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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비를 맞으며 청계산 이수봉, 천림산 봉수대 산행

청계산 이수봉+천림산 봉수대

by 서순오

청계산 새로운 길을 걸었다. 이수봉은 몇 년 전 한여름 밤 8월 15일에 수도산에서 광청종주할 때 한밤 중에 혼자서 한 번 올랐다. 그때 많은 인원이 참석했지만 내가 속도가 느리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광교산과 백운산은 같이 걸었는데, 자꾸만 뒤로 처져서 바라산부터 하오고개-국사봉-이수봉까지는 혼자 아주 힘들게 걷고 옛골로 내려왔다. 그때 물도 다 떨어지고 허기가 지고 현기증이 나서 국사봉 오르다가 기다란 나무 의자에 한참을 누워있기도 했다. 오르다가 쉬다가 간신히 이수봉에 도착하니 물을 팔기에 반갑게 미지근한 물을 한 병 사서 목을 축이고 겨우 살아났다.


딱 한 번 가 봤지만 추억이 서려있는 이수봉을 간다기에 내심 반가웠다. 청계산 허리둘레길을 통해서 간다니까 그때보다는 덜 힘이 들 것이다.


오늘의 리딩 인테리어 지기님과 자랑산님들 9명, 총 10명(남자 4명, 여자 6명)이 참석했다. 서울대공원역 2번 출구에서 만나 늘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서울대공원 하트 이름표 포토존에서 멈춰 선다. 단체사진이다. 인 지기님은 이곳을 수없이 지나가셨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들 사진을 찍어주기만 하고 정작 본인은 안 찍으신다.


스카이리프트 막 지나가는데 대공원 단풍이 아주 곱다.

"예뻐 예뻐!"

바닥에 떨어진 빨간 애기 단풍이 꼭 단풍 카펫을 깔아놓은 듯 곱다. 또 단체사진을 찍는다. 여산우님들은 단풍잎을 하나씩 모자에 꽂고 포즈를 취한다. 자랑산 꽃녀들이다. 인 지기님은 이번에도 본인 사진은 안 찍으신다. 이렇든 저렇든 우리는 신이 났다.

'이 나이에 누가 우릴 모델로 삼아 주겠는가?'

자랑산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스카이리프트 지나자마자 도로 지나 산길 폐쇄로로 들어선다. 어떤 산우님이 '폐쇄로?'하고 놀라니까 인 지기님은 '폐쇄로는 뭐?' 그러면서 그냥 올라가란다. 초반이 물컹물컹한 진흙길인 걸 제외하고는 그다지 힘든 길이 아니다.

"이 길을 왜 '폐쇄로'라고 적어 놓았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잘못 걸으면 신발이 다 진흙물에 젖을 수도 있어서? 아니면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발이 푹 빠질 수도 있어서?"

그저 짐작해 볼 뿐이다.


지금은 가을, 낙엽이 수북이 쌓인 산길, 걷기 좋은 계절이다. 곧 철조망 지나 이정표가 있는 청계산 등산로 정코스가 나온다. 바람이 불어 낙엽이 우수수 축복처럼 내린다. 시원하고 기분이 좋다.

"야, 저것 좀 봐!"

"춤추면서 흩날리네!"

다들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하늘에서 펄럭이면서 우리들 머리 위로 흩날리는 단풍잎을 보면서 탄성을 지른다. 꽃비가 아니라 단풍비이다.

"봄에는 꽃비, 여름에는 초록비, 가을에는 단풍비, 겨울에는 눈꽃비를 맞을 수 있는 산행! 형형색색 다양한 비를 맞으며 정겨운 산우님들과 함께 하는 시간!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으랴!"

산행 초반부터 행복감에 젖어 온몸에서 엔도르핀이 솟아오른다.


나무데크길 옆 가파른 낙엽길 살짝 치고 오른 후 단풍비를 맞으며 서로 인사를 한다. 나는 아까 미리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스틱도 폈지만, 다른 이들은 그제야 입고 오던 겉옷을 벗고 스틱도 편다. 길이 완만하여 걷기가 좋다. 폭신폭신 바스락바스락, 단풍 낙엽길! 나는 이런 길이 참 좋다. 하루 종일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길이다.


청계산 허릿길 조금 걸은 후 점심을 먹는다. 부침개, 무뼈닭발, 볶음밥, 빵, 김치, 콩장, 오이짠지, 파김치, 삭힌 고추, 고구마, 청포도, 귤, 단감 등 다양한 음식과 과일이 나온다. 자랑산은 항상 12시 정도에는 점심을 먹기에 아침 식사를 너무 많이 하고 오면 안 된다. 너무 늦게 먹고 나와도 안 좋다. 나는 새벽에 일찍 먹었으니까 배가 고프다. 허겁지겁 먹는다. 산우님들 정성이 가득 들어간 음식들을 조금씩만 맛을 봐도 가짓수가 많아서 금방 배가 부르다.

"이를 어째? 또 배가 남산이네!"

그래도 빵과 따뜻한 커피도 조금 마신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길이다. 제1,2 약수터 지나 이수봉 가는 길은 몇 번의 오름길이 있다. 절고개까지도 되게 오르고 전망대 지나서도 오름길이 있다.

"산이 거저 봉우리를 보여줄 리가 없다."

"산이 왜 산인가?"

오르기 위해 있는 것이 산이다. 때로 살방살방 걷기 좋은 길이더라도 오르내리다가 또 오르는 것이 산이다. 특히나 봉우리 정상을 갈 때는 오르지 않고는 갈 수가 없다.


대체로 산 정상 봉우리는 꽤 가파르고 위험한 암릉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산이 봉우리를 거저 보여주지 않는다고 했을 것이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최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큰 어려움의 고비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우리는 정상에 오른 사람을 '대단한 사람', '최고'라고 부른다.


이수봉은 돌비가 아주 멋스럽다. 돌비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1) 이수봉(해발 545m)

조선시대 연산군 때 유학자 정여창 선생이 스승 김종직과 벗 김굉필이 연루된 무오사화의 변고를 예견하여 이 산에 은거하여 생명의 위기를 두 번이나 넘겼다 하여 후학 정구 선생이 이수봉이라 명명하였다.

2000.12. 상적동 주민 일동 세움(※1)


청계산 이수봉은 정여창이 '두 번 목숨을 구한 봉우리'라는 뜻이란다. 정여창이 임금님의 미움을 사서 유배를 갈 뻔하거나 무오사화 때 죽임을 당할 뻔했는데 살았다는 것이다. 청계산 혈읍재도 정여창이 피눈물을 흘리며 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수봉 근처에는 '금정수'라는 샘이 있는데 정여창이 이곳에 피신해 있을 때 그 물을 마셨다고 한다. '금으로 만든 우물' 같아서 붙인 이름이란다.


산과 봉우리와 지명에 얽힌 이야기를 알면 산을 더 가깝게 느끼며 오를 수 있다. 나는 정여창이라는 유학자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지만 청계산을 여러 번 오르다 보니 이제 자연스럽게 그분의 이름이 익숙하다.


'두 번 목숨을 구한 산'이라니 이수봉에 자주 오르면 앞으로 혹여 위험한 일이 생길 때에도 목숨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행운 내지는 자신감은 살아가는데 아주 유익하다. 생각만 해도 좋은 일이 거저 생기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수봉에서 자랑산 현수막을 들고 단체사진과 개인사진을 남기고 옛골 쪽으로 내려간다. 이수봉 조금 내려오면서 보니 이전에 광청종주 할 때 없었던 건물 비슷한 게 새로 작업 중이다. 그 자리를 피해서 왼쪽으로 빙 돌아서 간다.


옛골 가는 길도 꽤 길어서 약 1시간 가까이 내려가야 하는데, 거의 2/3 이상 내려왔을 때 두 갈래 길이 있다. 인 지기님이 기다리고 있다가 오른쪽 길로 가란다.

"봉수대 갈 거예요."

곧 봉수대가 보인다. 봉수대 4개가 우뚝 서 있다. 이곳은 처음 와 보는 곳이다. <천림산 봉수 유적>이라는 안내가 있다.

"그럼 옛골로 내려가는 길을 경계로 왼쪽은 청계산, 오른쪽은 천림산인가?"

천림산은 또 처음 들어보는 산 이름이라 내 나름으로 이렇게 넘겨짚어본다. 청계산과 붙어있는 곳에 천림산이 있다는 것도, 그곳에 봉수대가 있다는 것도 새롭게 알아간다.


(※2) 천림산 봉수대는 2직 직봉 봉수대로 부산(동래ㆍ다대포)에서 시작되어 천림산- 남산(목멱산)으로 이어지는 봉수대란다. 유사시에 낮에는 연기를 피우고 밤에는 횃불을 피워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봉수군은 25명을 배치하는데, 5명씩 한 조를 이루어 근무했다고 한다. 성남시가 매년 봉수대 축제를 열기도 한단다.(※2)


봉수대에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돌계단에 낙엽이 수북이 쌓여서 꽤나 멋스럽다. 돌계단 끝나고는 멍석길이 나오는데 그곳은 아예 낙엽길이다. 돌계단에 있는 낙엽들이 바람에 쓸려서 쌓이는 곳 같다. 가랑잎이 몇 개씩 뒤집어진 모습이 낙엽 위로 하얗게 몇 개씩 섞여 있는데 나동그라진 그런 낙엽 풍경도 꼭 일부러 그린 것 같다.


하산 완료하니 옛골 도로가 나온다. 뒤풀이는 <부뚜막청국장>에서 하기로 했는데, 나와 몇몇 산우님은 그냥 집으로 간다. 점심 먹은 배가 아직 안 꺼져서 너무 부르기 때문이다. 요즘 살이 한 2kg 정도 쪘는데 한결 몸이 둔하다. 살을 빼려면 가능하면 적게 먹어야 한다. 뒤풀이에 가면 나는 술도 안 먹어서 밥과 안주만 먹어댄다. 모든 게 다 맛이 있으니 살이 안 찔 수가 없다. 나이 들면 언젠가는 입맛이 없어지는 때가 온다 하는데 아직은 아니다. 함산 한 산우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지만 사정이 그렇다.


오늘 청계산 이수봉과 천림산 봉수대 산행은 대공원역 2번 출구-스카이리프트-제1,2약수터-절고개-전망대-이수봉-목배동삼거리-천림산 봉수대-옛골 코스로 약 9km, 5시간 소요(점심, 휴식 시간 포함)되었다. 인 지기님 기록을 보니 걷는 시간 3시간, 점심과 쉬는 시간 2시간이었다. 느리게 천천히 꽤 여유 있는 산행이었다. 새로운 길 리딩해주시고 사진도 예쁘게 담아주신 인 지기님과 후미 봐주신 말뫼 자문위원님, 그리고 함산 한 산우님들 모두에게 감사하다.


(※1) 청계산 이수봉 정상 표지석에 쓰인 글씨

(※2) AI가 알려준 천림산 봉수 유적에 관한 내용

서울대공원 이름표 포토존에서
서울대공원길
서울대공원 뒤쪽으로 청계산 석기봉 조망
서울대공원 고운 단풍길에서
서로 인사
단풍비가 내리고 가랑잎이 나뒹구는 가을 산행
맛있는 점심 식사ㆍ
청계산 제1,2 약수터
가랑잎길도 넘 예쁘다!
오름길과 청계산 등산로 안내
관악산과 서울대공원 호수 조망
청광종주 안내 표시
청계산 이수봉 정상 돌비에서
천림산 봉수 유적
천림산 봉수대에서
봉수대에서 돌계단 내려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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