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첫눈 온 날 수원화성성곽길 풀 코스 걷기

수원화성성곽길

by 서순오

올 들어 첫눈이 내려서 아침에 무작정 집을 나선다. 조금 있으면 눈이 다 녹을 수도 있어서다. 새하얀 눈길 위를 뽀드득뽀드득 걷는 마음은 언제나 싱그럽다.


내 등산화 중에 안에는 털이 있고, 뒷굽 쪽에는 아이젠 비슷한 것이 박힌 게 있어서 '이거 언제 신나?' 싶었는데, 오늘 신어 보기로 한다. 수원에는 중고물품 파는 곳이 여러 군데 있어서 가끔 들러보는데, 주인아저씨가 다른 거 살 때 이 신발을 덤으로 주어서 보관 중이었다. 발바닥 밑창 아래에 철이 박혀 있어서 신발이 조금 무겁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 신고 나가보니 딱 안성맞춤이다. 뒤축에 힘을 주고 걸으니 눈이 녹아 언 곳도 미끄럽지 않고, 눈이 수북이 쌓인 곳도 걷기가 좋다. 눈이 다 녹은 곳이나 실내를 걸을 때는 뒷굽을 살짝 들고 걸으니 바닥에 닿지 않아서 긁히지 않고 괜찮다.


수원화성성곽길은 여러 번 걸었던 곳이지만 특별히 눈이 오연 꼭 빼놓지 않고 걷는 곳이다. 집에서 팔달문까지는 도보로 약 20여 분 거리이다. 처음에는 팔달문에서 시작해서 화홍문까지만 걸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걷다 보니 팔달문-남수문-동남포로-봉돈-창룡문-동북공심돈-연무대-동북포루-방화수류정-용연-화홍문-장안문-화서문-화성장대-효원의 종-3.1 운동기념탑-서남각루-팔달문 코스로 동그란 원 모양으로 풀 코스를 다 걸었다. 왜 그랬냐면 화홍문에서 수원천을 따라 걷는 게 재미가 없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자니 좀 그랬다. 내친김에 눈길이니까 다 걸어보자고 한 것이다. 시간은 화홍문까지 걷고 돌아오면 1시간 30분, 풀코스 다 걷는 건 2시간 정도 걸리니까 한 30여 분만 더 추가하면 된다.


수원화성성곽길은 양쪽으로 수원 시내를 보면서 걸을 수 있다. 성곽길 아래로는 버스와 자동차와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화홍문 아래로는 수원천이 흐른다. 아름다운 방화수류정과 용연은 멋진 설경을 뽐내며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고풍스러운 성곽길이 눈 내린 풍경과 어우러져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서너 명, 또는 대여섯 명, 두세 무리의 사람들이 와서 걷고 있다. 말소리를 들어보니 일본사람들이다. 한 사람은 안내를 하고 다른 이들은 듣고 있다. 일본관광객들인 것 같다. 혼자서 걷거나 둘이서 걷는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몇 안 된다. 한가로워서 눈길 걷는 게 조용하다. 눈 밟는 소리와 내 숨소리만 들린다.


오늘 처음 발견한 곳은 동북노대이다. 창룡문에서 동북공심돈 가는 길에 있는데 한 번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곳이다. 돌계단 몇 개를 올라가서 돌담 사이로 동북공심돈을 바라보니 꽤나 멋스럽다. 내려와서 동북공심돈을 배경으로 지나가는 여자분에게 사진 부탁을 했는데 어떻게 찍은 것인지 사진이 안 찍혔다.

"어쩔 수 없지 뭐!"


나는 연무대 쪽으로 간다. 동북공심돈에서 내려가는 길이 참 예쁜데, 사람들이 연무대 안에만 있고 올라오는 이들이 없다. 그렇다고 셀카 찍으면 인물이 너무 크게 나와서 안 예쁘니 사진 포기하고 연무대로 간다. 남자 1명, 여자 2명, 일본인 세 명이 일본말로 무어라무어라 하면서 연무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동영상도 찍는다. 남자분에게 손가락 랭귀지로 공북동심돈을 배경으로 사진 부탁을 해서 두어 장 남긴다.


수원화성성곽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화수류정과 용연(왕의 연못)을 향해 간다. 방화수류정은 눈 온 뒤라 위험해서 올라가기가 어려울 듯해서 안 오른다. 방화수류정은 사진만 담고 북암문을 통과해서 용연으로 간다. 오늘따라 유난히 사람이 적다. 일본인들 예닐곱 명이 안내하는 이의 설명을 듣고 있을 뿐이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이가 지나가고 남자분 하나가 오시기에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한다. 수원화성성곽길 위에 우뚝 서있는 방화수류정과 동그란 띠를 두른 듯한 호수인 용연 한가운데 조그만 섬에 소나무가 서 있는 모습이 한 폭의 수묵화인 듯 아름답다. 용연 주변으로는 능수버들과 오래된 나무들이 흐드러지게 늘어져 있다. 억새가 우거진 동북포루도 운치가 있다.

화홍문 아래로 흐르는 수원천 징검다리를 지나 화홍문을 조망하고 장안문을 향해 간다. 울 딸이 장안문 조망이 좋다며 와본 커피점도 보인다. 장안문 옆으로 난 반달 모양의 성곽길로 지나간다. 화서문을 향해 간다. 화서문은 문 안으로 들어간다. 널찍한 대청마루 같이 되어 있어서 그 안에서 무슨 모임 같은 걸 해도 좋을 듯해 보인다. 화서문 처마에서는 낙숫물이 떨어진다. 양지바른 곳에 있어서이다.


화서문부터는 조금 오름길이 시작된다. 올라가면서 보는 화서문과 수원화성성곽길 풍경이 고풍스럽다. 여자분 하나가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기에 내 사진을 부탁해서 남긴다. 이렇게 저렇게 찍으면 좋다고 주문까지 하지만 사양하고 간다. 남자분 한분이 지나간다. 성곽 돌계단길과 바로 옆에 숲길이 있는데 그이는 숲길로 빠르게 간다. 어느새 보니 숲으로 들어간 것인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서장대를 향해 가파른 돌계단길을 올라간다. 서장대 서노대는 보수공사 중이다. 서장대에는 몇 사람이 있다. 서장대 종루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여자분 둘, 서장대 앞마당에서 수원화성과 수원시내 조망을 하는 남자분 둘이 있다.

누군가 서장대 앞 돌계단에 눈사람을 만들어 세워 놓았다. 통상적으로 볼 수 있는 눈사람은 아니고 조금 특이하게 생겼다. 엄마나 아빠 눈사람 머리 위에 아기 눈사람이 올라가 있는 모습이다. 눈사람이니까 뭐 만드는 사람 자유이다. 아기 목말을 태우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랄까? 그런 게 느껴진다.


서장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수원화성 조망하고 효원의 종으로 간다. 곧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화성> 돌비가 나온다. 이곳에서도 사진을 찍으면 좋은데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지나간다.


휴게소로 내려가는 문 지나 3.1 운동 기념탑을 지나 끝까지 간다. 대체로 사람들이 이곳까지는 잘 안 오는데 나는 풀 코스로 걸을 때는 꼭 이곳을 온다. 3.1 운동 만세를 통해 우리나라 독립을 찾은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우리 이화 선배님이신 류관순 열사도 3.1 운동의 주역이시기 때문이다.


하산할 때는 가파른 돌계단으로 오지 않고 조금 옆길 덜 가파른 나무계단으로 내려온다. 이곳도 처음 걷는 길이다. 수원화성성곽길은 아무 데서나 오를 수 있고 아래로 내려올 수도 있다. 그만큼 길이 많다. 수원시에 사는 사람들이 늘 걷는 생활의 길이기도 하다.


마침 음식문화거리 수원화성 맛촌 안내가 있기에 살펴본다. 시간은 낮 12시라 배가 고프다. 남문순댓국으로 들어간다. 밖에서는 허름한 집인데 들어가 보니 꽤 분위기 있는 집이다. 창문 옆에 그림과 도자기가 진열되어 있다. 탁자도 붉은빛이 도는 나무이다. 순댓국 한 그릇을 주문해서 먹는다. 따끈해서 좋다. 나는 울 친정엄마가 일평생 순댓국 장사를 했기에 그 맛이 기준이다. 엄마는 항상 사골을 뽀얗게 고아서 국물을 내고 고기도 푸짐하게 넣어준다. 그래서 그런지 그 맛에는 못 미친다는 생각에 그리 맛있게 먹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은 했다.

재래시장 지나오면서 떡국떡과 두부, 무 1개를 사들고 온다. 대봉은 한 상자(22개)에 8천 원이라 살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온다. 싸고 좋은데 단감 사다 놓은 게 10여 개나 남아 있고 사과도 배도 있어서이다.

"다 먹고 사자. 안 그러면 버리는 게 많이 나온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사다 놓으면 혼자 다 못 먹어서 그렇다. 울 남편은 과일 잘 안 먹는다. 나는 과일은 꼭 먹는다. 하루 3개 정도는 먹는 편이다.


팔달문에서 도보 20여 분 거리에 집이 있어서 눈 때문에 교통대란 중에도 도보로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뉴스를 보니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미끄러운 눈길에 사고도 많이 나서 안타깝다. 나는 몇 년 전에 '꼭 필요하지는 않다'는 생각에 타던 차를 없애서 불편할 때도 있지만 그 덕분에 많이 걸을 수 있어서 좋다. 수원에서는 자동차 없이도 불편함 없이 잘 살 수가 있다.

수원천 풍경
동남포루와 수원화성성곽길 올라가는 중
봉돈
창룡문에서 본 연무대
동북노대와 동북노대 돌담에서 본 동북공심돈
동북공심돈
연무대
연무대에서 동부공심돈을 배경으로
방화수류정과 용연
억새와 동북포루
방화수류정과 용연(왕의 연못)
화홍문과 방화수류정과 수원천, 세계로 가는 이정표
화서문
화서문을 배경으로
돌계단 오름길과 옆 숲길
누군가 만들어놓은 화성장대(서장대) 눈사람
화성장대(서장대)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화성> 돌비
3ㆍ1운동 기념탑과 서남암문
수원 팔달산 벚꽃길 눈 쌓인 풍경
<음식문화거리 화성행궁 맛촌> 안내
<남문순대국>에서 순대국으로 점심식사
수원화성성곽길 안내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래 사는 나무, 흙의 신비, 불타는 단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