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성주산+소래산+인천대공원 산행
일터를 따라 부천 S병원 원목실에서 일할 때 부천 상동에 2년 동안 살았는데, 인천 성주산과 소래산은 한 번도 못 가봤다. 대체로 내가 사는 지역 인근에 가볼 만한 곳은 샅샅이 훑는 편인데 말이다. 인천대공원, 월미도, 소래포구, 상동호수공원, 인천 차이나타운, 계양산도 다 가보았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그때는 산을 다시 탈 때가 아니고 일이 바쁘기도 해서 그랬을 것이다.
이번에 자랑산에 공지가 올라왔기에 얼른 참가 신청을 했다. 둘 다 안 가본 곳이고 그리 높지 않은 산이라서이다. 하루 종일 비소식이 있지만 혹여 비가 오더라도 날씨가 영상 10도-17도 정도이니 그리 춥지 않아서 올만에 우중산행도 괜찮을 듯하다.
인테리어 지기님 리딩에 총 16명 참석이다. 원래는 두 사람 더 신청했었는데 집안일 긴급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했다.
오전 11시 부천역 2번 출구 내에서 만난다. 모두 모여서 밖으로 나와 오르막길로 부천시립심곡도서관 앞을 지나 부천 상무정 아래 쉼터에 도착한다. 성주산은 해발 217m인데 낮은 산 초입이라 그런지 아직 단풍이 곱다. 서로 인사하고 산행 준비를 하고 출발한다. 데크길 올라 숲길로 들어서는데 고운 단풍과 폭신폭신한 낙엽길이 꽤나 멋스러워서 벌써부터 마음이 흐뭇해진다.
"좋아 좋아!"
금방 성주정 위로 올라가 점심을 먹기로 한다. 성주정 아래 빨간 단풍이 어찌나 고운지 성주정과 단풍을 같이 넣어서 사진에 담으니 한 폭의 정열적인 수채화이다. 때로 풍경은 평범한 아마추어도 사진작가로 변신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곳이 바로 그런 곳이다.
"거기 서 봐!"
나는 성주정 계단에 서 보라고 외치지만 다들 점심상 차리느라 바쁘다. 한두 컷 찍고 나도 올라가 합류한다. 아주 여유 있게 점심식사를 하고 본격적인 산행으로 들어간다.
"독서의 숲, 만남의 숲"
계절 좋은 때에 책을 한 권 들고 와서 이곳 성주정에서 읽거나 좋은 친구와 함께 와서 돗자리를 깔고 누워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겠다.
탱자나무를 지나간다. 어렸을 적 시골 우리 집 텃밭에 울타리로 자라던 나무이다. 노란 탱자가 열리면 귤 비슷해서 혹시 먹을 수 있을까 하여 손톱으로 눌러서 까서 혀를 대보면 너무 시어서 깜짝 놀라곤 하던 열매이다. 추억의 나무라 한 컷 담는다.
하얀 다리를 지나간다. 산에서 만나는 다리는 낭만적이다. 아래가 계곡이거나 강이라 다리가 놓인 것이라서 내려다보며 풍경을 즐긴다. 다리가 출렁출렁 흔들리면 더 재미가 있다. 다리 모양이나 색깔이나 재질에 따라서 아치다리, 빨간 다리, 초록 다리, 나무다리, 출렁다리 다양한 이름들도 산행에서 사진 찍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성주산은 그저 평지길 같은 산길이다. 약간의 오르내림은 있지만 아주 편안한 길이다. 곧 성주산 정상이다.
"아무것도 없어요."
전에 와본 적이 있는 인지기님은 그렇게 얘기했지만 웬걸 올라가 보니 떡하니 정상석 돌비가 세워져 있다.
"키 작다고 사람이 아닌가? 낮다고 산이 아닌가?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도 있는데!"
나는 혼자 중얼거려 본다. 그렇지만 성주산은 그저 동네 뒷산으로 편안한 산이다. 새로 세워진 산 정상석이 아담하고 또 바로 옆에 정자가 있어서 이곳 역시 '독서의 숲' 아니면 '만남의 숲'이 어울리는 곳이다. 가까이 살 때는 알지도 못했고 자주 오르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한 사람 한 사람 인증컷 남기고 이제 소래산으로 간다.
성주산이나 소래산이나 비슷한 높이인데 산길은 전혀 다르다.
"소래산 쉽지 않아요."
인지기님이 문득 한 마디 하신다.
"가파른 오름이 좀 있겠구나!"
각오를 하고 따라간다. 군부대시설이 있어서 철조망길을 한참 걸어간다. 군데군데 억새가 피어서 하늘거린다. 철조망과 억새라 안 어울리는 듯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여긴다.
'군인들이 저 억새를 보고 고향 생각이나 부모님, 애인이나 친구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
억새에게 '철조망 가에 피어 주어 고맙다!' 눈인사를 한다.
꽤 높아 보이는 봉우리가 눈앞에 나타난다.
"저기 보이는 산이 소래산 정상인가 보다."
가파르게 한 바탕 내려간다. 내려가면 올라가는 것이 산행의 이치이다. 오를 준비를 하려면 쉬어가야 한다. 쭉쭉 뻗은 나무들이 우리를 맞이하는 곳에서 쉬면서 사진도 찍는다.
"저기로 가보세요. 사진 찍어 드릴게요."
올봄 4월에 수리산 봄눈 산행을 함께 했던 피오나(오트밀)님이 자청해서 나도 키 큰 나무들이 있는 길 한복판에 서본다. 몇 번 함산 한 피오나 님은 예쁘기도 하지만 목소리도 경쾌하고 굉장히 밝은 성격이라서 같이 있으면 주변 분위기가 환해진다.
'보기만 해도 그저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나는 혼자 고개를 끄덕여본다.
"그러니까 자주 나와요! 알았죠?"
나무계단 오름길, 새로 만든 듯한 돌계단길, 그리고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은 우회로, 오른쪽은 가파른 길이다. 일부는 오른쪽으로, 일부는 왼쪽으로 오르는데, 나는 우회로를 택한다. 그런데 만만치 않다. 빨간 철구조물들이 보인다.
"저게 뭐지?"
자세히 보니 유격훈련장이다.
소래산 마지막 구간은 암릉길로 오른다. "돌이 매끈매끈하네요."
사방팔방 조망이 좋은 곳인데 날씨가 흐려서 시원스럽지가 않고 희미하다. 드디어 소래산 정상이다. 해발 299.4m라 쓰여 있다.
"0.1m가 부족해서 반올림을 못해서 300m 산이 못 되었네!"
인지기님 말에 정상석 돌비를 다시 한번 쳐다본다.
"정상석이 꼭 1,000m 이상 되는 것 같이 크고 우람하네요."
다른 산우님이 또 얘기한다. 그러고 보니 소래산 정상석은 아주 당당하게 우뚝 서서 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군데군데 조망터가 있지만 날이 흐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개인 인증컷 남기고 단체사진도 찍는다.
살짝 내려가 데크길 쪽에서 보니까 소래산 정상석 뒷면과 억새가 어우러진다. 무어라고 쓰여 있다. 다시 올라가 자세히 읽어본다.
"소래산마루
산처럼 변함없이 돌처럼 단단하게 시흥시와 남동구는 늘 함께하는 친구입니다.
2014년 1월 1일
남동구ㆍ시흥시"
시흥시와 남동구, 남동구와 시흥시가 '친구'라는 이야기이다. 소래산이 시흥시와 남동구에 걸쳐져 있는 산인 모양이다. 싸우지 않고 서로 사이좋게 나누어 누리는 산이 바로 소래산이다!
하산은 가파른 데크길로 내려와서 암벽에 커다랗게 새겨진 마애불상이 있는 곳을 지나 소래산 둘레길을 한 바퀴 길게 돌아서 메타쉐콰이어가 반기는 만의골로 이어진다.
"수령이 800년 된 은행나무 보러 가야죠!"
은행 잎은 단 한 잎도 남아있지 않은 커다란 은행나무는 그 나무가 은행나무인지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나는 나무가 참 신기하다. 봄 여름 가을, 그토록 풍성하게 잎과 꽃과 열매와 단풍으로 생명력이 넘쳤던 나무가 겨울이 되면 훌훌 다 벗어버리고 죽은 듯이 앙상한 모습으로 남는다. 그러나 죽은 게 아니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듯 외로이 홀로 서서 견딘다. 긴 겨울 혹한을 이겨낸다. 그리고 봄이 되면 다시 눈을 뜨고 초록 싹을 틔워낸다.
"나 살아 있어!"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것이 바로 나무라고 한다.
물론 흙은 더 신기하다. 모든 것을 다 받고 소화하고 살려내는 것이 흙이다. 성경에 따르면 모든 것은 흙에서 나왔다. 동식물도 우리 사람도! 흙이 없으면 이 세상이 없다. 그 흙을 직접 밟으며 흙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신비의 세계로 언제라도 걸어갈 수 있는 것이 바로 산행이다!
"이쯤 되면 나도 산행 예찬자가 아닐까?"
만의골 장수동 은행나무에서 단체사진 남기고 <은행나무집>에서 짬뽕순두부와 들깨순두부로 뒤풀이를 한다.
저녁 먹고 인천대공원을 지나간다.
"여긴 다 좋은데 교통편이 안 좋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려면 약 1시간 정도 걸어가야 한다. 덕분에 인천대공원을 즐긴다. 메타쉐콰이어길, 호수와 석양을 맘껏 누린다. 억새도 무리 지어 피어 있지만 다들 너무 오래 걸어서 지치는지 사진 찍을 생각을 안 하다. 그래도 지나칠 수 없는 곳이 있다. 불타는 단풍 숲이다.
"와우? 넘 예뻐 예뻐!"
여기서 인생컷 제대로 남긴다. 단풍빛에 물든 우리 얼굴이 연지를 바른 듯 볼그레 족족하다.
"이뽀 이뽀!"
오늘은 우리가 딱 영화배우이다!
그런데 또 버스 정류장 찾아 삼만리이다. 인천대공원 끝 도로가 나오면 바로 건너편 쪽에 정류장이 있다는데, 선두로 가던 이들이 그만 그곳을 지나치고 만 것이다. 나야 뭐 자동차로만 와본 곳이라서 대중교통편은 전혀 알지 못하기에 그저 따라간다. 기록을 보니 총 12km, 6시간 산행이었다. 내게는 좀 과했다. 요즘 임플란트를 한다고 오른쪽 어금니 쪽을 위아래 통째로 건드려놓고 뼈이식도 해서 얼굴도 붓고 이물감에다 약도 먹고 있어서 너무 무리하면 안 되는데 말이다.
"아, 되다! 어찌나 신경을 쓰면서 산행을 했는지 허리까지 뻐근하네"
마스크를 쓰고 산행을 하고 음식을 먹고 했으니 불편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예쁜 단풍에서 건진 인생컷이 미소를 머금게 한다. 이래서 또 오늘도 행복한 산행이라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