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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노는 사람이 잘 사는 것이다

2025년 해늘산 송년산행 : 수락산 둘레길

by 서순오

해늘산 송년산행이 수락산에서 있다. 오전 11시와 오후 1시 두 팀이 수락산 산행을 한다. 두 팀 다 수락산역 1번 출구 밖 소방서 앞에서 모인다. 오전 11시 팀은 푸른솔 대장님이 리딩해서 수락산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장암역 장암골까지 내려오는 코스이다. 오후 1시 팀은 유끼에 산행부장님 리딩인데 수락산역 출발해서 깔딱고개를 넘어서 석림사를 지나 장암역 장암골로 내려오는 코스이다. 나는 이럴까 저럴까 생각하다가 오전 11시와 12시에 비소식이 있어서 기왕이면 비 안 오는 시간이 좋겠다 싶어서 오후 1시 팀에 가기로 정한다.


집에서부터 출발해서 수락산역까지 가는 데는 지하철로만 약 2시간 걸리는 걸로 나온다. 그렇지만 환승 1번 해야 하니까 30분 정도 시간 여유를 두고 2시간 30분 잡고 출발을 한다. 매교역까지는 20여 분 거리라 걸어가서 수인분당선 타고 강남구청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서 수락산역에 내리면 된다. 하계역쯤 오면서 시간을 보니 겨우 1시가 되어야 수락산역에 도착하겠다.

'2시간 30분이나 왔으니까 산행하기 전에 먼저 화장실에 들르면 좋은데!'

유끼에 리딩 산행부장님한테 문자를 보낸다.

"지금 하계역 지나고 있는데 수락산역 내려서 화장실 들려야 해서 살짝 늦겠어요."

읽음 표시는 있는데 답문이 없다.


수락산역에 내리니 남산우님 한 분이 인사를 한다.

"닉이 뭐셔요?"

꽁찌님이시란다.

"아하, 달려도꽁찌님!"

나는 닉이 참 독특하다 생각하며 정색을 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참, 저는 화장실 들렀다 갈게요. 먼저 나가셔요."

급하게 볼일 보고 나가니 모두 다 오셨다. 오후 1시 팀은 총 16명이란다.


이슬비가 한두 방울씩 내리고 있다. 배낭 뒤주머니에 넣은 접이 우산을 장비님에게 꺼내달래서 펼쳐든다. 날씨는 포근하다. 영상 10도까지 올라간다고 해서 옷을 얇게 입고 왔다. 솜잠바는 배낭 안에 챙겨 왔다. 그런데 걸으니 덥다. 습도가 높아서 얼굴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스며 나온다.


조금 오르다가 쉼터가 나오니 간식을 먹고 가기로 한다. 그런데 이슬비가 아직 한두 방울씩 내리고 있어서 저 안쪽에 있는 지붕 있는 정자로 가서 편하게 쉬었다 가기로 한다. 오후 4시에 송년행사가 있으니까 5시 정도에는 저녁을 먹을 것이다. 지금은 오후 1시 30분, 그래도 꽤 늦은 점심이다.


나는 집에서 치킨을 발라서 싸고, 귤을 까서 간단하게 싸갔는데, 유끼에 산행부장님은 따끈따끈한 순대를 꽤 많이 사 오셨다. 맛깔스러운 파김치도 싸 오셨다. 젓가락들이 맛있는 걸 알아본다. 산우님들이 챙겨 오신 츄러스, 말랑한 곶감 등도 인기가 있다.


간식 다 먹고 오후 2시 조금 넘어서 산행을 다시 시작한다. 깔딱고개 방향으로 막 접어들려는데 수락산 정상 주봉 쪽에서 내려오는 자랑산 산우님들 몇이서 나를 알아본다.

"어쩐지 옷이며 모자며 배낭이 꼭 눈꽃열차님(※2) 같더라니까!"

세브란스님이 반가워한다.

"여기서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셋이서 사진 찍어줘요."

별대장님은 기꺼이 응한다. 나는 개인사진도 두어 컷 더 찍고 우리 1시 팀을 급히 따라간다.


본격적인 깔딱고개이다. 한 5-6년 전에 두어 번 오른 경험이 있다. 토산에서 왔었는데 지금도 그 산악회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 산악회는 코로나 기간을 지나면서 산행을 거의 안 해서 산우님들이 몇 명씩 따로 나가서 산행을 한다고 얘기를 들었는데 말이다. 나 역시도 무슨 계기가 있어서 그 산악회를 거의 안 가게 되었다. 집결지가 군자나 종로 3가여서 집에서 너무 멀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가입한 산악회가 그곳 하나뿐이어서 거기서만 매주 산행을 했고 나름 참 재미있었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활력과 의욕이 있었던 때라 어떤 코스든 잘 따라다녔다.


깔딱고개를 힘겹게 오르고 있는데, 위에서 두야 대장님이 응원을 한다.

"이제 다 왔어요. 조금만 더 힘을 내요."

나는 위를 한 번 쳐다보고 발아래를 한 번 쳐다보고 숨을 길게 내쉰다.

"휴~"

두야 대장님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소리친다.

"나보다 몸무게가 가벼운 사람은 힘들다 하면 안 돼요. 배낭 안 매도 내가 제일 무거우니 가벼운 분들 어서 올라오세요."

그렇긴 하다. 그렇지만 내 몸이 무거우니 빨리 오르지는 못한다. 한 발 한발 걷다 보니 이제 거의 다 왔다.


깔딱고개 올라와서 이정표 앞에서 단체사진을 남긴다.

"오늘 정상은 여기니까 기념사진 찍는 거예요."

유끼에 산행부장님도 뒤에서 손을 번쩍 들어 호응을 하신다.


하산길 초반에는 깔딱고개 만큼이나 가파르고 돌길 너덜길이다. 스틱을 짚고 조심조심 내려간다. 여산우님 두 분은 운동화를 신고 와서 연신 젖은 낙엽에 미끄러질 뻔한다. 더군다나 스틱도 없이 걸어서 흔들리는 돌에도 낙엽에도 진흙에도 미끌미끌 위태위태했던 것이다.


산행을 하다 보면 위험한 순간들이 꽤 있다. 가평 화악산 중봉 찍고 조무락골로 내려가는 길이 아찔했다. 아주 가파른 내리막길인데, 젖은 진흙 산길이 마사토라서 밟는 순간 스르르 흙이 부서지면서 미끄러져 내린다. 스틱을 짚고 옆으로 뒤로 걸을 수밖에 없다. 발아래가 낭떠러지 같아서 아슬아슬하다. 여고 친구랑 같이 갔는데 그 친구는 질려서 다시는 산행에 안 왔다.


군자산을 내려올 때도 돌길 너덜지대는 정말 지리하고도 위험했다. 비와 눈이 섞여 내려서 이끼 낀 돌이 젖은 데다가 얼어서 발을 밟을 때마다 미끄러진다. 빨리 걸을 수도 없다. 어찌나 길이 긴지 두 시간이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걷다 보니 온몸의 힘이 다 빠져서는 기진맥진해지고 만다.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산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런데 오늘은 쉬운 오후 1시 팀이라서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이슬비가 내려서 산길에 진흙과 젖은 돌과 낙엽이 살짝 미끄럽긴 했지만 스틱과 릿지가 잘 되는 등산화를 신은 이들은 성큼성큼 잘도 걷는다. 다만 스틱 없이 걷는 이들과 운동화를 신은 이들이 애를 먹을 뿐이다.


곧 석림사가 나오고 노강서원이 있다. 먼저 홍살문이 보여서 알은체를 한다. 홍살문 위에 세워진 살을 세어보니 13개이다. 1개는 비스듬하게 살짝 휘어졌지만 곧게 펴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지난번에 아산 여행을 하면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 기념관과 현충사와 무덤을 돌아본 적이 있는데 그때 여자 해설사님이 아주 자세하게 홍살문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지체 높은 분들의 사당이나 무덤 같이 신성한 곳으로 들어갈 때 홍살문을 세워서 나쁜 것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이곳에 들어오는 이들도 경건한 마음가짐을 가지도록 세워둔 것이죠. 홍살문 개수는 홀수로 세우는데 더 경건한 곳일수록 그 수가 많아요."

그런데 충무공의 초상화가 있는 제3현충사로 가는 곳의 홍살문은 11개였고, 이순신 무덤으로 가는 곳의 홍살문은 7개였는데, 이곳은 13개이다.

"노강서원이라니 충무공 이순신 장군보다 더 귀하신 분을 기념하는 곳인가?"

내가 찍어온 사진이 조금 흐릿하지만 궁금해서 AI에게 텍스트로 읽어달라고 하니까 다음과 같이 친절하게 알려준다.

(※1) 노강서원 : 경기도 기념물 제41호

노강서원은 1689년(숙종 15),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문충공 박태보(1654~1689)를 추모하고 유학 교육을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박태보는 숙종 대에 문과에 장원급제한 인물로, 1689년 기사환국 당시 인현왕후의 폐위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진도로 유배되었다. 이후 노량진에서 36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으나,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으로 신원이 회복되었고, 그의 충절과 학문은 높이 평가되어 관직이 추증되었다. 노강서원은 1697년 왕으로부터 ‘노강’이라는 사액을 받았으며,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유지되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다시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현재의 노강서원은 1969년 이곳으로 이전·복원된 것으로, 오늘날까지도 한 인물의 절의와 학문을 기리는 공간으로 남아 조용히 그 뜻을 전하고 있다.(※1)


'그렇다면 인현왕후의 폐위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유배를 간 문충공 박태보를 추모하는 서원이 아닌가? 문충공은 문과, 충무공은 무과, 당시에는 문과가 무과보다 더 높았기 때문일까?'

좀처럼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이제 <장암골> 식당에서 해늘산 송년회 행사를 기록해야 한다. 내 산행 기록이 길다고 난리들인데(※'길다'는 분은 애써서 안 읽으셔도 된다. 굳이 읽으라고 쓰는 것은 아니고, 다만 '오늘을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쓰는 것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찾아보면 재미있다), 또 길어졌다.


<장암골>로 들어서니 보애 운영부장님과 지용 운영자님이 닉을 확인하고 미리 신청한 송년선물과 유끼에 산행부장님이 기증하신 등산양말을 한 개씩 준다. 나는 플렉스 밀폐용기 6개짜리를 받는다. 다른 이들은 보냉병이나 3만 원 신세계상품권을 받는 이들도 있다.


테이블에는 기본 반찬 세팅이 되어 있고 의자에는 예쁜 풍선이 달려있다. 의자에 앉아서 보니 벽 전면에 붙어 있는 '해늘 송년의 밤'이라 쓴 초록빛 현수막과 쇼핑백에 담긴 선물 꾸러미들이 오늘이 특별한 날임을 말해준다.


해늘산 체스 회장님은 귀여운 알프스의 하이디처럼 하얀 레이스 리본과 아랫단 장식이 달린 니트 스웨터와 치마를 입고 왔다.

"산행은 안 했군!"

옷차림을 보니 그랬다. 미리 와서 준비하느라 그랬을 것이다. 인사말을 하시는데 '지금은 밥 먹는 시간이 아니니 숟가락 먼저 들면 안 된다'라고 주의를 주신다. 행사를 먼저 하려는 것이다.


딤플 운영자님 사회로 행사가 진행된다. 최다 산행상, 대장상, 공로상, 고문상, 자문위원상, 기부상 등 다양한 상 종류와 상품이 준비되어 있다. 한 사람이 두세 개씩 상을 받는 분도 있다. 기뻐하는 모습을 담는 사진작가분들이 여럿 있다. 커다란 카메라로 호타루님, 핸드폰 카메라로 머털도사님 등이 순간 포착을 해서 기념샷을 남긴다. 찰칵찰칵 셔터 소리가 경쾌하다.


해늘산 운영진 소개를 한다. 숨은 곳에서 애쓰시는 일꾼들이 있기에 과거와 오늘의 해늘이 있는 것이고, 내일과 미래 해늘의 발전이 있을 것이다. 진심을 담아 감사의 박수를 쳐드린다.


축하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체스 회장님과 운영진 봉사자들이 함께 불어 불을 끄고 커팅을 한다. 이 순간은 환희의 순간이다.

"사람들이 왜 축하의 순간에는 케이크에 불을 켤까?"

"한해를 무사히 잘 지나왔음에 감사하고, 또 소망으로 펼쳐질 다가오는 새해의 앞길을 환히 밝혀줄 것을 바라기 때문이리라."

나는 속으로 혼자 질문과 대답을 해보며 마음이 들뜬다. 해늘이라는 산악회 회원으로서 함께 하는 기쁨이다!


이제 저녁식사 시간이다. 보양식 능이버섯백숙과 도토리묵이 푸짐하다. 옆에 앉은 달려라꽁찌님이 가위를 들고 백숙을 먹기 좋게 나눈다. 밑반찬으로 나온 고사리나물, 시금치나물, 멸치조림, 샐러드 등도 모두 맛이 있다. 우리 테이블은 세 사람이 4인분을 먹어서 더 넉넉하다. 나는 또 술을 안 먹어서 남자분 두 분이 테이블 당 기본으로 주어진 맥주 2병, 소주 2명 중 맥주 1병만 겨우 마신다. 남은 3병은 다른 테이블에 갖다 준다.


다들 어느 정도 배가 차자 노래방이 시작된다. 노래하고 싶은 사람이 앞으로 나가 선물을 받고 노래를 부른 후 행운권 추첨을 하면 뽑힌 사람도 선물을 받는다. 우리 테이블에 앉았던 분이 전자오르간으로 반주를 해주신다. 해늘의 끼 있는 분들이 흥겹게 한판 벌인다.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함께 어우러져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보는 이들도 박수를 치며 즐겁다.


나는 음악 지능이 낮아서 그리 깊이 빠져들지는 못한다. 우리 친정식구들은 모두 노래를 잘하는데 왜 나만 그러는지를 모르겠다. 친정 엄마는 동네노래자랑 나가면 1등을 해서 TV를 상으로 받아올 정도의 실력인데 나는 그걸 물려받지를 못했다. 그 대신 다른 동생들이 카수이다. 머털도사 고문님이 나가서 노래를 하라고 권유를 하지만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다.


약 1시간 가까이 즉흥 노래방이 열기를 더해가는 가운데 나도 행운권에 뽑힌다. 클렌징 폼이다.

"예뻐지라는 거지!"

나는 흡족해하며 슬그머니 식당을 나온다. 돌아오는 시간이 3시간은 잡아야 해서 마음이 급하다. 더군다나 내일은 주일이라서 일찍 가서 쉬어야 시간 맞추어 교회에 갈 수 있다.


장암역에서 수원까지 한 번에 오는 버스가 있는데, 막상 정류장에 가보니 배차시간이 자그마치 30~40여 분 간격이다. 그냥 지하철을 타고 오기로 한다. 7호선 지하철 자리는 텅텅 비어서 앉아서 온다. 강남구청역에서 수인분당선으로 환승한 후에도 앉아서 편하게 온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아서 꽤 쾌적한 환경이다.


처음에는 멀어서 '갈까 말까' 하다가, '그래도 송년산행인데!' 하면서 신청을 하고, 와 보니 참 좋다. 식당에서 노래방까지 하는 산악회 송년회는 처음 본다. 또 새로운 경험이라 여흥이 남는다.

"잘 노는 사람이 잘 사는 것이다."

물론 나는 노래가 아닌 다른 것으로 잘 놀지만 말이다.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18번지를 아낌없이 쏟아내는 해늘님들, 풍선을 들고, 숟가락을 꽂은 소주병을 마이크로 들고, 어깨와 팔다리, 고개와 엉덩이를 흔들며, 노래에 깊이깊이 빠져드는 해늘님들의 흥이 오래오래 내 눈앞에서 가물거린다. 아무래도 꿈속까지 따라올 태세이다.

"꿈속이라면 나도 우순실의 <잃어버린 우산> 내 18번지를 함 불러볼까나!"

아마도 꿈속에서는 내가 해늘의 그 어떤 산우님에 못지않게 노래를 잘 부를지도 모른다. 희망사항이니까. 후훗!


(※1) AI가 알려준 '노강서원'에 대한 안내

(※2) 나는 산악회마다 다른 닉을 사용한다.

이슬비가 한두 방울씩 내리는 수락산둘레길 산행 시작한다.
정자와 나무다리 지나간다
이정표
나무 쉼터 지나 정자에서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바라보며 간식을 먹는다.
간식 먹고 다시 산행 시작한다.
여기서 자랑산님들을 만나 사진을 남긴다.
수락산 깔딱고개 힘겹게 올라간다.
깔딱고개 올라가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하산길 암릉길
하산길 데크쉼터와 데크길
수락산 계곡과 이끼 낀 나무
수락산 석림사 문 앞에서
노강서원과 홍살문
수락산 등산 안내도
운영진들이 미리 와서 <해늘산 송년의 밤> 준비하는 모습
해늘산 깃발과 해늘산 송년의 밤 현수막
송년회 시상품과 회원 송년선물 꾸러미들
해늘산 체스 회장님 인사말
시상식과 운영진 소개
축하 케이크
장암역 <장암골>에서 능이버섯백숙과 도토리묵무침으로 저녁식사
신나는 노래자랑과 경품 추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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