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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Jan 20. 2023

'치욕'이 살려낸 삶과 '날쇠'의 활약

영화 《남한산성》

혀 어떤 내용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영화를 보러 왔다. 선입견이 없이 처음 만나는 느낌도 괜찮을 듯해서이다. 명절 연휴기간이니까 역사극도 좋겠다 그런 생각에 예매를 했다.


《남한산성》은 전쟁영화다. 조선과 명, 청과의 관계를 다룬 영화이다. 약소국인 조선은 명나라를 부모로 섬기면서 청나라를 형으로 섬기고 있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청나라가 조선을 공격해 와 목숨이 풍전등화다. 충직한 신하들은 직언을 하기도 하고 묘책을 짜내기도 하지만 조선에게는 자신을 지킬만한 힘이 없다. 남한산성까지 피신해 들어가 싸움을 치러야 할 처지다. 싸움에서 이기면 살고 지면 죽는다.


결국 예조판서 김상헌과 이조판서 최명길의 의견은 서로 달라 예조판서는 "죽음으로 치욕을 면하라" 하고, 이조판서는 "치욕으로 백성의 삶을 지켜내라" 한다. 조선의 인조왕은 누구의 말을 들었는가?  끝부분에 가서 그 대답이 있다.


목숨은 질긴 것이고 소중한 것이다. 치욕스럽더라도 지켜야만 하는 것이 생명이다! 요즘같이 생명경시의 풍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좋은 영화이다. 특별히 나라의 지도자가 백성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도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영화이다.


이 영화의 백미는 대장장이 '날쇠'의 활약이다. 드러나지 않는, 숨은, 충성된 백성의 본보기라고나 할까? 혹한의 추위에 동상에 걸리고 얼어 죽을 위기에 처한 동료병사들을 위해 가마니를 보내달라고 예조판서에게 얘기를 해서 왕의 윤허를 받는 것, 다 낡아서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무기들을 수리할 수 있도록 허락받아 고쳐놓는 것, 무엇보다 조선 인조왕의 서신을 청나라 장수에게 낫 하나를 들고 적진을 뚫고 가서 전달하는 것 등 그의 활약이 가슴에 남는다.


그러나 날쇠가 사선을 넘으며 잘 전달한 인조왕의 서신은 일개 무명인이 전한 것이라 하여 못 미더워 불태워지고 말지만, 그가 이루어낸 일은 실로 '사명'이라 할만한 소중한 역할이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영화 《남한산성》의 주인공을 '날쇠'로 정해 보고도 싶다.


"종이 되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살아있는 것이 더 소중하다!".


요즘 새벽에 성경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고 있는데, 바로 엊그제 읽은 여호수아 10: 8-14절 말씀 내용이 오늘 영화와도 연관이 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유명한 성경말씀 본문이다

"해야 멈추어라 달아 멈추어라"


가나안 정복 중에 나님께서 여호수아가 전쟁에서 이기기까지 해가 지지 않도록 해를 멈추게 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게 바로 이스라엘에게 속임수를 쓰면서까지 살아남으려고 화친을 맺으러 온 기브온 백성들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낡은 배낭에 곰팡이가 슨 떡과 다 해진 옷을 입고 와서는 먼 곳에서 오느라고 그랬다면서 이스라엘에게 투항해 오는 기브온사람들, 지도자 여호수아는 그만 깜빡 속아 그들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하나님 앞에서 평화조약을 맺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주 가까운 곳, 이스라엘이 정복해야 할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을 살려주는 대신 물 긷고 나무 패는 종으로 삼는다. 기브온 사람들은 죽는 것보다는 종으로라도 살아남는 것이 소중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웃나라 아모리 족속들이 기브온의 화친을 못마땅하게 여겨 연합전선을 펴서 기브온을 멸하려고 쳐들어온다. 이에 기브온은 이스라엘에 도움을 요청하고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종이 된 기브온을 구하기 위해 전면전을 치르게 된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와 지도자 여호수아의 말을 듣고 천체(해와 달)를 움직여 승리를 거두게 하신다. 기브온은 살기 위해 속임수를 썼고 일평생 이스라엘의 종노릇을 해야 할 신분이었음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생명을 걸고 기브온 사람들을 구하는 것을 의롭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종이라 하더라도 이제 기브온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백성인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람들은 흔히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을 아무런 생각 없이 한다. 그러나 산다는 것은 소중하다. 종으로 살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다. 일평생 물 긷고 나무를 패며 살더라도 삶은 그만큼 귀한 것이라는 얘기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천국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는 죽음 이후 하나님 앞에 설 때에야, 그때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에서의 '죽음'은 우리에게 "영원한 삶이냐? 영원한 죽음이냐?"의 분기점이기 때문이다.

영화 《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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