 하는 편이기에 나는 1주1산은 꼭 하는 지라 비어 있는 시간에는 어떻게든 산행을 한다. 그래서 내가 기존에 가입한 산악회에서 산행이 있을 때 두 분 함산 했던 산우님한테 같이 가겠느냐고 물어봤고 두세 번 정도 함산을 했다. 뭐 그래서 문제가 되었다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가 생겼다. 함산 했던 셋이서 사진을 주고받으면서 톡방을 따로 만들었는데, 너무 자주 톡이 온다. 특히나 세 살 아래라고 나보고 '누님'이라 부르는 남산우님한테는 개인톡까지 온다.

"점심 잘 먹었느냐?"

"산행 중" 또는 "운동 중"

이런 톡이다.


나는 지금까지 산행하면서 개인톡 하는 것은 사진 주고 받을 때뿐이고, 그 후로는 전혀 관계를 안 하는 사람이다. 물론 리딩하는 산행대장님들과는 편의상 산행 안전을 위해 공적인 톡을 할 때도 있긴 하다. 그런데 이 톡이라는 게 심지어는 주일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도 온다. 몇 번 만난 사이에 이런 친밀감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세 번째로는 이 남산우님 은근슬쩍 스킨십이 가볍다. 여름엔 짧은 팔을 입어서 맨살인데도 뒤에서 따라오면서 내 팔뚝을 잡아 끈다.

"같이 가자든가 할 말이 있으면 말로 해도 될 일을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사실 나는 산행 중 그 누구라도 쉽게 스킨 십을 하는 사람은 거리를 두는 편이다. 남녀가 유별한데 스킨십이라니, 말도 안 된다.


나와 몇 번 함산 했던 남산우님, 여산우님, 내가 찍은 사진을 보니 물놀이 모습이 좀 아니다. 여름산행에서 계곡 물놀이를 할 때인데 둘이서 속에서 누운 자세로 손을 꼭 잡고 아예 팔을 어깨까지 포개고 비벼대는 모양새이다.

"이런 거 괜찮으냐?"

내가 물으니 여산우님 하는 말이

"동생인데 뭐!"

그런다.


네 번째로 내가 기분이 좀 그런 경우가 있었다. 산행 후 귀갓길에 사당역에서 수원역까지 오는데 버스 한 번에 올 수 있는 것을 둘이서만 따로 지하철을 타고 가겠단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버스를 타고 왔다. 집에 도착하니까 그 남산우님이 나한테 개인톡을 보냈다. 나보다 나이가 한 살 많은 그 여산우님을 바래다주고 지금 집에 가는 중이란다. 두 사람 이야기를 굳이 나에게 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내가 둘 사이에 끼일 필요도 없다. 또 나는 쉽게 스킨십하는 사람은 내 취향이 아니기에 그냥 그 밴드를 탈퇴해야겠다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약해 놓은 12월과 1월 산행을 취소한다고 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바로 밴드 회장이 나를 말도 없이 강퇴를 시킨 것이다.

'산악회가 뭐 한둘인가?'

그렇잖아도 탈퇴하려던 참인데 고맙다고 톡을 보냈다.


내가 왜 정겨운 산악회 첫 산행을 하고는 이런 말을 먼저 꺼내는지 모르겠다. 너무 정겨워서 정이 들까 봐서이다. 후훗! 너무 친해지다 보면 항상 말썽이 생긴다. 어느 모임이든지 예전부터 해오던 오래된 것이 아니라면 적당한 거리 유지가 필요하다.

"우리 사이 가깝고도 먼 사이!"

그게 딱 좋다. 서로가 예의를 지켜야 오래간다.


정겨산 수리산 둘레길 단풍산행은 총 18명이 참석을 하였다. 명학역 1번 출구에서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어떤 산우님 두 분이 거의 30여 분을 늦게 온다. 지하철을 거꾸로 탔단다. 나는 첫 산행이라 시간을 아주 여유 있게 나와서 9시 30분에 도착을 했는데 자그마치 1시간을 기다린 셈이다.

'이렇게 기다려 주는 산악회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동안의 경험에서 보면 그렇다. 이런 점에서도 인정이 넘치는 정겨운 산악회이다.


수리천약수터 정자에서 서로 인사하고 준비운동을 한 후 산행을 시작한다. 자랑산에서는 바로 이정표를 지나 오른쪽 산길로 올라가는데, 정겨산은 왼쪽 철조망을 따라 가파르게 올라간다. 오름길 한참 이어진다. 결국 두 길은 만나게 되어 있다.

'수리산 둘레길이 아닌가?'

자랑산에서 오면 늘 밥을 먹던 밥터 자리를 지나간다. 그때부터는 완만한 길이라 걷기가 좋다.


그런데 가다가 아까 늦게 온 여산우님 중 한 분이 신발 밑창이 다 떨어져 나가려고 한단다. 오랫동안 안 신고 두었던 신발이란다. 나도 그런 적이 있기에 오래된 신발을 미련 없이 다 내다 버렸다. 아무리 새 신발이라도 안 신고 오래 두면 접착제 부분에 곰팡이가 슬어서 그렇게 된다고 한다.


그 산우님 신발을 오 대장님이 어떻게 수리를 했는데 회장님은 '그 신발 신고 산행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다'며 그만 내려가시란다. 결국 병목안시민공원 돌탑 있는 데서 함께 온 세 분이 같이 내려간다. 하긴 앞으로 세 개의 전망대를 오르려면, 가파른 길을 세 번 오르내려야 하고, 낙엽도 많아서 릿지가 안 되는 신발은 위험할 수도 있다. 나는 착지가 잘 되는 등산화인 데도 낙엽 밑에 돌이 있거나 나무뿌리가 있는 곳에서는 꽤나 미끄럽다.


수리산은 단풍나무는 별로 없고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같은 키가 크고 잎이 넓은 나무들이 많다. 그래서 산이 온통 갈빛이다. 단풍이 그리 곱지는 않다. 요즘 가을이 짧아 제대로 된 단풍 보기가 어렵다.

"회장님, 단풍철에는 단풍 고운 데로 가야죠. 지난번에 내장산 다녀왔는데 정말 예쁘더라고요."

어느 여산우님이 사진을 찍어온 단풍나무를 보여주면서 앙탈을 한다. 그렇지만 나는 반대이다.

'그런 곳은 사람이 너무 많고, 또 산행도 아니고, 그저 절 앞 단풍거리를 조금 걸을 뿐인 걸요.'

나는 속으로 한 마디 하며 만족을 한다.

'사람이 거의 없고 우리만 있는 이곳 수리산 둘레길이 최고인 걸요!'

아닌 게 아니라 다들 단풍을 보러 갔는지 주말인데도 수리산에는 우리 팀뿐이다.


제1,2,3 전망대를 차례로 오른다. 가파른 통나무 계단과 나무 계단, 돌길, 데크길 적당하게 오르내린다. 처음에 이 길을 걸을 때는 투덜거렸다.

"이게 뭐 둘레길이야? 이 정도 난이도면 차라리 조망 좋은 관모봉과 태을봉을 오르고 말지."

그렇지만 돌 많이 없고 그래도 흙길이 대부분인 이 길이 내 몸과 수준에는 딱 맞는다며 고맙게 여긴다.


제3전망대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조 운영위원장 여산우님은 통 크고 손 큰 여자이다.

"저걸 언제 다 만들었을까?"

샌드위치와 케일 싼 밥과 모시떡과 계란말이까지 온 산우님들이 다 먹을 만큼 많은 음식을 싸 왔다. 산행을 하다 보면, 산우님들 중에는 아무것도 안 들고 오는 이들도 있지만, 저마다 한두 가지씩 가져온 음식을 다 펼쳐놓고 먹는 재미가 있다. 또 이렇게 자신이 가진 솜씨로 산우님들 섬기는 맛에 사는 이들도 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함께 하는 산행이 그래서 좋다.


가파른 데크길 내달려 수리산 성지 쪽으로 하산을 하니 수리산 계곡길에 단풍이 더 곱다. 단풍나무는 불타는 빨간빛을 내며 최상의 순도로 빛나고, 은행나무도 노랗게 물들어 잎을 수북이 떨어뜨려서 명 풍경을 자아낸다. 양손으로 낙엽을 한움큼 집어서 흩뿌려보며 인생컷을 남겨본다.


병목안시민공원 근처 <고향곤드레밥>에서 곤드레밥, 감자전, 도토리묵 등으로 뒤풀이를 하고, 건강 백세행복길을 걷는다. 이곳도 단풍이 곱다.


산에서는 피톤치드 듬뿍 마시고, 인정도 가슴 가득 담고, 예쁜 풍경도 오감으로 느끼며 산행하는 기쁨! 우리가 함께라서 더 배가 된다. 정겨운 산악회 첫 산행이 이토록 푸짐했으니 갈수록 더 좋은 산행이 되리라 믿어본다. 푸근하면서도 카리스마가 있는 최 회장님, 맘씨 좋은 유 총무님, 푸짐한 음식 만들어오신 조 운영위원님, 같은 고향 출신이라고 반겨주신 오 대장님, 함산 한 산우님들 모두 모두 감사하다. 나중 또 멋진 산길에서 자주 만나길 기대한다.

수리천 약수터 정자에서 서로 인사하고 준비운동을 한다.
처음엔 오름길이다가 곧 살방살방 걷기 좋은 길이 나온다.
병목안시민공원 쪽 돌탑과 단풍
돌탑에서
고운 단풍길에서
나무 다리와 단풍에서 단체사진
수북이 쌓인 낙엽길에서
제1전망대에서
제1전망대에서 보는 단풍 풍경
제1전망대 아래에서 쉬어가기
제2전망대, 제3전망대 오르는 가파른 길
<머물게 하는 언덕>에서 단풍 조망
제3전망대에서 점심식사
가파른 데크길 단숨에 내려온다.
불타는 단풍
수리산 계곡길 고운 단풍에서
가을가을한 단풍과 낙엽에서 인생컷을 남긴다.
<고향곤드레밥>에서 곤드레밥, 감자전, 도토리묵 등으로 뒤풀이
병목안시민공원 백세행복길 내려와서
AI가 만들어준 지브리풍 수리산 둘레길 단풍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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