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산 산행
오늘은 자랑산 조운, 콜롬보, 징검 대장님 등극 축하 산행이다. 조운 대장님은 일요일, 콜럼보 대장님은 월요일, 징검 대장님은 목요일 근교산행을 주로 맡아서 리딩해주신다. 세 대장님의 합동 등극식이다.
불암산 축하 산행 총 참석인원은 70명이다.
"우와! 많다!"
인테리어 지기대장님이 처음에는 50명으로 제한하려고 하다가 많은 산우님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에 인원수를 늘린 거란다. 나는 해늘산에서 자차 두 대로 가는 월악산 산행에 마음이 동했지만 근교산행으로 자주 가는 편인 자랑산 대장님들의 축하 산행이기에 참석하기로 한다. 물론 참가 신청도 일찍 해두었기에 취소하는 게 좀 그랬다.
"좋은 일에는 많은 사람이 함께 하면 기쁨이 두 배, 세 배, 여러 배가 된다. 시너지효과가 난다고나 할까?"
집결지는 불암산역 3번 출구 낮 12시이다. 집에서 세 시간이나 걸리는 불암산역을 향해 오전 9시에 집을 출발한다. 버스 한 번 환승, 지하철 한 번 환승하면 비교적 빨리 갈 수 있지만, 날씨가 추워서 밖에서 기다리는 환승 시간이 싫어서 버스에서 지하철 환승 한 번으로 끝내기로 한다. 버스 타고 범계역 내려 불암산역 가는 지하철을 탄다. 둘 다 1시간 15분씩 걸리기에 자리에 앉아서 가지만 아주 지루하다.
집에서 여유 있게 나와서 그런지 불암산역에 도착하니 20분 정도 여유가 있다. 공지 안내에는 '3번 출구 안에서 기다리라' 하더니 모두 밖에 서 있다. 테이블 위에 자랑산 손수건 두 가지를 놓고 운영진이 출석 체크와 함께 한 장씩 선물로 나누어준다. 나는 빨간색은 전에 받은 게 있어서 노란색으로 고른다. 옆에서 산꽃님이 노란색 손수건을 펼쳐서 목에 두르는 걸 보니 예쁘다.
"잘 골랐네요!"
"우리는 산꽃 눈꽃 둘 다 꽃이네요."
"그러게요. 지난번 치악산 산행에서도 우리는 걸음이 느려 함께 했네요."
이래저래 비슷한 점을 찾아보는 중이다. 손수건 고른 것도 똑같으니 벌써 세 가지나 닮은 점이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닮은 점이 많으면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고 친해지게 되어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왜 사람들이 잘 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꼭 자기 닮은 사람이다. 그것은 자기애가 강하기 때문이리라. 누구나 다 자기를 보고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치 나르시스가 물속에 비친 자기 미모에 빠져 죽은 것처럼 말이다. 거기에서 피어난 꽃이 수선화라고 하는데, 그것은 나르시시즘(자기만족, 자아도취)을 의미한다. 이성 간에는 첫눈에 반해서 사랑에 빠지는데, 연인들이나 부부들은 어쩌면 둘이서 그렇게도 닮았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자기애의 극치!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동성 간에도 서로 호감을 가지는 사람은 자기와 닮은 사람이다.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 취미, 좋아하는 음식, 사는 곳, 고향 등등 같은 것이 많은 사람은 친밀감을 느낀다. 우정 역시도 자기애의 하나가 아닐까?"
시간이 되자 인테리어 지기 대장님 인사를 하고, 조운, 콜럼보, 징검 세 대장님 소개를 하고 등극 선물을 드리고, 산행 안내를 한 후 단체사진 찍고 출발한다. 일기예보 방송은 날씨가 춥다고 난리이지만 그리 춥지는 않다. 영하 5도, 4도는 딱 산행하기 좋은 날씨이다. 70여 명이 한꺼번에 움직이니 도로가 꽉 찬다.
불암산 철쭉동산 쪽으로 올라간다. 곳곳에 철쭉나무가 몰려있는 걸 보니 봄에 오면 철쭉이 예쁘겠다. 살방살방 걷기 좋은 편안한 서울둘레길이 나오는데 한 줄로 길게 걷는 산우님들 모습이 꽤나 멋스럽다. 70명이 무슨 행군을 나온 사람들 같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동그란 원탁 테이블 쉼터에서 점심을 먹는 다른 산우님들도 있다. 그들이 우리 행렬을 보고 묻는다.
"어디 산악회인가요?"
우리와는 반대로 내려오는 사람들도 놀란 모양이다. 누군가 '자랑산'이라고 말해 주었을 것이다. 산행하다가도 혼산 하는 이나 몇 명이서 함께 걷는 이들을 만나면 꼭 자랑산 소개를 한다.
"다음 카페 '자랑스러운 산악회'예요. 가입해서 살펴보시고 나오셔요."
그러면 한 명 두 명 가입하는 이들이 있다. 창립한 지 이제 1년이 되었는데, 벌써 회원 수가 700여 명에 이르는 까닭이다.
연인바위가 눈에 띈다.
"사람 모양의 바위가 둘로 나누어져 서로 붙어있는 모습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포옹하고 있는 듯합니다."
산마다 바위든 나무든 '사랑'이나 '연인'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들이 많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 사랑이어서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사는 이유가 뭔가요?"
"사랑하기 위해서요."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요즘 유튜브로 세계명작 장편소설을 듣는 재미에 푹 빠졌는데,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도 거의 대부분 다 사랑하기 위해서 산다. 사랑은 한 인간의 삶을 황홀경에 빠지게도, 활짝 펴게도 하지만 또 주체하지 못해 파경을 맞기도 한다. 영화나 연극, 음악은 또 어떠한가? 유행하는 작품들을 보면 그 안에 사랑을 노래하는 것들이 많다.
산길이 도로길 위쪽을 따라 있어서 조금 높은 지점에 다다르면 도로와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그리 멋진 풍경은 아니지만 조망하며 가는 재미가 있다.
서울둘레길에서 불암산둘레길로 넘어간다. 덕릉고개와 불암산 정상까지 계속 오름길이 이어진다. 나는 오름길에서는 언제나 숨이 가빠 빨리 걷지를 못한다. 산우님들은 모두 다 앞서 갔다. 내 뒤에 오는 이는 후미를 맡은 별대장님과 얼마 전에 아파서 아직 제대로 회복되지 않아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산우님 몇 명뿐이다. 오늘도 나는 자주 혼자 걷지만 혼산도 좋아해서 조용히 혼자 걸을 때가 좋다. 선두팀들은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고 하는데 후미는 걸음이 느려 많이 쉴 수가 없다. 물 한 모금 마시고 곧 따라간다.
덕릉고개 지나 불암산 정상이 보이는 곳에 이정표가 나타난다. 내리막길이 보여서 이제 그만 여기서 내려가려나 싶었다.
"정상을 안 간다는데 여기서라도 사진 한 장은 찍고 가야지."
반달님과 해무리님도 나와 보폭이 비슷해서 거기서 멈춰 선다. 반달님도 바로 내려가는 줄 알았는지 스틱을 꺼내서 편다. 짬을 이용해서 해무리님에게 내 폰을 내밀고 사진 부탁을 한다. 가로로 한 장, 세로로 한 장, 두 장 찍어주었다.
그런데 불암산 정상이 얼굴만 내밀고 계속 올라간다. 데크길도 나오는데 가파르다. 다람쥐 광장에서 산우님들이 간식을 먹으면서 쉬고 있다. 나는 삶은 계란과 따뜻한 우롱 차을 싸 갔기에 산꽃님과 나누어 먹는다. 징검 대장님은 방금 떡을 드셨다면서 계란은 사양하시고 우롱차만 마신다.
"저도 한 컷 찍어주셔요."
인테리어 지기대장님이 불암산 정상을 배경으로 산우님들 사진을 찍기에 나도 한 장 부탁한다. 사람이 많다 보니 산우님들과는 함께 사진 찍을 시간도 나지를 않는다. 약 7.5km의 거리를 3시간~3시간 30분 내로 걸어야 해서 바쁘다. 걸음이 빠른 사람들은 여유가 있는데 느린 사람들은 따라가기가 바쁘다.
산우님 몇이 불암산 정상을 향해 간다. 그들은 걸음이 빠르기에 금방 올라갔다 내려올 것이다. 나도 잠시 망설인다. 그런데 나는 걸음이 느리기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뒤풀이를 안 하고 정상에 올라갈까? 겨우 200m 남았는데!"
그렇지만 그냥 내려가기로 한다.
"오늘은 세 대장님 등극 축하 산행이니까 함께 하는 게 더 의미가 있다."
하산길 초반은 가파른 암릉길 로프구간이다. 작년에 H 대장님과 함께 정상 밟고 내려왔던 길이라 한 손에는 스틱을 들고 한 손으로는 로프를 잡고 쓱쓱 밀면서 잘도 내려온다.
"이런 길이 있어?"
처음에는 놀랐던 길이다. 한 번 걸어 보았다고 낯이 익어서 쉽다. 아니다. 산행 다시 시작하고 8년 전에도 토산에서 걸었던 길이다. 그때 바위 좋아하는 버디 대장님을 따라서 아찔한 암릉 영신바위 1코스를 로프도 없이 올라 정상을 밟고 이 길로 내려왔었다. 꽤 힘들었던 하산길 암릉과 불암정 기억이 나는 걸 보니 그랬다.
중간쯤 내려왔을 때 징검 대장님과 남산우님 한 분을 만난다.
"2m 이상 떨어지지 말고 눈꽃님과 손 꼭 잡고 오세요."
징검님이 바로 뒤에 가시는 남산우님에게 한마디 하신다.
'이를 어째? 나는 스킨십 절대 안 하는데!'
나는 속으로 이러면서 내가 정한 산행 수칙 같은 걸 떠올린다. 어디에 적어놓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내 나름 기준을 정해 놓았다.
"산행에서 만난 사람과는 특별한 관계를 가지지 않는다. 사진을 주고받는 것 외에는 개인톡도 안 한다. 정들면 곤란하니까."
머리 좋은 사람은 눈치가 빠르다. 거기다가 육감이 발달된 여자는 촉과 감이 발달되어 있다. 그래서 아내들이 남편들 하는 행동을 다 알고서도 속아주면서 산다는 말이 있다. 헤어지지 않으려면 눈을 감이 주어야 살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가입한 산악회가 5군데쯤 되다 보니 산악회마다 커플들을 많이 본다. 부부도 있을 것이고 연인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남편 있는 여자이고, 또 산행에서 특별한 만남을 갖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려면 뜨거운 열정이 타오를 때, 한창 젊었을 때 사귀었을 것이다. 이제는 하나씩 둘씩 내려놓아야 할 때이다. 서로 열정도 없는데 타다만 부지깽이 같은 나이에 그 누굴 만나 그 무엇을 기대한단 말인가? 나이가 같다고 친구 하자는 이가 있으면 산행에서는 누구나 다 친구인 것이지 특별한 친구는 없다고 말한다.
상계역까지 휘리릭 내려온다. 뒤풀이 장소인 <상계돈집>으로 간다. 후미에 속한 나는 가 보니 자리가 없다. 비어 있는 자리도 물어보니 다 사람이 있단다. 보조 의자도 놓여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그냥 집에 가려고 나온다. 집이 머니까 빨리 가도 좋다. 그런데 상계역 반대 방향으로 갔다. 상계역으로 가려면 <상계돈집>을 다시 지나가야 한다. 막 지나쳐서 가려는데 몇 사람이 자리가 없다며 또 나와서 휙 하고 상계역 쪽으로 가버린다. 나도 따라가려는데 별대장님이 후미 팀을 데리고 <상계돈집>으로 온다.
"왜 그냥 가요?"
"자리가 없어서요."
"그러지 말고 같이 들어가요. 자리 있어요."
출입문 제일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 하나가 있다. 가서 앉는다. 모두 다 모르는 이들이다. 이분들도 나를 처음 본단다. 네 사람은 오래 알아온 사이라 친분이 있단다. 나는 새로운 환경에도 적응을 잘하는 편이라 편안하게 앉아서 노릇노릇 구워진 삼겹살 고기를 먹는다. 바로 앞에 앉은 남산우님이 고기를 구워서 여산우님들과 내 앞접시에 놓아주기도 한다. 왼쪽에 앉은 남산우님은 방송국에서 일을 하신다는데, 항정살 고기를 2인분 더 사고 공깃밥도 주문해서 맛있게 볶아주신다. 계란 2개, 김가루 등을 넣고 볶으니 고소하니 맛이 있다.
안쪽 테이블에서는 조운, 콜럼보, 징검 대장님 축하 잔치가 벌어지는데 나는 등지고 앉은 데다가 비좁아서 의자를 돌릴 수도 없고 또 멀어서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축하 케이크 커팅도 하고 꽃다발과 선물도 증정하는 모양인데 인원이 너무 많다 보니 보면서 들으면서 축하해드리지 못해 아쉽다. 그렇지만 마음속으로는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내 드린다. 세 분 대장님은 같은 날 합동 등극식을 했으니 서로 끈끈한 우정이 생길 수도 있겠다. 산행 요일이 달라 경쟁은 안 할 수도 있겠고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며 멋진 산행 대장님들이 되면 좋겠다. 인테리어 지기대장님이나 별다섯 감사대장님을 비롯해서 섬김 정신이 투철한 기존의 대장님들 만큼, 아니 그보다 더 산우님들을 잘 리딩하고 보살피는 좋은 산행 대장님들이 되시기를 빌어 본다. 그래서 함산 하는 신우님들이 늘 안전하고 즐겁게 산행할 수 있는 자랑산이 더욱 발전하는데 기여하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