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14장
남북으로 분열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왕들의 역사를 읽다 보면 하나같이 '부왕을 본받아'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좋은 점이라면야 당연히 본받는 것이 좋겠지만, 나쁜 점이기에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여호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의 섬기는 일에 앞장서서 대를 이어 '본받아' 행하기 때문이다.
남유다는 부왕 요아스가 죽고 아마샤가 대를 잇는데 전국의 산당들을 부수지 않고 그대로 두어 백성들이 그곳에 가서 제사를 지낸다. 아마샤 왕은 소금골짜기로 쳐들어온 에돔 족속을 쳐부수고 그들의 수도 셀라를 정복하여 욕드엘이라 고쳐 부른다. 그러자 아마샤는 그만 교만해져서 북이스라엘 요아스 왕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과연 누가 더 힘이 센지 결판을 내보자!"
그렇지만 요아스 왕이 만류한다.
"무엇 때문에 네가 불행을 자초하느냐?"
아마샤는 요아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쳐들어온다. 벧세메스에서 정면대결을 하는데 그만 아마샤 왕이 생포되고 만다.
그런데 참 이상하기도 하다. 생포된 아마샤 왕이 죽었다는 말이 안 나온다. 그 뒤로 북이스라엘 요아스 왕이 죽고도 남유다 아마샤 왕은 15년이나 더 산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요아스 왕은 아마샤를 이기고 왕궁 보물창고의 금은과 귀중품들까지 다 약탈하고 많은 사람들을 인질로 잡아가면서도 아마샤 왕만은 살려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 하심이었을까? 아니다. 예루살렘에서 반역이 일어나서 아마샤는 라기스로 피신했지만 결국 반역자들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아마샤는 남북전쟁에서 패했을 때 죽는 것이 나았을까? 아니면 도망쳤다가 반역자들에게 살해당하는 게 나았을까? 그 어느 쪽이라도 패하여 죽임을 당한다는 의미에서 똑같이 비참한 최후였을 것이다. 정상적인 왕위 계승을 하지 못하고 정적에 의해 제거를 당하는 아주 불안한 시대였던 것이다.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2세가 북이스라엘 왕이 되어 통치를 하자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 그 역시 여호와의 마음에 들지 않는 악행을 일삼는다. 여로보암 1세를 본받아 백성들을 우상숭배에 빠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앙 2세가 북단 하맛 입구에서부터 남단 사해에 이르기까지 잃어버렸던 옛 영토를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다. 이는 요나 예언자를 통하여 예언하신 말씀을 성취시켜 주신 것이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당할 위기에 처해 모두 죽게 되었고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성경은 이렇게 쓰고 있지만 아직 멸망의 때가 이르지 않은 것이다. 끝까지 인내하시며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주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완전히 멸망시켜 버리기로 작정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2세를 일으켜 그들을 도와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끝까지 사랑하신다. 위태할 때도 아주 버리지는 않으신다.
멸망의 때를 늦추시는 하나님은 구원의 때를 기다리는 분이시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 천국백성을 만드시기 위함이다. 갈수록 악이 판을 치는 말세의 때에 왜 아직도 종말이 오지 않느냐고 외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 그날과 시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길이 참으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실 때 어서 속히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손을 잡아야 한다. 그래서 속죄와 구원의 은혜 속에서 하늘나라에 입성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날이 언제일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의 믿음대로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