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산 송년산행 : 북한산 원효봉
북한산성 입구 전주식당에서 오전 11시 30분에 모여서 자랑산 정기총회를 한다. 2025년 2월에 창립되었으니 이제 1년이 채 되지 않은 산악회이다. 그렇지만 자랑산은 원래 있던 산악회에서 운영진 허락 하에 분립해 나온 것이고, 인테리어 지기님을 비롯해서 산우님들이 거의 매일 산행을 하고 있어서 그 어느 산악회보다도 더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주식당 1층으로 들어서니 축하 화환과 선물과 케이크가 준비되어 있다. 창문 위 벽에는 현수막 두 장이 나란히 붙어 있다. <자랑산 연말 정기 총회 및 송년회>와 <지역주민과 함께 만드는 탄소중립 비전>(백두대간진흥회) 현수막이다. 산우님들은 오는 대로 테이블에 앉는다.
제일 먼저 인테리어 지기님 인사 후 별다섯 대장 감사님이 먼저 연혁과 회계보고를 한다. 들어도 뭐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자랑산님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적당한 산악회 운영기금이 마련되어 송년회를 푸짐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십시일반 찬조금을 내주신 산우님들에게 감사하다.
시상식이 있다. 1년 동안 솔선수범하여 산행을 리딩하고 열심히 산행에 참여하고 이모저모로 애써주신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시간이다. 산행대장상, 최다산행상, 정기산행 개근상, 후미대장상, 인기상, 감투상 등 종류도 상품도 다양하다. 자랑산 회원들 모두에게도 참가상 선물이 있다. 남산우님은 버너 또는 아이젠, 울 양말, 우의, 스카프, 여산우님은 울 양말, 등산 양말, 스카프, 보온버프 등이다. 자랑산 원정산행을 협력하고 있는 백두대간진흥회에서도 스카프를 한 장씩 주신다. 이 많은 걸 다 장만하고 준비하고 포장하시느라 정말 애 많이 쓰셨다. 어느 산악회든지 섬김과 봉사를 아낌없이 해주시는 이들이 있어서 일반회원들이 안전과 즐거움을 한껏 누리는 것 같다.
자리에 앉자마자 세브란스 자문위원님이 초심 대장님이 직접 손글씨로 쓴 크리스마스 카드라며 한 장씩 나누어준다.
"예쁘기도 해라. 이거 얼마 만에 받아보는 성탄 카드냐?"
다들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초심 대장님 고운 마음, 크리스마스 카드 50장 썼으니 50배로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 이어!"
마음속으로 축복을 한가득 보내드린다.
시간이 12시가 다 되어가기에 각자 싸 온 간식들을 꺼내서 테이블에 펼쳐놓고 먹는다. 우리 테이블에는 약밥, 고구마, 모시송편, 김밥, 단감 등이다. 김치는 안 싸와서 옆 테이블에서 무김치를 얻어다 먹고 우리 것도 나누어 드린다.
오후 1시가 되어가자 송년산행을 시작한다. 북한산 원효봉을 오를 예정이다. 도로길 조금 걸어가서 북한산 봉우리들이 조망 되는 곳에서 산행 준비를 하고 단체사진을 찍고 출발한다. 나는 어제 수원화성성곽길 걸을 때 신었던 뒷굽에 아이젠처럼 철이 박힌 등산화를 신어서 아이젠은 안 차고 걷는다. 다른 산우님들은 대체로 아이젠 없이 걷는다. 날씨가 영상이라 눈이 녹고 있어서 그다지 미끄럽지는 않기 때문이다. 만일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서 녹은 눈이 얼었다면 반드시 아이젠을 착용하고 걸어야 했을 것이다.
초반에는 바람도 없고 살짝 오름길이라 걷기에 딱 좋다. 그런데 원효봉 가는 길은 조금 가파르다. 북문까지도 돌길 계속 오름길이고 원효봉 암릉을 오르려니 갑자기 바람이 거칠어진다. 우우 소리를 치면서 우리를 삼킬 듯이 불어댄다. 모자가 벗겨지고 옷자락이 몸부림을 친다. 바위를 잡고 간신히 원효봉에 오른다. 원효봉 암릉에서 바라보이는 북한산 봉우리들과 산 아래로 굽이치는 골에 하얗게 쌓인 눈이 진풍경이다. 또 단체사진과 개인사진을 찍는다. 송년산행이니까 많이 남기면 좋다.
원효봉 표지목에서도 사진을 남기고 부랴부랴 내려간다. 바람 때문에 지체할 시간이 없다. 털모자도 겉에 입는 솜잠바도 가져와서 배낭 안에 있지만, 꺼낼 엄두를 못 낸다. 그다지 춥지는 않기에 그냥 내려간다.
아, 그런데 또 곧 위험한 암릉구간이 나타난다. 먼저 간 산우님들이 세찬 바람을 뚫고 암릉 위에 박힌 철에 이어진 로프를 잡고 한발 한발 오른다. 다행히 발을 밟는 곳에는 발자국 크기의 홈이 있어서 무사히 난이도 있는 암릉구간을 통과한다.
"사진 찍지 마세요."
혹시 암릉 위에서 사진 찍다가 날아갈까 봐서 인테리어 지기님이 주의를 준다. 핸드폰이나 모자, 옷이나 배낭뿐만 아니라 자칫 잘못하다가는 몸까지 날아갈 만큼 바람이 드세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바람이 부시나?"
뒤에서 후미를 보며 오시는 별다섯 대장님이 바람 노래를 한 소절 부른다.
"그대 잠든 머리맡에 가만히 앉아 이 밤을 지키는 나는 나는 바람이려오."
"노래 잘하시는데요."
내 뒤에서 걷고 있는 봄뜰 방장님이 칭찬을 하신다.
"그대 이름은 바람바람바람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
나는 김범룡의 이 노래가 생각이 나는데 별대장님 부른 곡은 다른 노래이다. 이용의 '바람이려오'라나!
하산길도 돌길이 있지만 금방 내려온다. 오늘 산행은 약 6km, 3시간 소요 되었기에 다른 날 산행에 비해서 좀 가뿐했다고나 할까? 하산하니 바람이 멎는다. 아니 어쩌면 산 위 암릉에서만 부는 바람일 수도 있다. 산 아래는 산봉우리들과 나무와 숲이 바람을 막아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후 3-4시경에 비소식이 있었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다.
다시 전주식당으로 가서 돼지고기 두루치기와 동태찌개 전골로 송년산행 뒤풀이를 한다. 열심히 고기를 구워서 옆 테이블에도 주고, 동태찌개를 얻어온다. 마지막으로 밥을 볶아서 또 나누어 먹는다. 옆에 앉은 푸른솔대장님이 어찌나 맛있게 온갖 재료를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내서 비벼대는지 안 먹을 수가 없다. 거기다가 봄뜰 방장님이 참기름과 김을 가져와서 마지막 맛을 더하니 고소하니 입에 잘도 들어간다.
즐겁게 맛있게 잘 먹었는데, 나는 그만 탈이 나고 말았다. 이제껏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만 체하고 만 것이다. 낮 12시 30분에 간식 먹고 커피까지 한 잔 마시고, 오후 4시에 고기를 먹어서 너무 무리가 된 모양이다.
집에 와서 잠을 자려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카페인에 민감한 나는 오후에 절대 커피를 마시지 않는데, 오늘따라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참지 못하고 마셨던 것이다. 거기다가 내 정량을 넘어선 음식과 고기와 밥이 내 위장을 건드려 놓으니 아랫배가 살살 아프다. 그러더니 급기야 서너 번 먹은 것을 모두 내놓고 말았다. 급히 편의점에 가서 까스명수 한 병 사 먹고 눕는다. 그래도 잠은 오지 않는다. 피곤한데 속도 쓰리고 잠도 안 오고 송년산행 턱을 제대로 한다. 까스명수 살 때 같이 사온 호박죽을 1개 데워서 먹어본다. 이제 스르르 잘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바람은 곁에서 밤새 지켜주는 바람일까? 나를 버리고 떠나가는 바람일까?"
몸이 아프니 오늘 부른 노래의 한 소절이 떠오르며, 우리가 그렇게 다른 노래를 불렀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새 꿈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