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빈 집

by 서순오

"거시기 말이여. 어젯밤에 서울로 도망을 갔담서?”

“도망은 무슨 도망? 혈혈단신인디 뭐 도망이랄 것까정 없제 잉?”

“그러제. 대낮에 가도 쓸 것인디 워째 밤에 내뺐으까잉?”

“뭐시기냐, 남편 죽고, 아들 죽고, 최영감까정 그 집에서 죽었으니게 낯이 뜨겁기도 허것제.”

“사람들이 벌써 최영감 며느리 보고 사람 잡아먹는 여편네라고 헌당게.”

“그러니까 남들 눈을 피해서 간 것이제 잉?”

윗말 최영감이 죽고 나서 얼마 뒤의 일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이 집 저 집 모여서 수군수군거립니다. 최영감네 일이 마치 자기 일이라도 되는 양 저마다 열을 올려 댑니다.

이즈음 설이도 이제 막 여섯 살이 되어 미동할머니 손을 붙잡고 마실을 다닙니다. 미동할머니를 따라다니면 어른들 틈에서 뭐 딱히 할 일이라곤 없지만 그래도 가끔은 삶은 고구마, 볶은 콩, 부침개 같은 것을 얻어먹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는 옆집 박씨네 아들들을 따라다니며 노는 것에 더 재미를 붙였습니다. 아이들이 딱지치기를 하거나, 팽이치기, 구슬 놀이를 할 때,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겨우내 아랫말 공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날씨가 좀 풀리자 윗말까지 원정을 가서 놉니다. 그중에서도 성황당에서 굿하는 것을 구경하고 먹을 것을 얻어먹는 일, 최영감네 빈집에 가서 귀신놀이를 하는 일 등은 한적한 산골마을 아이들에게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전율이 느껴지는 놀이입니다.

“설이 할매, 우리가 설이 데꾸 가서 놀께라- 잉?”

박씨네 셋째 아들 삼채가 설이를 제일 귀여워합니다. 거기다가 설이보다 보름 늦게 태어난 박씨네 오채가 설이랑 잘 놀아줘서 미동할머니는 흔쾌히 설이를 떼어 놓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설이 밑으로 태어난 덕이, 옥이, 두 손지 딸을 보기도 벅찬 것이 요즘 미동할머니의 형편입니다. 옥이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었고, 덕이는 아직 어디가 어딘지를 잘 분간하지 못하면서도 끄떡하면 천방지축 다니다가 길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잠시도 눈을 떼어 놓을 수가 없습니다.

한 번은 설이에게 덕이를 맡겼다가 둘 다 미나리꽝에 빠져서 혼난 적도 있고, 화롯불에 묻어놓은 고구마를 꺼낸다면서 둘 다 손을 집어넣는 바람에 화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작은 방 부엌에 가마솥을 걸어 쇠죽을 쑤는 커다란 아궁이가 있는데, 심지어는 재를 퍼낸 아궁이 속에까지 들어가서 놀기도 합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다 큰 박씨네 아들들에게 설이를 맡기는 것이 안심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끔 바쁜 일이 있는 날이면 미동할머니가 먼저 손을 내밀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설이를 맡기곤 했는데, 이제는 도리어 삼채가 설이 없이는 하루도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삼채뿐 아니라 아들만 있는 박씨네 아들들에게는 설이가 마치 살아있는 인형이라도 되는 것처럼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더군다나 설이는 노는 것이 꼭 사내아이들과 비슷합니다. 옆에서 보기만 하던 딱지치기, 팽이 돌리기, 구슬 던지기도 제법 잘합니다. 여섯 살짜리가 뭐 실력이 좋아봤자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제법 상대를 할 만합니다.

요즘 박씨네 아이들이 새롭게 개발한 귀신 놀이는 그중에서도 설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입니다. 그것도 텅 비어있는 최영감네 빈집에서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온종일 놀 수 있어서 그만입니다.

윗말에서도 용머리가 똬리를 틀고 있는 가운데 지점 언덕배기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집이 바로 최영감네 집입니다. 그 바로 옆으로 용의 심장 어디 깨거나 가슴팍쯤이나 될까 싶은 곳에 성황당이 역시나 산등성이에 찰싹 엎드려 있습니다.

이 두 집은 방문이 작고, 천장이 낮아서 방 안으로 들어가려면 몸을 바짝 오그려야 합니다. 어른 키로는 방 안에서 일어서 있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천장이 낮습니다. 방안에서는 엉덩이를 이리저리 밀면서 옮겨 다녀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 키에는 안성맞춤인 곳이 바로 최영감네 빈집입니다. 머리가 닿을락 말락 하는 천장이 정다운 느낌마저 줍니다. 제법 남향으로 앉은 집인 데다가 지대가 높아서 집 안 깊숙이까지 햇빛이 들어옵니다. 그 집에서 놀다가 밖을 내다보면 아랫말이 한눈에 훤히 들어옵니다. 겨울이라도 햇빛이 들어오는 집 안은 그리 춥지가 않습니다.

“야, 오늘은 내가 설이 데꼬 귀신을 허께. 너이들은 밖에 있다가 하나씩 들어와, 알았제 잉?”

삼채가 설이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가다가 뒤돌아보며 다시 주의를 줍니다.

“이번에는 하얀 달걀귀신인 게, 들어올 때는 다 눈 감고 들어와, 알았제 잉?”

삼채와 설이는 방안에 널브러져 있는 하얀 무명으로 된 이불홑청을 몸에 뒤집어쓰고 부엌 쪽으로 나있는 문 뒤에 납작하게 키를 낮추고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겁을 잔뜩 집어먹고 하나 둘 집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정적 속으로 찬바람이 휙 하고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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