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끈불끈 홍마의 기운으로 치악산 새해 첫 눈산행

치악산 눈산행

by 서순오

자랑산 신년 하례 첫 산행을 치악산에서 한다. 다른 밴드산악회에서 지난주에 수리산둘레길을 함산 했던 여산우 한나님이 함께 간다고 해서 신청했다.


치악산은 이번이 세 번째 산행이다. 20대 대학시절에 등고산에서 한 번 다녀왔고, 100대 명산을 찍을 때 2020년 1월에 안내산악회 좋은산에서 다녀왔다. 오늘 자랑산 치악산 산행도 겨울이고 1월에 한다. 그러고 보니까 치악산은 겨울에만 세 번 간 셈이다.


다른 계절에 치악산 모습은 어떠할지 문득 궁금해진다. 참, 치악산 황장목 숲길과 세폭포까지는 원주 여행을 하면서 2024년 11월에 한 번 다녀왔다. 초겨울인 데도 단풍이 제법 고왔다.


"쉽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치악산 산행! 오늘도 특별한 기억을 남기게 될까?"


20대 시절에는 좁은 암릉을 위에서 잡아주고 아래서 밀어주기에 가까스로 올랐다. 정상 돌탑이 있는 비로봉에 오르자 어찌나 추운지 무엇을 입에 넣을 수가 없다. 내가 내쉬는 숨결에 코털과 솜털과 입술까지 얼어붙어서 입을 뗄 때마다 짝짝 소리가 났다. 그 추운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따끈한 차를 한 잔 마셨던가?'

또렷하지 않고 아스라하다. 하산할 때는 눈이 막 퍼붓기 시작해서 실시간으로 쌓이는 눈길을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미끄럼을 타면서 내려왔다.


2020년 1월에는 오늘처럼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쌓여서 제법 눈 산행을 했다. 안내산악회에서 혼자 신청했기에 혼자 걸었다. 산에서 누군가 만나면 사진을 부탁해서 여러 장 남겼다. 기록을 해둔 게 있어서 찾아보니 내가 지금보다 훨씬 더 날씬했다. 그때도 살짝 추웠다. 비로봉 정상에서 테크에 앉아 컵라면 소컵을 먹었는데, 보온병 물이 미지근해져서 덜 익은 생라면을 먹었다. 오들오들 떨면서 꾸역꾸역 다 먹고, 당시에는 클린산행이 한창 권고사항이어서 쓰레기를 주워서 봉지에 담아 들고 인증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자랑산 치악산 산행을 가기 위해 죽전하행간이정류장에서 아침 7시 40분에 버스에 오른다. 6시 50분, 나는 무척 일찍 도착했다. 7시 10분쯤 되니까 한나님이 와서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한다. 좌석은 나는 창가 쪽, 한나님은 통로 쪽, 나란히 옆에 앉았다. 의자 망에는 콩설기가 한 개씩 들어있는데 따뜻하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왔기에 그냥 배낭에 넣는다.

'이따 남편 갖다 주어야지'

한나님이 떡을 먹으면서 한 입 먹어보라는데 사양한다.

"따끈해서 맛있어요."

임플란트 시술 중이어서 이에 뭐가 끼면 곤란하다.


인테리어 지기대장님이 마이크를 잡고 인사하고, 산행 일정과 선두, 중간, 후미 대장님 소개를 하신다. 앞자리부터 닉을 부르며 일어나서 인사를 하란다. 자주 함산한 이들은 닉이 익숙하지만 처음 온 이들도 있어서 궁금하지만 버스 안에서 인사할 때는 얼굴 보기가 어려워 목소리만 듣는다.


문막휴게소에서 10분 쉬고 부지런히 달려서 9시 10분에 치악산 황골탐방센터에 도착한다. 산행 준비를 하고 단체사진을 찍은 후 출발한다. 날씨가 꽤나 춥다. 두꺼운 패딩 잠바를 입고 오른다. 도로길을 따라 완만한 오름길 한참 간다. 산길 초입에 도착하니 눈이 제법 쌓여 있어서 아이젠을 차고 걷는다. 황골탐방로 아치문을 들어서서 황골삼거리까지는 데크길, 너덜길, 돌길, 가파른 오름길이 계속 이어진다. 그리 길지는 않지만 만만치 않다.

"어휴!"

뒤에서 후미를 보시는 별다섯 대장님이 내 배낭을 잡아들어서 오르기 쉽게 도와주시지만 여전히 발걸음 떼는 게 무겁고 힘들다. 그렇잖아도 느린 편인데, 살이 한 2~3kg 찌면서부터는 산행속도가 더 느려졌다. 거의 맨 꽁지로 올라가니 다들 황골삼거리에서 쉬고 있다.


다시 오른다. 조금 완만한 길이다. 황골오거리 조망터가 나온다. 거기서 간단하게 싸 온 간식을 먹고 가기로 한다. 너무 추워서 한나님과 나는 조릿대가 우거진 사잇길로 내려가 좁은 길에 앉는다. 거기는 그래도 바람이 안 들어 따뜻한 편이다. 비스듬히 앉아서 한나님이 싸 온 따뜻한 북엇국에 밥을 말아서 깍두기와 팽이버섯무침을 반찬으로 해서 먹는다. 나는 튀김우동 소컵 한 개와 단감을 싸갔는데, 물 부어서 먹으려면 시간을 기다려야 해서 튀김우동은 그냥 한나님 가져가라고 주고, 단감만 몇 쪽 집어먹는다. 나중에 뒤풀이에 가서 안 일이지만 너무 추워서 아예 간식을 안 먹은 이들도 있다는데, 누군가에게 그걸 주었어도 좋았겠다 싶다. 내가 보온통에 싸간 뜨거운 물이 그대로 남았다.


눈이 제법 쌓여있는 산길을 걷고 있노라니 도톰한 장갑을 끼고 있는 데도 바람이 불면서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시리고 아프다.

"어휴, 손 시려!"

스틱도 짚을 수가 없어서 잠바 주머니에 번갈아 손을 넣어보지만 쉽게 언 손이 녹지 않는다.

"저기 올라가서 제 장갑을 줄 테니 같이 끼셔요."

별 대장님이 여벌로 가지고 다니시는 방한용 벙어리장갑을 주시기에 끼니 그제야 살겠다. 내 장갑도 꽤 두꺼워서 포개서 끼지는 못하고 벗고 끼었는데도 완전 다르다.

"추운 겨울에는 역시나 벙어리장갑이 따뜻하네요."

별 대장님은 앞에 가는 산꽃님이 아이젠을 안 차고 눈길에 자꾸 미끄러지니까 바짝 뒤따라가면서 살펴주신다. 그러다가 산꽃님 배낭 속에 있는 아이젠을 꺼내서 신는 것을 도와주신다. 곱은 손으로는 아이젠 차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뽀드득뽀드득 눈길 밟는 소리가 싱그럽다. 치악산 정상 비로봉 봉우리와 돌탑 세 개 꼭대기가 보이는 지점에 왔다. 비로봉을 배경으로 서 본다. 이제 또 완만한 길 조금 걷다가 마지막 가파른 오르길이 기다리고 있다. 있는 힘을 다해 오른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긴 하지만 하얗게 남아있는 눈길이라 예뻐서 사진을 찍어보고 싶지만 그냥 간다. 선두팀이 워낙 빨라서이다.


치악산 정상 비로봉에 도착하니 자랑산님들은 벌써 단체사진 찍고 내려갔단다. 후미인 나와 산꽃님은 아쉬워하며 비로봉 정상석에서 인증컷만 찍는다. 그래도 돌탑이 아쉬워서 한나님과 나는 개인사진을 한 장씩 남긴다.


그리고는 곧 따라 내려간다. 돌탑에서 가파른 계단길이 계속 계속 이어지는 사다리병창길이다.

"저는 내려갈 때는 빨라요."

산꽃님이 빠른 걸음으로 우리를 앞질러 내려간다. 한나님도 걸음이 빠른 편이라 나보다 훌쩍 앞서 내려간다.


어떤 이들은 아이젠도 안 차고 스틱도 없이 계단 난간과 나무를 잡고 그 가파른 길을 비틀비틀 내려가고 있다. 다른 산악회에서 온 사람들인 것 같다.

"겨울산을 저렇게 오면 위험한데! 이런 가파른 길은 한 발만 삐끗해도 쭈르륵 미끄러져 떨어지거든요."

별 대장님이 뒤에서 한 마디 하시기에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겨울산 산행은 등산화와 아이젠, 스틱은 필수이고, 보온도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우리가 산을 타는 것은 바로 건강을 위해서인데, 안전장비를 잘 갖추지 못해서 자칫 사고라도 난다면 그 모든 것이 다 허사인 것이다.


지루한 사다리병창길을 부지런히 내려가면서 주변 산봉우리와 굽이치는 산마루금, 산 능선에 쌓인 희끗희끗한 눈을 보는 맛이 있다. 불끈불끈 솟구치는 장엄함이 느껴진다.

'새해 붉은말의 기상을 엿볼 수 있다고나 할까? 힘차게 달리는 홍마의 갈기와 등이 굽이치는 모습, 건강한 네 다리가 번갈아가며 속도를 내며 따각따각 내는 말발굽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구나! 새해 첫 산행을 난이도가 있는 치악산에서 했으니 올 한 해 다른 산행들도 무난히 잘할 수 있겠구나!'

마음속으로 소망과 다짐을 하며 걷는다. 중간에 한두 번 쉴 때는 삼사오오 사진도 남기면서 산우님들이 주시는 과일 간식도 먹으면서 즐겁게 산행을 한다.


세럼폭포가 나오면서 사다리병창길은 끝이 난다. 폭포와 계곡은 얼어있고 나무다리가 놓여있다. 거기서부터는 완만한 길이다. 나는 계곡에 언 얼음이 빚어내는 섬서한 조각이 너무나 예쁘고 얼음짱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청량하고 싱그러워서 한참을 들여다본다. 길을 가다가 멈추고 가다가 멈추면서 사진과 동영상으로 담는다.

"햐! 신비롭네! 얼음꽃이 눈꽃보다 더 예쁘네!"

한참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얼음짱 밑에서 뾰족뾰족 갈라진 얼음꽃 사이로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눈의 여왕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다.


약 30여 분 정도 걸어서 구룡사 주차장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손두부전문점 <솔밭>으로 가서 뒤풀이를 한다. 반찬들이 세팅이 되어있고 두부전골이 먼저 나온다. 다들 배가 고팠기에 허겁지겁 먹는다. 옆 테이블은 다래님과 지인으로 따라온 인천 하늘도시팀 여산우님 3명까지 넷이서 밑반찬을 두 번이나 가져다 먹는다. 아직 공깃밥도 안 나왔고 두부전골도 끓지 않은 상태인데 말이다.

"천천히 드세요. 두부부침과 파전도 나올 거예요."

인테리어 지기대장님이 자랑산을 위하여 건배를 하시면서 덧붙여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기다릴 틈이 없다. 공깃밥이 나오고 두부전골이 보글보글 끓어오르자 숟가락과 젓가락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이건 뭘까?"

반찬 중에 콩비지 같은데 주황색이다. 먹어보니 구수하다.

"이거요? 비지 띄운 거 같아요."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한나님이 먹어보더니 얘기한다.

"저기 넣어 먹으면 더 맛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몇 번 더 가져다가 두부전골에 넣고 옆 테이블 다래님 하늘도시팀에게도 갖다 준다.

"정말 그러네요. 구수해요."


배가 어느 정도 찰 즈음, 두부부침과 파전이 나온다. 두부가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와, 맛있어요!"

파전도 오징어가 들어가서 씹히는 맛이 있다. 그런데 다들 배가 너무 불러서 다 먹지 못하고 남긴다. 두세 조각이지만 나는 음식 버리는 게 싫어서 종이컵에 담아 온다. 내 배낭 도시락 가방에서 삶은 계란 넣는 통을 꺼내서 옮겨 담는다. 이튿날 아침 먹을 때 아주 잘 먹었다.


참,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오늘 처음 나온 한나님이 자랑산 카페에 가입을 하려는데, '하나'라는 닉을 쓰려니까 글쎄, 부를 때 보니까 그만 '하나님'이 되고 만다.

"그건 아니죠!"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한나님은 그냥 '한나'로 바꾸고 싶다는데, 또 기존 회원이 있어서 안 된단다. 결국 성을 같이 붙여서 닉으로 쓰기로 했다. 하마터면 '하나님'이 될 뻔한 한나님! 정회원 등업까지 마쳤으니 자주 산행에 올 수 있단다.


오늘 치악산 산행은 인테리어 지기대장님 포함해서 모두 31명 참석했다. 황골탐방소-입석사-황골삼거리-비로삼거리- 비로봉 정상-사다리병창-세렴폭포-구룡계곡-구룡사-구룡사주차장 코스로 총 12km, 6시간 소요(휴식 간식 시간 포함) 되었다. 추운 날씨였지만 눈길을 밟으면서 눈 산행을 할 수 있어서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수고해 주신 선두, 중간, 후미 리딩 대장님들과 함산 한 산우님들 모두에게 감사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치악산국립공원 안내도
황골탐방소 앞에서 자랑산 단체사진
도로길
황골탐방로 아치문에서 한나님과 함께
너덜길 오름길
황골삼거리에서 쉬어가기
간식시간
치악산 정상 비로봉을 배경으로
산꽃님이 아이젠 차는 걸 도와주시는 별다섯 대장님
뽀드득뽀드득 싱그러운 눈 산행
치악산 정상 비로봉에서 줄서서 기념사진 찍는 모습
치악산 정상 비로봉 돌비에서
치악산 정상 비로봉 돌탑에서 후미팀 한나님, 나, 산꽃님
울끈불끈 홍마의 기운이 느껴지는 치악산 산행
사다리병창길
쉬어가는 시간에 눈산행 기념 사진
아래로 내려올수록 눈은 없다.
세렴폭포 아래 나무다리
2024년 11월에 세렴폭포에서 찍은 사진
치악산 구룡계곡 얼음꽃
황장금표
손두부전문점 <솔밭>에서 두부전골과, 두부부침, 파전으로 뒤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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